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2006/06]
국사책을 편다.
4, 5, 6세기에 백제, 고구려, 신라의 이름이 차례로 등장한다. 뚜렷하지 않은 경계의 지도에는 이들이 각각 한강 유역을 점령한 시기임을 알려준다. 한강은 역사의 복판을 담아온 거대한 공간이었다. 아니 한강은 까마득한 옛날 하늘이 처음 열리고 닭 울던 시절부터 그냥 거기 존재하였다. 다만 여기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이 여기 기대어 온갖 역사를 버무리고 살아왔을 뿐이다.
역사책에 아직 채 기록되지도 못한 풋풋한 사건들에도 한강은 여전히 품을 내주었다. 안창남의 비행기를 올려보기 위해, 대통령 선거의 희망찬 유세를 듣기 위해 모여든 군중들을 담는 공간이었다. 적 탱크의 남하를 확실히 막아주는 장애물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도 강물은 “당신과 나의 꿈을 실고서 흘러만” 갔다. 등교길에 무너진 다리에서 낙엽처럼 떨어진 생명들을 묻기도 했다. 한강은 항상 우리에게 그 무엇이었다.
한강은 한가한 물줄기가 아니었다. 근대의 토목사업은 댐을 만들고 축대를 쌓고 강변도로를 놓으면서 강을 길들여 나갔다. 수량도 강폭도 예측가능한 수준으로 변화해 나갔다. 섬과 곡강을 파고 메워 택지와 호수를 만들어 나갔다.
한강은 경영의 대상이었다. 극복해야 했다. 이제 바뀌어도 좋을 시대가 되었다. 한강변에서 한강을 등지고 선 아파트의 시대가 지나고 한강조망권이 수억원의 가치로 거래되는 시대가 왔다. 테임즈강이나 세느강을 예를 들면서 강이 너무 크다고 손을 놓아야 하던 시대는 지났다. 넓은 강은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우리에게는 이국에서 찾을 수 없는 우리의 공간에 맞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우리의 미래를 담을 넉넉한 공간이다. 한강은 공존해야 할 공간이다.
지난 몇 해의 화두는 청계천이었다. 사업의 방향이 복원인지 개발인지, 목표가 환경인지 자본인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더 필요하다. 우리가 얻은 것이 자신감이든 배신감이든 청계천 사업이 대중적 관심을 얻은 것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대중적 관심에 의한 추동력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이제 논의는 한강으로 펼칠 때가 되었다. 지나간 시대의 시행착오를 거울로 새로운 제안이 필요한 시기다.
새로운 제안은 역사적 책임의식을 필요로 한다. 우리와 이전 세대가 만들어 던져놓은 과오가 있다면 지금 바로 잡아야 한다. 더 나은 가능성이 있다면 탐구하고 모색해야 한다. 단지 우리가 이 땅에서 생존하기 위해 개발하는 제안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이 공간을 온전한 모습으로 넘겨주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한강을 관광사진에 넣을 피사체의 배경수준으로 생각하는 논의를 마감해야 한다. 단지 선거에 이기기 위해 만들어내는 제안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회와 환경을 고민한 결과물로서의 제안이 필요하다.
국사책을 덮고 한강을 본다. 한강을 거대한 탐욕의 하수구로 삼아온 우리를 반성해야 할 시가인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계획이 아니다. 논의의 방향을 이끌 화두들이다. 멍석을 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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