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동안 건축석사학위를 받기 위한 작업의 최종결과물이다.
아쉬움도 많이 남고, 무엇보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게 되서 보람이 있었던 결과물이다.
늘 내가 삼천포로 빠질 때면 수렁에서 구해준 보스와 뒤에서 열심히 밀어준 SALT 선수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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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공중목욕탕에서 알몸이 주는 시각성은 개인들로 하여금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은유를 환기시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차이를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동등성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논리적 비약이 필요한데, 이것은 자신이 처한 불평등을 외면하는 한이 있더라도 집단의 일원으로 남아야 살 수 있다는 생존전략 때문이다. 이제 세월은 변해 차이를 즐기는 세상이 됐지만, 과거의 신경증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해 차이는 고립되고 연대라는 말에 설레발 치는 현실에서, 알몸으로 아무 말 없이 자기 할 일만 하고 목욕탕 문을 나서는 사람의 뒷모습이 중첩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이 우리가 목욕탕에서 원했던 정서적 연대를 향한 갈망 자체를 무효화시킬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갈망했던 것이 비록 허구였을지라도, 갈망하는 힘이야말로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자율적 연대를 실험할 수 있게 하는 추진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실험의 성공과 실패담을 통해서만 ‘알몸으로 만난다는 것’이 불러일으키는 은유의 힘을 현실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욕탕은 희랍 신화에서 주제로 삼은 바 있는 인간의 뒷면, 즉, 등을 비비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그 ‘운명적’사회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이다. 이 등밀기로 말미암아 이웃 간에 이야기와 ‘새로운 예절’이 태어난다. 새로운 예절이라 함은 등밀기를 청하는 자와 그 청을 허여하는 사람 사이가 항상 새롭기 때문이며, 또 그들 사이에 형성되는 의례(ritual)도 언제나 새롭고 다르기 때문이다. 목욕탕에서 만나는 옆자리는 애써 짝지어 목욕탕에 가지 않은 이상 낯선 사람이다. 동시에 그 낯선 만남은 의상․훈장․액세서리처럼 사회적 지위나 처지를 드러내 주는 이른바 미란다(miranda)적 장치의 도움 없이 홀딱 벗은 육체의 만남이기에 더욱 새롭다. 몸뚱이 그 자체로 새로운, 사회적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과의 만남은 따라서 매양 긴장된 만남이다.
이 긴장된 만남 속에서의 등밀기 행사를 ‘쭈뼛거림’같은 몸짓과 ‘겸손함’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행한다. 이를테면 나이와 관계 없이 등밀기가 급한 이가 먼저 이태리 타월을 깨끗하고 쥐기 쉽게 접어서는 빙긋 웃으면서 쑥스러운 자세로 옆사람에게 등밀기를 청하면서 그 의례는 시작된다. 그러면 상대방은 먼저 청한 용기에 감사하면서 청한 이의 쑥스러움을 상쇄시키는 인사, 또는 몸짓을 표현하기 마련이다. 때를 미는 동안에는 등밀기를 청한 이가 미안한 마음으로 “때가 많지요?”라고 그 노고를 치하하면 때미는 이는 “때가 많지 않군요. 피부도 희고요”라면서 그 치하에 답례하게 된다. 그 즈음에 상대방의 몸피를 보아 육체 노동자인지 정신 노동자인지를 짐작하고, 또한 피부의 탄력을 보아 나이를 가늠함으로써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간다. 이처럼 등밀기 행사는 맨살로 새로운 사람과 ‘더불어 행한다’는 점에서 언제나 새롭고 긴장되며 창조적인 의례인 것이다.
그러나, 자기 등을 자기가 밂으로써 서로에게 열린 통로의 입구를 닫아 버리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목욕탕에서조차 ‘우리’는 각각의 ‘나’로 고립되어 버렸다. 이제 서로는 서로에게 등을 밀어 주는 보완자가 아니라 기껏 땟물〔汚水〕을 튀기는 귀찮은 존재로, 아니 없었으면 더 좋았을 존재로-탕을 독점할 수 있으므로-되어버렸다. 요컨대 서로는 서로에게 사물화(事物化)해 버렸거나, 사물화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소외되고 서로를 연결할 통로를 닫아 버림으로써 소통 기술을 퇴화시켜 버리고 있다.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 중에 사적 생활영역이 보호되기 때문인 경우가 많은 것은 아파트가 단독주택과는 달리 이웃과의 관계를 극소화 할 수 있는 공간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를 이루는 동네의 공중목욕탕은 지역주민들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다. 그 안에서의 사람들은 가식이 없는 편안함이 서로를 더욱 친밀하게 해주며 익명적 대인관계 및 이웃관계는 공중목욕탕에서 치유될 수 있다. 공중목욕탕은 지역주민에게 각자의 ‘개인’이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 목욕탕이라는 공간은 지극히 사적인 공간인 대중목욕탕 시설이 생기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한 탕속의 물을 사용하면서 사적이지만 공적인 공간이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곳이다. 이 작은 사회속에서 한국 현대인들의 문제점 중 특히 대중화, 익명화의 문제점이 크게 드러나고 있다. 개인과 사회와 자연이 모두가 상호 조화를 이루는 연습의 공간, 개인적인 여유와 자기정화의 공간으로 공중목욕탕이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posted by 백수철

One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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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서 등교하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