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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기획] 계절을 담은 아파트

[동아일보 2007/10/17]

알싸한 바람이 코끝에 닿는다. 찬 빗방울이 손을 스친다. 집에서는 계절의 느낌이 나야 한다.

주택을 쌓아 올려 만든 것. 아파트에 관한 인식은 대개 이렇다. 그러나 주택이 아파트가 되면서 건물은 쌓였지만 마당은 사라졌다. 계절과 놀이의 감수성을 담을 공간이 사라진 것이다. 대신 그 자리에 계단, 엘리베이터, 복도가 들어섰다. 아파트는 기계와 같은 기능복합체의 모습이 된 것이다. 우리의 주거에서 시는 사라지고 설명서만 남았다.

편하다. 안전하다. 쾌적하다. 아파트의 성취는 눈부시다. 그러나 획일화, 익명성의 비난도 무시할 없다. 우리가 아파트에서 아쉬워하는 것들은 대개 마당과 함께 사라진 것들이다. 아파트에서도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 지금의 발코니와 같이 흔적만 남아 있다가 확장공사의 제물이 되는 공간이 아니다. 바람도 불고 바깥의 소리도 들리는 곳. 나무도 자라고 농구도 할 수 있는 마당.

여기서 제시되는 마당은 두 층 높이를 갖는다. 따라서 단위세대는 복층형이 기준이다. 주택이 그렇듯 마당을 거쳐 현관으로 들어간다. 지금의 아파트들은 엘리베이터, 복도에서 바로 현관문이 연결된다. 이처럼 현관 위치의 고정은 전국의 아파트들을 방과 거실이 빼곡한 채 모두 비슷해지게 만드는 첫 족쇄였다. 마당이 아파트에 들어서면 아파트가 숨 쉴 공간을 갖게 되고 집도 사는 이들이 더 자유로와진다. 아파트가 주택을 닮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을 단위의 마당도 필요하다. 이제 지리적, 혈연적 인근관계에 의해 형성되던 공동체의 시대가 지나갔다. 새로운 공동체는 사회적 인근관계에 의해 형성되기 시작했다. 사회적 혼합이 건강한 사회를 위해 중요하다고 강조해도 도시의 공동체는 이미 사회적 배경을 공유하는 구성원들 사이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각 아파트 동마다 이러한 공동체를 담을 수 있는 마을 마당이 조성되어야 한다. 건물의 허리부분 곳곳이 그 위치들이다.

유아원이나 탁아소가 우선 마을 마당의 역할을 해야 한다. 육아문제는 한국사회에서 유능한 여성인력의 사회진출을 가로막는 가장 중요한 장벽이다. 이 문제의 해결주체는 개인과 가족이 아닌 사회가 되어야 한다. 탁아소는 아파트에 필수적으로 설치되는 마을 마당이 되어야 한다. 체육시설, 근린상업시설 등의 공간도 마을 마당으로 건물의 한부분이 된다. 지금 과잉중복 공급되는 세탁실도 공용세탁공간으로 바뀌어 새로운 마을 마당이 될 수 있다. 놀이와 노동의 공유가 공동체의 출발점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도시는 택지를 공급하기 위해 계속 확장되고 새로 조성되어 왔다. 도시의 개발주체들은 경사면은 깎고 메워 평지를 만들었다. 이 평지에 도로를 만들고 여기서 구획된 대지를 분양하면서 신도시를 만들어 왔다. 이 대지에 들어서는 아파트들은 시끄럽고 위험하다고 도로를 혐오해 왔다.

우리에게 얼마나 더 신도시가 필요한지는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새로운 도시를 만든다면, 있는 도시를 고친다면 그 도시의 대지는 도로 위를 이용할 수 있다. 도로의 상부는 주거공간이고 하부는 업무공간이 될 수 있다. 평지를 요구하는 도로를 만들기 위해 땅을 깎고 메울 필요가 없다. 이전에 대지가 되기 위해 희생되던 자연은 그대로 자연으로 남을 수 있다. 아파트 창밖으로 질주하는 자동차가 보이는 것이 아니고 자연 그대로의 숲이 보이게 된다. 숲은 언제나 그렇듯 계절을 알려준다. 그 숲이 도시의 마당으로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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