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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Seohyun Architectural Labor Task</description>
	<pubDate>Thu, 02 Apr 2009 04:21:28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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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2 Apr 2009 04:21:28 +0000</pubDate>
		<dc:creator>salt robot</dc:creator>
		
		<category><![CDATA[미분류]]></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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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http://saltworkshop.net/
자자. 메인으로 가주세요.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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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자자. 메인으로 가주세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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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ews</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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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8 Dec 2008 12:12:27 +0000</pubDate>
		<dc:creator>salt robot</dc:creator>
		
		<category><![CDATA[news]]></category>

		<category><![CDATA[고영성]]></category>

		<category><![CDATA[박종화]]></category>

		<category><![CDATA[환영식]]></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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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다음 학기 입방예정 SALT 새 선수들 두 명 결정되었습니다.
고영성/박종화
2월 20일 언저리에 신입선수환영식 및 단합대회 합시다.
 
고영성
안녕하세요 이번에 솔트에 종화와 함께 새 선수가 된 고영성이라고 합니다. 열심히 하여 선생님과 여러 선배님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쁘게 봐주시고 단합대회때 뵙겠습니다!!!!
박종화
안녕하세요 이번에 salt로 가게된 박종화입니다. 
인사가 너무 늦어 죄송하구요 
영성이형이랑 열심히 해서 salt 명예를 더럽히는 일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잘 부탁드립니다.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다음 학기 입방예정 SALT 새 선수들 두 명 결정되었습니다.</p>
<p>고영성/박종화</p>
<p>2월 20일 언저리에 신입선수환영식 및 단합대회 합시다.</p>
<p> </p>
<p>고영성</p>
<blockquote><p>안녕하세요 이번에 솔트에 종화와 함께 새 선수가 된 고영성이라고 합니다. 열심히 하여 선생님과 여러 선배님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쁘게 봐주시고 단합대회때 뵙겠습니다!!!!</p></blockquote>
<p>박종화</p>
<blockquote><p>안녕하세요 이번에 salt로 가게된 박종화입니다. <br />
인사가 너무 늦어 죄송하구요 <br />
영성이형이랑 열심히 해서 salt 명예를 더럽히는 일 없도록 <br />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잘 부탁드립니다. ^^</p></blockquote>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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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옛날얘기</title>
		<link>http://saltworkshop.net/salt/2008/11/%ec%98%9b%eb%82%a0%ec%96%98%ea%b8%b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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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7 Nov 2008 07:42:14 +0000</pubDate>
		<dc:creator>윤 성환</dc:creator>
		
		<category><![CDATA[news]]></category>

		<category><![CDATA[staff works]]></category>

		<category><![CDATA[works]]></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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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bot이 열심히 데이터를 옮기고 있습니다. 하나둘 옛날 글들을 옮기는 걸 보니까, 옛날 생각이 나는군요. review에 올라오는 책들은 꼭 다 읽어봐야했는데, 미처 못따라갔던터라, 다시 한번 시도를. 이라는 생각도 들고. 
특히 2005 열린 소리 열린 공간을 보니, 이 동영상을 SALT에 올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저 올려둡니다. =)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bot이 열심히 데이터를 옮기고 있습니다. 하나둘 옛날 글들을 옮기는 걸 보니까, 옛날 생각이 나는군요. <a href="http://saltworkshop.net/salt/category/writing/review/">review</a>에 올라오는 책들은 꼭 다 읽어봐야했는데, 미처 못따라갔던터라, 다시 한번 시도를. 이라는 생각도 들고. </p>
<p>특히 <a href="http://saltworkshop.net/salt/2006/03/2005-작은소리-열린공간/">2005 열린 소리 열린 공간</a>을 보니, 이 동영상을 SALT에 올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저 올려둡니다. =)</p>
<p><object classid="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 width="480" height="360" codebase="htt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6,0,40,0"><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 /><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always" /><param name="src" value="http://vimeo.com/moogaloop.swf?clip_id=1627460&amp;server=vimeo.com&amp;show_title=1&amp;show_byline=1&amp;show_portrait=1&amp;color=ffffff&amp;fullscreen=1" /><embed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480" height="360" src="http://vimeo.com/moogaloop.swf?clip_id=1627460&amp;server=vimeo.com&amp;show_title=1&amp;show_byline=1&amp;show_portrait=1&amp;color=ffffff&amp;fullscreen=1" allowscriptaccess="always" allowfullscreen="true"></embed></object><span style="color: #551a8b; text-decoration: underline;"><br />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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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working on</title>
		<link>http://saltworkshop.net/salt/2008/11/working-on/</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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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5 Nov 2008 21:31:53 +0000</pubDate>
		<dc:creator>salt robot</dc:creator>
		
		<category><![CDATA[news]]></category>

		<category><![CDATA[공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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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안녕하세요 열심히 데이터를 옮기고 있는 SALT robot 입니다. 
1. 잃어버리지 않은 데이터의 경우 50% 정도 옮겨졌습니다. 다만, 아예 유실된 데이터에 대해선 윤성환 군이 학교측에 문의 중입니다. 
2. 새로운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Staff 들의 정보가 누락되어 있습니다.
3. Event 를 보시면 그때 그때 SALT와 관련된 일정들이 보입니다. 참고하세요.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saltworkshop.net/salt/wp-content/uploads/2008/11/automator-icon.png"><img class="size-thumbnail wp-image-329 alignright" title="automator-icon" src="http://saltworkshop.net/salt/wp-content/uploads/2008/11/automator-icon-150x150.png" alt="" width="150" height="150" /></a>안녕하세요 열심히 데이터를 옮기고 있는 SALT robot 입니다. </p>
<p>1. 잃어버리지 않은 데이터의 경우 50% 정도 옮겨졌습니다. 다만, 아예 유실된 데이터에 대해선 윤성환 군이 학교측에 문의 중입니다. </p>
<p>2. 새로운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strong><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새로운<a href="http://saltworkshop.net/salt/about-salt/staff/"> Staff </a>들의 정보</span></strong>가 누락되어 있습니다.</p>
<p>3. Event 를 보시면 그때 그때 SALT와 관련된 일정들이 보입니다. 참고하세요.</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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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Hello world!</title>
		<link>http://saltworkshop.net/salt/2008/11/hello-world/</link>
		<comments>http://saltworkshop.net/salt/2008/11/hello-world/#comments</comments>
		<pubDate>Mon, 03 Nov 2008 08:56:26 +0000</pubDate>
		<dc:creator>SALT</dc:creator>
		
		<category><![CDATA[news]]></category>

		<category><![CDATA[공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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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SALT의 데이터를 옮겨옵니다. 여기가 새로운 SALT입니다. 
 
날라갔습니다!
학교 서버에 있던 살트 사이트가 날라갔습니다 -_-;; 죄송.
뭔가 학교 쪽 서버에는 접근 권한이 제한되어있어서 어떻게 된 일인지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 제로보드 관리자쪽으로 들어가보니까 아예 디비가 날라갔던데요 -_-;; 학교측에 메일은 보냈습니다만 아직 답변이 없는게, 아무래도 전화를 해봐야겠습니다만.
이 기회에 남은 데이타라도 얼른 들고 이사해야겠습니다.데이터들은 시간나는대로 옮기겠습니다. 저번 베타버전때 거의 다 옮겼었는데 -_-;; 뭐 그것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div id="attachment_143" class="wp-caption alignleft" style="width: 160px"><a href="http://saltworkshop.net/salt/wp-content/uploads/2008/11/200807_4540.jpg"><img class="size-thumbnail wp-image-143" title="200807_4540" src="http://saltworkshop.net/salt/wp-content/uploads/2008/11/200807_4540-150x150.jpg" alt="날렸다!" width="150" height="150" /></a><p class="wp-caption-text">날렸다!</p></div>
<p>SALT의 데이터를 옮겨옵니다. 여기가 새로운 SALT입니다. <br />
 </p>
<h2>날라갔습니다!</h2>
<p>학교 서버에 있던 살트 사이트가 날라갔습니다 -_-;; 죄송.</p>
<p>뭔가 학교 쪽 서버에는 접근 권한이 제한되어있어서 어떻게 된 일인지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 제로보드 관리자쪽으로 들어가보니까 아예 디비가 날라갔던데요 -_-;; 학교측에 메일은 보냈습니다만 아직 답변이 없는게, 아무래도 전화를 해봐야겠습니다만.</p>
<p>이 기회에 남은 데이타라도 얼른 들고 이사해야겠습니다.데이터들은 시간나는대로 옮기겠습니다. 저번 베타버전때 거의 다 옮겼었는데 -_-;; 뭐 그것 역시 스팸 공격 맞고 뻗어버렸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좀 믿을만한 놈으로 연구해서 데려왔습니다.<span id="more-1"></span></p>
<h2>이사합니다!</h2>
<p><a href="http://saltworkshop.net/">http://saltworkshop.net/</a> 여기서 등록하기 (아니면 여기 <a href="http://saltworkshop.net/salt/wp-login.php?action=register">http://saltworkshop.net/salt/wp-login.php?action=register</a> )로 가셔서 원하시는 아이디로 가입하시고 좀 둘러보십시오. 또 가입이냐! 하시겠지만, 뭐 이번엔 그다지 가입이 어렵지 않으니 꼭 가입해주세욤.</p>
<p>뭐 중요한 건 일단 글을 쓰시면 되는 것이고, 기타 분류라던가, 태깅, 그림 정리 등은 제가 손보면 되니, 자주 자주 사용해주십쇼 =) 간단한 인사말이나, 질문 등은 <a href="http://saltworkshop.net/salt/board/">http://saltworkshop.net/salt/board/</a> 를 이용해주세요</p>
<h2>이렇게 씁니다!</h2>
<h3>page &amp; post</h3>
<p>자세한 사용법은 뭐. 개념은 크게 &#8216;페이지&#8217; page 가 있고 &#8216;글&#8217; post 이 있습니다. 페이지는 날짜와 상관없는 녀석들이고 글은 날짜와 상관있다고 보시면 됩니다만, 계속 내용이 추가되는 쪽의 글들을 &#8216;글&#8217;로 분류하려고 합니다. 게시판에 있던 대부분의 내용은 &#8216;글&#8217;post로 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span style="color: #800000;">뭐 왠만하면 페이지page는 쓸 일 없고, 그냥 &#8216;글&#8217;쓰기 하시면 됩니다. </span>블로깅 좀 해보신 분들, 다 뭔소린지 아실 겁니다. </p>
<h3>category</h3>
<p>그리고 &#8216;분류&#8217; category 가 있는데, 쉽게 말해서 옛날의 게시판에선 정해진 보드에 들어가서 글을 남기고 그 안에서 다시 카테고리를 분류하는 방식이었다고 하면, 여기선 일단 글부터 쓰고, 분류를 정해주는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글 쓰는 페이지에 보시면 글을 쓰시고 아래로 쭉 내리면 &#8216;분류&#8217; 를 선택하거나 새로 만들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p>
<h3>그 외에. </h3>
<p>&#8216;태그&#8217; Tag 란 것은 그야말로 글에 붙이는 딱지같은 겁니다. 이것은 글의 양이 많아지면 그 위력을 발휘하는데, 쉽게 말하면 뭐 위계가 없는 분류라고 할까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태그 클라우드 같은 것을 활용해서, 더 쉽게 검색을 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p>
<p>PS. 그리고 제 주소록에 있던 이메일 리스트가 다 있는게 아닌데, 게다가 이 메일링리스트도 몇분이나 볼지 모르겠습니다. 메신저 등을 통해서 전파해주십시오!!!!<br />
PS. 그리고 다른 이메일 주소 아는 사람껀 저에게 주시면, 또 연락하고, 새로 스탭 리스트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p>
<p>게시판을 새로 설치하였습니다. 물론 아직 내용은 없습니다. <a href="http://saltworkshop.net/salt/board/" target="_self">http://saltworkshop.net/salt/board/</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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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StadtBauwelt] 서울의 군사문화</title>
		<link>http://saltworkshop.net/salt/2008/10/stadtbauwelt-%ec%84%9c%ec%9a%b8%ec%9d%98-%ea%b5%b0%ec%82%ac%eb%ac%b8%ed%99%94/</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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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7 Oct 2008 22:42:44 +0000</pubDate>
		<dc:creator>SALT</dc:creator>
		
		<category><![CDATA[writing]]></category>

		<category><![CDATA[기타원고]]></category>

		<category><![CDATA[군사문화]]></category>

		<category><![CDATA[서울]]></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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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StadtBauwelt 2008. 09. 26] 서울의 군사문화
StadtBauwelt는 독일의 도시건축저널. &#60;Die Kultur des Militärs&#62; 라는 제목으로 출간.
I.        Introduction
1937년 7월 7일,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다. 이어 1942년 12월 8일 일본이 미국의 영토인 펄하버를 공습함으로써 세계대전이 확전되었고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도 병참기지로 바뀌게 되었다.
1950년 6월 25일, 남한과 북한이 전면적인 전쟁에 돌입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adtBauwelt 2008. 09. 26] 서울의 군사문화</p>
<p>StadtBauwelt는 독일의 도시건축저널. &lt;Die Kultur des Militärs&gt; 라는 제목으로 출간.</p>
<h3>I.        Introduction</h3>
<p>1937년 7월 7일,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다. 이어 1942년 12월 8일 일본이 미국의 영토인 펄하버를 공습함으로써 세계대전이 확전되었고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도 병참기지로 바뀌게 되었다.</p>
<p>1950년 6월 25일, 남한과 북한이 전면적인 전쟁에 돌입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오늘까지 남북한은 준전쟁상태에 이르고 있다.</p>
<p>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장군이 쿠테타를 통해 집권했다. 그는 1979년 10월 26일 암살될 때까지 집권했다.</p>
<p>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장군이 쿠테타를 통해 집권했다. 그의 군대 동기인 노태우 대통령이 1993년 2월 25일 임기를 마침으로써 장군출신 대통령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p>
<p>20세기의 한국은 전쟁국가였다. 국민들은 전쟁을 직접 경험했거나 전쟁을 대비해야 했다. 군사문화는 한국 사회의 한 부분이 되었다. 군사용어가 일상화되었고, 수많은 사회조직이 군사조직을 닮아갔다. “싸우면서 건설하자.”는 구호 속에서 형성된 서울의 도시 풍경은 어떤 것인가. 과연 군사문화는 한국의 도시를 만드는데 어떤 역할을 했고 그 흔적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span id="more-70"></span></p>
<h3><span style="font-weight: normal;">I</span>I.        Japanese Colony</h3>
<p>40대 중반을 넘어선 한국 사람들의 중고등학교 졸업사진 앨범을 펼쳐보면 판박이 같은 얼굴들이 가지런하다. 모두 똑 같은 교복을 입고 있는 것이다. 교복을 입었다는 것은 단순히 지정된 옷을 입었다는 데 그치지 않았다. 안경테, 허리띠, 양말, 신발까지가 모두 통제가 되는 생활을 의미했다. 심지어는 책을 읽는 자세, 걸어 다니는 자세까지 모두 통제의 대상이었다. 중학교 남학생들의 머리는 모두 스님들처럼 빡빡 깎은 것이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것은 죽이지 말라’는 불교의 영향이 아니었다. ‘죽이지 않는다면 죽는다’는 군사적인 요구였다. 일본의 식민지 시기가 그 출발점이었다. 그 배경에는 병영으로서의 학교가 있다.</p>
<p>한국은 1910년부터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현대에 영향을 미친 한국의 근대적 대중교육은 바로 이 식민지시기에 시작되었다. 식민지에 시행되는 교육이 억압과 통제의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교육의 가치는 자유로운 사고, 창조적인 발상에 있지 않았다. 규범에서 벗어난 복장과 태도는 체벌로 다스려졌다. 한국인들에게 훈육과 체벌은 교육과정의 당연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지도록 각인되었다.<br />
그 억압은 일본이 전쟁을 시작함으로써 극단적으로 확대되었다. 일본에 의해 시행된 대중교육은 병영의 모습을 차용한 것이었다. 복장과 행동은 군대의 기준을 적용하였다. 운동장과 교실은 병영의 연병장과 막사의 모습을 고스란히 따랐다.<br />
일본의 점령은 한국에서 왕정의 붕괴를 의미했다. 서울에 산재한 왕족과 귀족의 저택들은 모두 주인 없는 공간이 되었다. 일본은 이 공간에 근대적 기관들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학교는 가장 대표적인 기관이었다..<br />
복장과 두발의 규제는 일제 강점기가 종료된 지 40년이 지난 1980년대 중반에 폐지되었다. 그러나 건물로서 학교의 모습은 그대로 아직도 남아있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 세워진 학교들도 모두 이전의 선례를 따라 병영의 모습으로 반복해서 세워졌다.<br />
군대의 병사들은 연병장에 줄 맞춰 서서 지휘관의 통제를 받는다. 학교의 운동장에서 학생들은 매주 조회를 섰다. 이 조회는 군대의 병사들이 사열을 하는 것처럼 줄을 맞춰 서서 진행된다. 운동장 앞의 구령대에서는 군대의 지휘관들이 진행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교사들의 지시와 명령이 전달된다.<br />
매년 한 두 번 운동장에서 진행하는 운동회는 아직도 학교의 가장 큰 행사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시작된 이 행사는 단순히 체육행사가 아니다. 백군과 청군으로 학생들을 나눈 상태로 진행되는 이 행사는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대결과 승리라는 군사적 대치방식이 학교 운동회의 구도다.</p>
<p>1937년 만주를 침략하면서 시작된 일본의 전쟁은 1945년 원자폭탄의 투하로 종결되었다. 전쟁 막바지의 일본은 서울에 중요한 흔적을 만들어 놓았다. 당시 서울의 주택은 모두 목조였고 도로패턴은 미로와 같았다. 전쟁 말기 미국이 일본을 폭격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식민지인 한국도 안전하다고 볼 수 없었다. 일본은 미국의 폭격 후 온 시가지로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완충공간을 서울에 만들었다. 건물들을 헐어내고 폭 50m 정도의 긴 띠 모양 공간을 서울의 한복판에 형성하였다. 미로 도시 한복판에 칼로 잘라낸 것처럼 형성된 기하학적인 공간은 기존 도시를 만들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논리의 개입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도시조직으로 선명하게 남아있는 이 완충지역은 이후 서울의 도시변화를 증언하는 중요한 공간이 된다.</p>
<h3>III.        Social Militarism</h3>
<p>학교에서 교복을 입었던 한국의 남자들은 다시 한번 제복을 입어야 했다. 교복과 달리 지금까지 굳건히 남아있는 이 제복은 바로 군복이다. 아직도 한국은 전쟁 중인 국가다. 남한과 북한은 휴전 상태일 뿐이다. 이 현실은 한국으로 하여금 선택의 여지 없이 징집제도를 고수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의 전쟁이 교복을 남겨놓았다면 한국전쟁은 군복을 남겨놓았다.<br />
20세기 후반 내내 한국은 냉전의 전초기지였다. 문제는 한국이 아닌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했고 그래서 일본이 항복을 했다는 데서 시작한다. 2차대전의 종결 이후 한국의 남쪽은 미국이, 북쪽은 소련이 진주하게 되었다. 냉전 시대의 분단지점이었다는 점에서 한국과 독일은 상황이 같았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는 분단 이후 한국은 전쟁을 치르고 그 이후 다시 분단 상황으로 복귀했다는 점이다.<br />
전 국토를 전쟁터로 몰아넣은 한국전쟁은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한반도를 제자리에 돌려 놓았다. 전국이 잿더미로 변한 상태에서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남북한의 관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대립경쟁구도를 넘어 무력적인 적대관계로 바뀌었다.<br />
이런 상황에서 징집제도는 당연한 것이었고 한국의 남자들은 모두 군사조직의 한 부분이 되었다. 한국의 징집제도는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한 흔적을 사회에 남겨놓고 있다. 하나는 군사문화를 사회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게 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남녀문제의 차별적 접근을 자연스럽게 허용한다는 것이다.</p>
<p>한국의 남자들은 20대 초반의 2,3년을 군대에서 보내야 한다. 군사적 경험은 학교 교육보다 훨씬 더 극심한 훈육과 체벌을 자연스런 사회화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장교든 사병이든 전역 군인들로 구성된 사회에서 사회조직이 군사조직을 모방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남성 위주의 조직일수록 그 정도가 심했다. 대표적인 것이 건설회사 조직이다.<br />
한국에서 1960년에서 1990년까지는 건설업의 시기였다. 폭격으로 무너진 도시를 재건하는 것은 바로 건설이었다. ‘싸우면서 건설하자’는 구호는 이 시기의 것이었다. 건설은 경제적 부흥의 가장 가시적인 성과물이었다. 1970년대 오일 붐에 힘입은 중동 건설에 한국 건설노동력이 참여하면서 건설산업은 한국의 경제성장에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었다.<br />
1961년부터 1993년까지 한국의 대통령들은 모두 장군출신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 한국은 건설국가였다. 서울시장을 비롯한 정부고위관료, 공기업의 최고책임자에 군인출신들이 임명되었다. 한국의 관료조직, 공기업조직은 군사조직과 민간조직의 혼합체가 되었다.<br />
군사조직을 움직이는 메커니즘은 목표의 설정과 달성이다. 한국의 건설문화는 휴일과 취침을 고려해서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들을 설정했고 이을 달성하기 위해 무자비한 개인의 희생을 요구했다. 계급에 따른 엄격한 위계조직, 직급에 근거한 일방적인 명령과 복종, 개인의 생활을 희생하는 윤리의식 등은 건설회사를 지탱하는 중요한 군사적 문화였던 것이다. 군사조직체로서의 건설조직체는 한국의 남자들에게 생소한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문화에서 가치판단은 단 하나, 목표가 이루어졌느냐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방법이 동원되었고 누가 희생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br />
가시적 성과를 중시하는 사업의 대표적인 예는 서울 중심가를 관통하는 청계천 복개였다.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서울의 하수망에서 청계천은 오염된 하수로였다. 서울시는 하수망 정비가 아닌 하천 복개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위에 고가고속도로를 건설했다. 문제가 되는 곳은 가리고, 보이지 않는 곳은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이 뚜렷하게 표명된 것이다. 일본이 남긴 띠 모양의 피난공간에는 세계에 보여준다는 이름을 가진 세운상가를 세웠다.<br />
그러나 위계, 보고, 과시로 표현되는 군사문화의 성과 뒷면에서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장애인, 노약자 등과 같은 사회 소수에 대한 배려가 없는 도시조직, 준공 시 화려하나 내구성 없는 구조물, 속도만능의 자동차 중심 도시체계 등은 규모, 형식, 속도에 집착하는 군사문화의 결과인 것이다. 이렇게 만든 건물과 사회기반시설들은 건립 2,30년 만에 철거의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몇몇 주요 사회구조물들은 스스로 붕괴가 됨으로써 군사작전처럼 시행한 건설의 결과들을 하나 둘 보여주기도 했다. 경직된 관료조직, 수동적 사회구성원의 양성 등 군사문화가 지탱하는 사회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반성을 요구했다.</p>
<p>한국의 징집제도는 국민전체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남자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청년기의 중요한 시기를 군대에서 보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희생이라는 점에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19세기까지 비대칭적이던 한국의 남녀관계는 이 희생의식과 보상심리를 통해 좀 다른 방식으로 변화해 나갔다. 사회가 남성의 집단적 일탈을 상당부분 묵인하는 것이다.<br />
남성중심의 향락문화는 한국사회만의 특징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도시의 뒷골목 풍경을 이루는 집단적이고 소비적인 남성문화는 다른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그 문화에 한국 남성들을 입문하게 하는 시기가 대체로 군 복무 전후다. 이 문화를 확대재생산하는 중심에는 병역이 있는 것이다.<br />
입대 전후와 휴가기의 일탈에 대해 한국 사회는 관대한 입장을 표명해왔다. 이러한 일탈은 음주에서 성적인 향락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이들을 수용하는 상업시설들은 휴게실, 안마시술소, 이발소, 룸살롱 등 제목만으로는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는 다양한 것들이다. 바로 이들이 한국의 도시 내 뒷골목 풍경을 발전시켜왔다. 성매매는 공식적으로는 불법이지만 공창에 가까운 사창가가 도시 조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군복무에 기반한 피해보상의식, 공동체의식을 배제하고는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br />
한국의 전통적인 공동체 의식은 남자들의 경우 병역에 기반해서 좀더 강화된다. 도시뒷골목 향락공간의 이용 단위가 개인이 아닌 집단이라는 점은 이를 잘 설명해준다. 즉 각종 다양한 도시뒷골목 공간을 이용하는 동기를 향락 자체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공범의식을 통해 남성공동체를 확인하려는 의미가 배경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현란한 네온사인과 광고판으로 표현되는 한국 뒷골목 풍경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배경에는 이런 군사적 남성공동체 문화가 깔려있다.</p>
<p>군사문화를 형성하고 있다는 배경에서 남한과 북한이 같은 점이 있다. 도시 내에 구호가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남한은 도시에 내거는 구호와 함께 상업시설의 간판이 더해지면서 북한의 경우보다 더 혼잡한 도시경관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키자, 이루자, 없애자 등과 같은 단어로 끝나는 원칙론적이고 선동적 구호들은 한국의 사회가 군사문화의 연장에 들어서 있다는 모습들이기도 하다. 학교에서부터 시작된 구호문화는 군대에서 확장되고 학습된다. 도시 내에 혼란하게 내걸렸으되 공허한 구호들은 한국 시민들에게 자연스런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것이다.</p>
<h3>IV.        Horror of Invasion from North Korea</h3>
<p>한국전쟁 이후 남한사회 전체에는 언제 북한이 침략이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팽배하게 되었다. 1968년에 북한의 특공암살부대가 청와대의 뒷산까지 침투한 사건은 이 위협이 허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1974년에는 대통령의 암살기도 사건으로 인해 영부인이 시해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br />
주변을 병풍처럼 산이 둘러싸고 있고 그 복판에 한강이 흐른다는 것은 서울의 중요한 경관자원이다. 그러나 냉전시대의 서울은 그렇게 한가한 공간이 아니었다. 서울이 북한 미사일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은 남한 전체에 끊임없는 불안을 안겨주었다. 서울은 시민들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은 절박한 공간이었다.<br />
언제 있을지 모르는 북한의 침략에 대비하여 서울은 전체가 요새가 되어야 했다. 북쪽에서 서울에 이르는 간선도로에는 모두 대전차 장애물이 설치되었다. 한강 하류 북한에 가까운 곳에는 북한의 잠수특공부대의 침입에 대비해 철조망이 설치되었다. 서울 주변의 높은 산과 고층 건물 옥상은 모두 군부대가 주둔하는 공간이 되었다. 당연히 시민들의 접근은 통제되었다. 고층건물을 지을 때도 그 지점에서 청와대를 저격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고려되었다.<br />
아직도 풍수사상이 배후에 널리 깔려있는 한국사회에서 자연은 또 다른 유기체로 인식되곤 한다. 서울 중심부의 남산도 성역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그러기에 남산을 관통하는 굴을 만든다는 것은 인간의 신체를 뚫는 것만큼이나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제안이다. 그러나 지하시설이 북한의 폭격에 대비한 방공호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남산에 무려 세 개의 터널을 뚫게 하는 근거가 되었다.<br />
지하철 역사는 모두 폭격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고 신축건물에는 지하실이 설치되어야 했다. 북한의 공격으로 수도공급이 끊겼을 때를 대비해서 건물에는 지하저수조 설치가 의무화되었다. 고속도로는 비상시 비행기 활주로로 사용될 가능성을 고려했다.<br />
한국전쟁은 학습효과를 갖고 있었다. 당시 유일하던 서울의 한강 다리가 파괴되어 북쪽의 시민들이 피난하는데 막심한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 때문에 한강은 골치거리였다. 새로 놓을 다리의 위치는 군사작전과 시민피난을 고려해서 설정되었다. 특히 폭격으로 파손이 되었을 경우 가장 쉽게 복구될 수 있는 다리도 조성되었다. 교각의 높이가 높지 않아 비교적 쉽게 상판을 다시 얹을 수 있는 이 다리는 장마기간 한강의 수위가 높아지면 물에 잠기게 되었다. 잠수교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br />
그러나 이런 요새화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서울의 주요 행정기능을 모두 남쪽으로 옮겨서 미사일 사정거리를 벗어난다는 해결책이 등장했다. 통일이 될 때까지 임시로 수도전체를 남쪽으로 옮긴다는 계획은 대통령의 암살로 더 이상 추진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행정부의 일부 기능은 서울의 남쪽으로 이전을 했다. 미사일 사정거리를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높은 산을 배경으로 해서 북쪽의 미사일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이 위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였다<br />
북한은 대외적으로 경쟁대상이었다. 남한과 북한의 경쟁은 닉슨(Nixon)과 후르시체프(Khrushchev)의 키친논쟁(kitchen debate)이 보여주는 입씨름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것이었다. 국립공연장의 규모를 결정하는 데는 한국의 공연시장규모가 고려되는 것이 아니었다. 북한의 공연장보다 규모가 커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광장도 다리도 북한의 것들보다 크고 넓어야 했다.</p>
<p>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군인정신으로 성취해낸 사건의 하이라이트는 1988년 서울올림픽일 것이다. 올림픽을 치러낼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자원을 갖추지 못한 한국이 올림픽을 유치하게 된 과정부터 필요한 시설을 제시된 시간 안에 맞춰 건설해 낸 것까지의 경과는 모두 한국 사회를 버티고 있는 군사문화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br />
세계가 주목하는 올림픽의 유치는 올림픽이 열릴 때까지 북한의 위협에 대해 안전하고 유효한 방패막이였다. 아울러 북한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유하게 되었음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도구이기도 했다. 올림픽은 군사문화를 바탕으로 한 한국 건설산업의 정점이기도 하면서 이제 그 효용이 다 하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알려주는 기점이 되었다. 가장 상징적인 모습은 한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br />
서울의 상징인 한강이 올림픽 기간에 피사체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강에는 유람선도 떠 있어야 외국의 강처럼 제대로 된 강의 모습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유람선을 운행하기에 지형상 한강의 수심은 너무 낮았다. 한강의 하구에 댐을 세워 수심을 높이자는 제안은 군사문화가 군림하지 않았다면 선택되지 않았을 것이다. 가시적 성과를 위해서는 생태환경의 교란은 아예 고려대상이 되지 않았다. 북한의 남침에 대비해 낮은 교각으로 조성된 잠수교가 유람선 운행에 걸림돌이 되었다. 유람선이 통과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다리는 활처럼 부풀어 올려졌다. 피난과 생존을 위해 건설하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알리는 모습이었다.</p>
<h3>V.        American Forces in Seoul</h3>
<p>한국은 미국의 힘으로 일본에게서 해방되었고, 미국의 도움으로 한국전쟁을 치러냈고, 미국의 주둔으로 북한의 공격을 막고 있었다. 미국은 한국에서 한국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닌 국가가 되었다. 휴전협정에서 한 가지 더 곤혹스런 점은 이 협정의 주체가 남한과 북한이 아닌 미국과 북한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서울의 도시 모습을 규정하는 중요한 단서들이다.<br />
한국인들에게 양키(Yankee)는 미국인들이 아니고 미군들이었다. 미군들은 강대국 미국인들이면서 별볼일 없는 군인들이기도 했다. 미군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입장은 긍정과 부정이 교차하는 것이었다. 1970년 대까지 미군부대를 통해 유통되는 군수품은 이국적이고 품질 좋으나 비공식 유통경로로 흘러 든 물건이었다. ‘양키물건’은 특별한 그 무엇이었다.</p>
<p>서울의 동쪽 끝에 자리잡은 워커힐(Walker Hill)이라는 이름은 바로 미국의 예외적 위치를 보여준다. 워커는 한국전쟁 중 전사한 주한유엔군 사령관의 이름이다. 워커힐 호텔은 최근까지도 한국에서 카지노가 허용되는 유일한 공간이면서 완벽하게 서양적인 쇼가 진행되는 공간이었다.<br />
서울의 지도를 놓고 보면 한 복판에서 기형적인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남쪽에서 한강을 건넌 지하철 노선이 갑자기 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기존의 노선과 필요 이상으로 인접해서 지나가는 것이다. 한강을 건넌 도로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방향을 바꾼다. 자동차도 지하철도 중심을 비껴가야 하는 공간 때문에 서울은 도넛처럼 가운데가 비어있는 이상한 도시가 되었다.<br />
바로 이곳은 미군이 주둔해 있는 곳이다. 서울의 복판은 한국 대통령도, 서울 시장, 서울 시민도 손을 댈 수 없는 성역이었다. 미군이 주둔한 용산은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이 주둔하던 곳이었다. 광복 이후에 미군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당연해 보였다. 모든 도시계획은 미군기지를 제외하고 고려되어야 했다.<br />
서울 복판의 미군기지는 도시구조의 왜곡을 가져왔다는 점 외에 독특한 부산물을 낳았다. 미군의 문화가 서울에 도입되는 지점으로서의 이태원이라는 지역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수입된 문화가 미국이 아니고 미군의 문화라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군인들의 문화는 소비적이고 향락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문화에서도 소비적이고 순간적인 문화가 한국에서 왜곡되어 미국을 대변하게 되었다. 미군문화를 바탕으로 이태원은 한국과 미국이 혼합된 소비와 향락의 공간으로 변화해나갔다. 한국에서 미국의 문화는 동경과 멸시를 동시에 받는 것이 되었고 이태원이 바로 그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p>
<h3>VI.        Militarism Afterward</h3>
<p>한국전쟁 이후 한국이 이루어낸 경제적 성과는 한국인들 스스로에게도 놀라운 것이다. 그 결과는 한국의 발전상을 과시하기 위해 그림엽서에 등장하는 서울의 전경이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2000년대 초반 한국이 경제규모 13위에 이르는 국가가 되는 데에는 군사적인 동원문화가 큰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br />
올림픽을 지나면서 한국 사회는 북한에 대한 비교우위를 확인하게 되었다. 북한은 무력이라는 점에서는 위협요소이기는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더 이상 경쟁상대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이런 면에서 군사 문화에 힘입은 성장 위주의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는 단순하지 않다.<br />
유보된 민주사회와 희생된 개인, 계층을 무시할 수 없다. 경제성장의 배경에 군사문화가 유일한 힘으로 깔려있던 것도 아니다. 근면한 윤리의식, 유교적 교육열 등이 모두 지목이 될만한 내용들이다. 그리고 경제성장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달성해야 할 사회의 유일한 가치도 아니다. 그러나 경제성장은 분명 가장 중요한 가치의 하나다. 특히 절대빈곤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던 전쟁 직후의 사회가 오늘의 경제성장을 이루는 원동력의 하나였던 군사적 동원문화의 흔적을 오늘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도 공정한 평가는 분명 아니다.</p>
<p>문제는 미래에 있다. 남북한의 대결구도가 달라지고 있다. 남한의 대통령이 북한의 수도 평양을 방문하기에 이른 것이다. 서울도 변화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명실상부하게 환경이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신속한 의사결정보다 민주적 의사결정이 지닌 가치가 인정되고 사회적 소수의 존재도 인식되기 시작했다.<br />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우선 청와대 근처의 산에 등산이 허용되었다. 청와대를 내려다보는 것이 허용된 것이다. 도로를 막아서던 대전차 장애물도 철거되기 시작했다. 미술작품으로 바꾸는 방식을 찾아보자는 제안도 등장했다.<br />
1970년대의 경제성장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진은 청계천고가도로와 31빌딩이었다. 우리도 남들처럼 도시 내에 고속도로와 고층건물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근대화, 산업화의 길을 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2002년 서울시민들은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를 시장으로 당선시켰다. 그리고 2005년 청계고가도로가 철거되고 청계천이 복원되었다. 경제가 아닌 환경이 도시의 화두라는 데 시민들이 동의한 것이다. 물론 철거를 진행하고 청계천을 복원하는 과정 역시 급박한 일정을 정하고 그에 맞춰 사업을 진행했다는 점에서는 군사문화의 흔적을 지우지 못했다. 그러나 더 이상 개발과 성장으로 도시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방향 전환은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것이다.<br />
이제는 세운상가도 헐어내고 그 자리에 공원을 만들겠다는 계획도 수립되었다. 폭격에 대비한 피난처도, 군용활주로로 쓰려던 광장도 공원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교통량이 증가하면서 잠수교 위에는 새로운 다리를 놓았다. 잠수교도 새로운 청사진으로 그려졌다. 이제 잠수교를 보행자 전용교량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한강을 따라 서울을 가로지르면서 더 빨리, 더 많은 자동차를 실어 나르던 한강변 고속도로들이 시민들의 한강접근을 막는다고 비난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도 변화의 모습이다. 행정부를 옮기기 위한 계획이 다시 수립되었지만 이번의 계획은 북한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서울중심의 국토계획에서 벗어나 균형 잡힌 국토계획을 수립한다는 것이 이유였다.<br />
서울의 복판을 점유하고 있던 미군부대도 2011년경까지 지방으로 이주하는데 동의했다. 미국의 점유로 인해 역설적으로 개발압력의 진공지대로 남아있던 이 공간을 어떻게 바꾸는가 하는 것은 2000년대 초반 한국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p>
<p>군사적 동원문화로 만든 도시는 건설만큼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시민 개인의 생활에 투입된 군사적 흔적은 쉽게 희석되지 않고 있다. 통일이 되지 않은 시점에서 아직도 징병제도는 시행되고 있다. 병역은 아직 논리적인 접근이 쉽지 않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도시뒷골목에 자리잡은 남성중심의 향락적 소비시설도 여전히 번창하고 있다. 한국이 군사문화를 과거형으로 회상하게 되는 것은 아마 통일 이후의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통일은 한국과 한국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독일의 예가 보여주듯이.</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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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벤치디자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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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6 Oct 2008 21:51:44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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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2008년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벤치 디자인에 참가해서 작은나마한 상하나 수상했습니다.
입선..(사실 더 높은 상을 기대했으나&#8230;흑..ㅠㅠ)
하지만 실제로 만들어져서 뿌듯합니다. 입선들 작품중에 우리꺼만 실제로 만들어져  본상작품들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는것에 만족~~~!!
부끄럽지만 이렇게 올립니다.^^ 
  
저희가 디자인한 벤치가 실제로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서울 디자인 올림픽 전시장에서 전시중이니깐 혹시 널러갈일 있음 저희 벤치에 꼭 앉아보시고 오세요~ㅎㅎ
저희 팀 의자만3개가 만들어져 있더라구요~ ㅎㅎ
저희가 디자인한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saltworkshop.net/salt/wp-content/uploads/2008/11/1.jpg"><img class="alignnone size-medium wp-image-203" title="1" src="http://saltworkshop.net/salt/wp-content/uploads/2008/11/1-500x281.jpg" alt="" width="500" height="281" /></a></p>
<p><a href="http://saltworkshop.net/salt/wp-content/uploads/2008/11/1.jpg"></a>2008년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벤치 디자인에 참가해서 작은나마한 상하나 수상했습니다.</p>
<p>입선..(사실 더 높은 상을 기대했으나&#8230;흑..ㅠㅠ)</p>
<p>하지만 실제로 만들어져서 뿌듯합니다. 입선들 작품중에 우리꺼만 실제로 만들어져  본상작품들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는것에 만족~~~!!</p>
<p>부끄럽지만 이렇게 올립니다.^^ <span id="more-202"></span></p>
<p><a href="http://saltworkshop.net/salt/wp-content/uploads/2008/11/2.jpg"><img class="alignnone size-thumbnail wp-image-204" title="2" src="http://saltworkshop.net/salt/wp-content/uploads/2008/11/2-150x150.jpg" alt="" width="150" height="150" /></a> <a href="http://saltworkshop.net/salt/wp-content/uploads/2008/11/3.jpg"><img class="alignnone size-thumbnail wp-image-205" title="3" src="http://saltworkshop.net/salt/wp-content/uploads/2008/11/3-150x150.jpg" alt="" width="150" height="150" /></a> <a href="http://saltworkshop.net/salt/wp-content/uploads/2008/11/7.jpg"><img class="alignnone size-thumbnail wp-image-206" title="7" src="http://saltworkshop.net/salt/wp-content/uploads/2008/11/7-150x150.jpg" alt="" width="150" height="150" /></a></p>
<p>저희가 디자인한 벤치가 실제로 만들어졌습니다.</p>
<p>지금 서울 디자인 올림픽 전시장에서 전시중이니깐 혹시 널러갈일 있음 저희 벤치에 꼭 앉아보시고 오세요~ㅎㅎ<br />
저희 팀 의자만3개가 만들어져 있더라구요~ ㅎㅎ</p>
<p>저희가 디자인한 첫번째 1:1 구축물입니다. 마니마니덜 보러와주세요^^ </p>
<p>Design by 박성수, 박정선</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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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수원영통 체육시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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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9 Jul 2008 22:06:59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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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works]]></category>

		<category><![CDATA[김광식]]></category>

		<category><![CDATA[체육시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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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H사로 옮기면서 시작한 프로젝이에요&#8230;
나름 애환도 있었고 즐거움도 있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체육시설용지에 짓는 체육시설이긴해도 약간의 상업성으로 포장을 했어요..
그간 많은 대안과 조건이 변해가면서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나름의 결과물이 나와서 다행스럽게 생각됩니다.

아직 지어질려면 여러 고비가 있을 듯 싶은데요.
심의통과하고 허가단계까지는 어찌어찌 왔는데 말이죠&#8230;
지금껏 그래 왔듯이 정리가 잘 되길 바래봅니다. posted by 김광식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saltworkshop.net/salt/wp-content/uploads/2008/11/suwon1.jpg"><img class="alignnone size-medium wp-image-213" title="suwon1" src="http://saltworkshop.net/salt/wp-content/uploads/2008/11/suwon1-384x500.jpg" alt="" width="384" height="500" /></a></p>
<p>H사로 옮기면서 시작한 프로젝이에요&#8230;</p>
<p>나름 애환도 있었고 즐거움도 있는 프로젝트였습니다.<br />
체육시설용지에 짓는 체육시설이긴해도 약간의 상업성으로 포장을 했어요..<br />
그간 많은 대안과 조건이 변해가면서 우여곡절도 많았지만<br />
나름의 결과물이 나와서 다행스럽게 생각됩니다.<span id="more-212"></span></p>
<p><a href="http://saltworkshop.net/salt/wp-content/uploads/2008/11/suwon2.jpg"><img class="alignnone size-medium wp-image-214" title="suwon2" src="http://saltworkshop.net/salt/wp-content/uploads/2008/11/suwon2-500x492.jpg" alt="" width="500" height="492" /></a></p>
<p>아직 지어질려면 여러 고비가 있을 듯 싶은데요.<br />
심의통과하고 허가단계까지는 어찌어찌 왔는데 말이죠&#8230;</p>
<p>지금껏 그래 왔듯이 정리가 잘 되길 바래봅니다. posted by 김광식</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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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남통 효성 변압기 공장 사무동 및 영업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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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8 Jul 2008 22:22:30 +0000</pubDate>
		<dc:creator>salt robot</dc:creator>
		
		<category><![CDATA[staff works]]></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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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남통]]></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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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졸업한지 몇년이 지나서야 겨우 준공을 해봅니다.
효성에서 변압기 공장을 중국에 건설하는데, 사무동과 영업동을 폼나게(?) 하고 싶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작년 초에 외관 디자인과 더불어 두 건물 사이의 외부공간을 아울러서 계획했습니다.
작년 여름에 공사를 시작했고, 시공과정에서 두세번 재료관련 협의를 하고, 뭔가 법적인 문제때문에 사무동 입면디자인을 대대적으로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 드디어 올해 5월말에 준공이 되었습니다.

 

현장을 한번도 못가본게 아쉽습니다.
남통(Nan-Tong)은 상하이에서 조금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color: #0000ee; text-decoration: underline;"><a href="http://saltworkshop.net/salt/wp-content/uploads/2008/11/hyosung_cg.jpg"></a><a href="http://saltworkshop.net/salt/wp-content/uploads/2008/11/hyosung_cg.jpg"><img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222" title="hyosung_cg" src="http://saltworkshop.net/salt/wp-content/uploads/2008/11/hyosung_cg.jpg" alt="" width="500" height="708" /></a></span></p>
<p>졸업한지 몇년이 지나서야 겨우 준공을 해봅니다.</p>
<p>효성에서 변압기 공장을 중국에 건설하는데, 사무동과 영업동을 폼나게(?) 하고 싶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p>
<p>작년 초에 외관 디자인과 더불어 두 건물 사이의 외부공간을 아울러서 계획했습니다.<br />
작년 여름에 공사를 시작했고, 시공과정에서 두세번 재료관련 협의를 하고, 뭔가 법적인 문제때문에 사무동 입면디자인을 대대적으로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 드디어 올해 5월말에 준공이 되었습니다.</p>
<p><span id="more-221"></span></p>
<p> </p>
<p><a href="http://saltworkshop.net/salt/wp-content/uploads/2008/11/hyosung_completion.jpg"><img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223" title="hyosung_completion" src="http://saltworkshop.net/salt/wp-content/uploads/2008/11/hyosung_completion.jpg" alt="" width="500" height="1363" /></a></p>
<p>현장을 한번도 못가본게 아쉽습니다.</p>
<p>남통(Nan-Tong)은 상하이에서 조금 북쪽에 있다고 하는데, (중국에서 조금은 조금이 아니라는데..ㅡ.,ㅡ?) 기회가 되면 휴가를 상하이-소주 묶어서 가면서 남통쪽으로 하루이틀 빠져서 건물을 보고오고 싶십니다. 하윤이가 좀 더 크면..^^</p>
<p>관련기사<br />
<a href="http://www.asiaeconomy.co.kr/uhtml/read.php?idxno=2008052910031358557" target="_blank">http://www.asiaeconomy.co.kr/uhtml/read.php?idxno=2008052910031358557</a></p>
<p>posted by 신민재</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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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건축학회지-발언과 논평] 교수, 건축의 적인가</title>
		<link>http://saltworkshop.net/salt/2008/02/%ea%b1%b4%ec%b6%95%ed%95%99%ed%9a%8c%ec%a7%80-%eb%b0%9c%ec%96%b8%ea%b3%bc-%eb%85%bc%ed%8f%89-%ea%b5%90%ec%88%98-%ea%b1%b4%ec%b6%95%ec%9d%98-%ec%a0%81%ec%9d%b8%ea%b0%8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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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4 Feb 2008 07:28:31 +0000</pubDate>
		<dc:creator>salt robot</dc:creator>
		
		<category><![CDATA[writing]]></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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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심판]]></category>

		<category><![CDATA[현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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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건축학회지, 2008, 01]
자탄의 시대다. 자괴의 시대라고도 한다.
대한민국 건축계의 현실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에 대한 한탄의 목소리가 높다. 비교하는 다른 나라의 예가 많다. 독일 국회의사당 준공식에서는 건축가가 황금열쇠를 총리에게 전해주었다더라.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준공일지를 보니 서문을 대통령이 썼고 현장 감독하는데 건축가가 대통령을 인도하더라. 이집트 피라밋 준공서적에 파라오 다음으로 알려진 이름이 건축가 혹은 현장소장이던 임호텝이더라 등.
그런데 한국의 건축가들은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건축학회지, 2008, 01]</p>
<p>자탄의 시대다. 자괴의 시대라고도 한다.</p>
<p>대한민국 건축계의 현실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에 대한 한탄의 목소리가 높다. 비교하는 다른 나라의 예가 많다. 독일 국회의사당 준공식에서는 건축가가 황금열쇠를 총리에게 전해주었다더라.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준공일지를 보니 서문을 대통령이 썼고 현장 감독하는데 건축가가 대통령을 인도하더라. 이집트 피라밋 준공서적에 파라오 다음으로 알려진 이름이 건축가 혹은 현장소장이던 임호텝이더라 등.</p>
<p>그런데 한국의 건축가들은 준공식에 초대가 되지도 않고 된다한들 박수치는 관객석에 안제 되더라. 화려한 프로젝트의 현상공모에는 외국건축가만 초대되더라. 한국건축가가 초대돼도 들러리밖에는 되지 않더라 등.</p>
<p>불만의 대상은 맞다. 세상이 이상하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외국출장을 너무 많이 다녀서인지 국가상징조형물을 만들어야 한다고, 모든 도시가 관광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관광도시, 관광사업은 대한민국 모든 지방자치단체장의 크고 작은 공약이 되어 있다. 그래서 명품건축이 필요하고 명품건축가가 동원되어야 한다고 한다.</p>
<p>문제인 것도 맞다. 풀어야 한다. 문제는 외부에서 풀어주는 것이 아니고 건축계가 풀어야 한다. 국내의 건축가들이 좋은 건물을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 문제를 푸는 첫 번째 열쇠다. 좋은 건물을 만들려면 좋은 디자인이 선택되어야 한다. 그 길은 경쟁에 있다.</p>
<p>건축에서 경쟁은 당연히 현상공모를 일컫는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공정한 현상공모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공정한 현상공모심사가 좋은 디자인을 선정하고 좋은 건물을 만드는 출발점이다.<span id="more-337"></span></p>
<p>이제 물음은 내부의 것이 된다. 대한민국의 현상공모 심사는 공정한가. 답은 유보적이다. 공정한 심사도 있고 공정하지 않은 심사도 있다. 문제는 중요한 심사일수록 공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설계비가 커지고 공사비가 커지고 사업의 지명도가 높아질수록 심사는 혼탁하고 뒷이야기들로 무성해진다. 건축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폐지의 목소리가 높은 턴키심사의 경우 혼탁도는 더욱 증가한다. 우리가 신문사회면에서 익히 듣던 학연, 지연이 최대한 동원되는 것이 바로 이 경우다.</p>
<p>선수들은 스스로 공정해질 수 없다. 공정한 게임은 심판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선수 중 누군가가 반칙을 해서 이익을 보게 되면 다른 선수들도 반칙을 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심판이다. 건축에서 심판은 바로 현상공모의 심사위원들이다.</p>
<p>대한민국에서 가장 커다란 심사위원 집단은 바로 교수들이다. 중요한 사업의 공모마감 시점에는 학교 복도가 복잡해진다. 수많은 선수들이 심판의 연구실 앞을 서성거린다. 이 선수들은 반칙을 하는 선수들이다. 심사위원 사전 접촉금지는 대개의 발주처가 내거는 요구조건이다. 그래서 수 백 명의 심사위원풀도 만들고 심사장에서 서약도 받는다. 그러나 이 공정한 의지를 앞장서서 훼손하는 것이 바로 건축계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반칙을 해서 이 반칙이 관례화되어 이것이 반칙인지 아닌지도 혼란스러운 것이 건축계의 현실이다. 세상은 밝은 빛 아래 바로 서겠다는데 도도히 그늘을 만들고 담합하고 휘청거리는 것이 건축계의 오늘이다.</p>
<p>반칙을 바로 잡는 것은 심판인 교수들이 먼저 시작해야 한다. 궁색하지만 변명은 있다. 짧은 심사시간에 충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으므로 사전에 설명을 하는 것이 심사를 위해서도 좋다고 한다. 그러나 묻자. 심사시간에 도면을 읽고 파악할 수 없다면 그것은 제출한 집단의 표현능력부족이거나 이를 읽는 심사위원의 이해능력부족 둘 중의 하나다. 그 어느 경우도 공모전이라는 경쟁구도에서 변명의 구실이 되지 못한다. 사전에 설명을 하겠다는 주체가 경쟁사의 계획안을 모략하지 않고 공정하게 장단점을 설명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믿는다면 심사위원의 자격이 없다.</p>
<p>더욱 이 변명이 구차한 것은 설명 자료라는 것을 들고 학교를 찾는 이들이 설계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차피 회사에서 시켜서 다른 사람의 설계내용을 몇 마디 듣고 학교를 찾는 이들의 설명을 들어야 도면을 이해할 수 있다는 논리는 허구다.</p>
<p>경쟁의 최선의 가치는 공정한 경쟁이다. 그러나 여기서 등장하는 설명, 홍보는 모두 심사위원 사전접촉, 로비와 완전히 동의어들이다. 설명이 부족하다고 하면 비공식적인 학연, 지연의 틀을 빌리지 말고 공개적으로 발주처에게 요구하여 설명시간을 요구하는 것이 공정한 게임을 하는 방법이다.</p>
<p>사전에 특정업체의 설명을 들어도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좋은 작품을 뽑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보인다. 그러나 현상공모가 설계경기라는 일본식 조어로 대체될 수 없는 이유는 심사위원들이 줄자와 초시계를 들고 심사장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건축현상공모 심사의 가장 중요한 잣대는 심사위원들의 가치관과 철학이다. 사전에 특정한 설명을 듣고도 심사에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확고한 가치관과 철학을 지닌 심사위원이 한국건축계의 다수를 점하고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p>
<p>다시 복도의 풍경을 보자. 중요한 사업이 걸린 시기에는 전국 설계사무소 소장, 건설사 현장소장들이 현업을 접은 채 설명 자료를 들고 언제 올지도 모르는 교수의 연구실 앞을 배회해야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 건축발전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일 수 없다.</p>
<p>다른 변명도 있다. 대학동기들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어떻게 막느냐고도 한다. 당연히 문을 걸어 잠글 필요가 없다. 다만 커피마시고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면 된다. 굳이 책상 앞에 현상설계, 턴키제출안을 놓고 설명하려는 것만 삼가게 하면 된다. 심판들이 공정한 게임을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면 선수들이 단념하게 된다. 교수들이 설명을 듣지 않는다고 하면 수 많은 소장들이 자리를 비우지 않아도 된다. 설명 자료를 따로 만든다고 엄청난 액수의 유인물을 새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p>
<p>이 사회와 역사는 증언한다. 미술계의 위신을 수시로 땅에 곤두박질치게 만드는 것은 공모전의 심사비리가 드러났다는 보도들이다. 조선시대의 후반부가 혼탁하고 혼미해진 것은 삼정이 문란해지면서 국가의 공정성이 근본적으로 훼손이 되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출발을 보였던 남아메리카가 오늘날 혼돈의 나락에 빠져있는 것은 바로 공정하지 못한 사회체제 때문이다.</p>
<p>근대사에서 건축으로 본 한국의 출발은 일천했다. 일제 강점기에 의해 전통은 단절되었고 한국전쟁으로 인해 국토는 황무지가 되었다. 사회를 꿰뚫고 있던 불공정한 가치체계에서 건축이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사회가 별하고 있는 만큼 건축계가 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현상공모, 턴키다. 공정하지 못한 건축의 게임은 수많은 재능 있는 젊은 건축가 지망생들을 건축 외부로 밀어냈다.</p>
<p>한국 건축계가 처한 현실에 대한 한탄의 목소리를 다시 들어보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탄이 아니고 문제를 바로 잡겠다는 의지다. 그 의지의 표명은 가장 좋은 계획안을 뽑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 단추를 끼울 집단을 적시하자면 그것은 교수들이다. 공정한 게임을 위한 노력이 없이 건축계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위선이나 무지 둘 중의 하나다. 교수가 건축의 적이 될 때 건축의 미래는 없다. 교수들이 시작해야 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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