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동아일보-도시,미래로미래로] 2. 로테르담

[동아일보 2006/01/01]1

백조라는 애칭의 다리가 있다. 공식명칭은 에라스무스 다리. 로테르담의 마스강 남북을 연결하는 다리의 이름은 에라스무스가 이곳 출신이라고 해서 붙여졌다. 그러나 이 다리는 강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청 홈페이지의 첫 화면부터 거리의 그림엽서, 티셔츠에 이르기까지 도시 곳곳에 들어서 있다. 서울의 올림픽대교와 비슷한 형식의 사장교인 이 다리는 1996년 준공된 후 벌써 명실상부한 시의 상징이 되었다.

다리는 기존 도심과 새로 개발된 남부지역을 연결한다. 설계를 맡았던 젊은 건축가는 이 다리의 주탑에서 난간까지 모두 일관된 조형감각으로 꼼꼼하게 마무리를 해냈다. 다리에는 자동차, 전차, 자전거, 보행인의 통로가 모두 구분되어 마련되어 있다. 다리는 넓지만 길은 좁다는 자동차 운전자들의 불평도 있지만 다른 공간을 침범할 수는 없다.

에라스무스 다리의 북쪽 강변에는 1940, 1945라는 숫자가 새겨진 조형물이 서있다. 로테르담이 나치의 지배를 받던 기간이다. 1940년 5월 14일. 바로 이날 60대의 나치 폭격기가 로테르담의 도심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러나 로테르담은 기존 도시를 복구하지 않았다. 20세기 초반의 실험적인 이론을 통한 도시계획으로 전혀 새로운 도시를 만들기 시작했다. 여느 유럽의 역사도시와 달리 넓고 조직적인 도심도로체계는 바로 이 결과물인 것이다.

로테르담은 라인강의 어귀를 틀어쥐고 생긴 도시였다. 유럽이 세계로 나가는 길목이었던 것이다. 이 위치의 장점을 등에 업고 로테르담은 1962년 이후 물동량 기준으로 세계 최대의 항구도시로 군림해왔다. 그러나 2002년에는 싱가포르에, 2004년에는 상하이에 추월당한 3위로 내려앉았다. 항구가 수축한 것이 아니고 워낙 동아시아의 경제규모가 빠르게 커진 것이다.

로테르담은 변하고 있다. 더 큰 배를 접안시키기 위해 더 깊은 바다로 항구를 이전시키고 있다. 그리고 항구도시에서 문화도시, 관광도시가 되겠다고 나섰다. 로테르담은 세계 항구의 수도에서 건축실험의 수도로 바뀌고 있다. 현대건축으로 문화 도시의 승부를 걸기 시작했다. 건축양식의 전통이 아닌 건축실험의 전통이 폭격 뒤에도 뚜렷이 살아남았다.

세계 최초로 근대적 보행자 전용가로를 만든 것이 바로 로테르담이다. 20세기 초반 열악한 노동자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건축가들이 실험적인 주거안을 실현시킨 곳이 로테르담이다. 새로운 도시에 대한 생각이 끊임없이 로테르담의 건축가들에게서 공상처럼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건축에 대한 전통이 폭격 이후 이 도시를 복원이 아닌 실험의 길로 인도했다.

국립 네덜란드건축협회(Nederlands Architectuurinstituut)가 수도인 암스테르담이 아니고 로테르담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은 이 도시에서 현대건축의 비중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화물선에 얹힌 세계가 로테르담의 항구를 통해 드나들었다면 지금 세계의 건축은 이 네덜란드건축협회로 드나들고 있다. 세계 최대의 건축박물관을 자임하는 이 협회는 전시, 출판을 통해 로테르담을 건축의 실리콘밸리에서 건축의 수도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로테르담 건축비엔날레는 이런 배경으로 개최되고 있다.

네덜란드의 젊은 건축가들은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이 전시회, 저술을 통해 끊임없는 도시와 건축의 대안을 만들도록 중앙정부가 장려하고 있는 것이다. 로테르담이 그 꿈을 펴 보이는 장소가 되고 있다. 물론 모든 실험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모험이 박수갈채 속에 마무리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실험 없이 결과물을 만들 수는 없다. 유서 깊은 “방랑하는 화란인”의 전통이 로테르담에서 건축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로테르담의 실험적인 젊은 건축가들은 지금 세계의 현대건축을 장악해나가고 있다. 백조를 설계한 건축가의 작품은 서울에도 들어서 있다.

로테르담에 우리가 알고 있는 덩치 큰 백인은 60만 명 남짓한 시인구의 1/3에 지나지 않는다. 모로코, 터키,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160개국에 달하는 다양한 여권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국적, 인종, 종교, 가치관이 종횡무진으로 교차하는 이들이 모두 로테르담의 시민들이다.

로테르담에서 도시정책의 근간은 이런 도시구성원들이 얼마나 잘 섞여 살 수 있느냐는 것이다. 도심에 젊은 저소득층들만 모여 산다는 자각은 도심 가까운 강변에 고급 아파트를 장려하는 정책을 만들었다. 강남의 시민들이 도시의 가치로부터 멀어져 있다는 자각은 유럽연합의 재원으로 강남개발을 시작하게 했다. 에라스무스다리도 그런 가치관의 결과물이다.

로테르담이 지금 얼마나 좋은 도시인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네덜란드와 로테르담이 우리에게 좋은 표본으로만 이루어진 것만은 분명 아니다. 우리 정부가 담배판매를 독점한다면 네덜란드 정부는 도박카지노를 독점하고 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을 선행해야 하느냐, 경찰을 늘려야 하느냐로 분분한 정당 갈등은 결국 세계 어디에서나 다른 모습은 아니다. 네덜란드어로만 표기된 도시 안내판들은 목적한 관광도시가 되기 위해 로테르담에도 아직 변해야 할 것들이 많음을 이야기한다.

도시에 가득한 역사 유산을 관광자원으로 삼아 시민들이 먹고 살 수 있는 도시도 있다.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신기할 수 있으나 도시 구성원에게는 숨 막히는 환경일 수도 있다. 물려받은 것이 없는 도시는 끊임없이 변모해야 생존해나갈 수 있다.

로테르담도 생존을 위해 좀 더 깊은 물속으로 항구를 움직여 나가고 있다. 어느 곳에서나 문제는 있고 해결해야 한다. 기존의 항만, 조선 시설들이 뒤에 남게 되는 것이다. 이 공간들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는 또 새로운 도전이다. 거대한 조선소를 실습과 이론을 겸비한 철강학교로 만드는 아이디어는 그 도전에 대한 신선한 응답의 예다. 열심히 물갈퀴를 휘저어야 우아한 백조의 모습이 완성되어 나간다.

도시의 생존을 위한 노력이 결국 수 백 년 간 쌓여 다시 고색창연한 도시의 모습이 된다. 지금의 로테르담은 20세가 초반의 그 도시가 아니다. 도시의 많은 부분은 여전히 빈 종이로 남아있다. 중요한 것은 여기 어떤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느냐는 것이다. 로테르담은 우리 시대의 건축을 증명하는 장소가 될 것을 선택했다.

도시의 성취는 50년의 세월로 판단하기 어렵다. 평가는 수백 년 넘는 시간을 요구할 것이다. 그 시간은 로테르담에도, 그리고 우리 도시에도 공평하게 적용될 것이다.

  1. 동아일보 2005-12-31 홈페이지 []

Posted in writing, 동아일보-도시 미래로미래로. Tagged with , .

0 Responses

Stay in touch with the conversation, subscribe to the RSS feed for comments on this post.

Some HTML is OK

(never shared)

or, reply to this post via track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