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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결혼식 얼개는 황당할 정도로 간단하다. 신랑신부가 입장하여 주례앞에 서면 주례는 “…하겠는가?”하고 묻는다. 그리고 “예”라는 대답이 나오면 (혹은 나오든 말든 관계없이 “예”라는 대답이 나온 것으로 간주하고) “이 결혼이 원만히 성립되었다”고 성혼선언문을 낭독한다. 그러면 끝이다. 서양에서 들어온 이 방식에서 “예”에 해당하는 영어 문장은 “I do.”다. 역사에서 사랑과 결혼이 결부된 역사는 오랜 것이 아니고 “I do.”라는 대답은 종교개혁 이후의 현상이라는 것이 이 책의 제목과 내용에서 지적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한국에서도 전통적으로 사랑과 결혼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부모가 점지해주는 연줄을 만나 그럭저럭 살면되는 것이었다. 여기는 경제적, 정치적 고려가 우선되었고 결혼 후 정절의 의무 조항도 비대칭적인 것이었다. 홍길동은 서자의 자식이었고, 변학도는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고 공개적으로 요구를 했다. 임금님은 손에 닿는대로 궁녀들을 건드렸고 자손을 더 낳을 수만 있다면 이건 권장되는 사안이었다. 적령기라고 하는 연령대의 수준도 지금과 달랐다. 서양의 르네상스에서는 중년의 남자가 나이가 반 밖에 되지 않는 여자와 결혼을 했다.

미국의 저자는 당연히 성서의 창세기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무리가 되는 시점도 루터의 종교개혁과 그 영향이다. 책의 중요한 부분은 뒤의 몇 페이지다.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현대의 결혼 이야기가 반짝 등장하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에서 결혼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실천하는 방식에 지나지 않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을 바탕으로 사제들은 금욕적인 생활을 요구받는다. 카톨릭의 신부와 수녀들에게 결혼이 금지된 것이다. 결국 파계한 사제 루터가 사제 결혼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고 스스로 실천을 했으니 이것이 바로 오늘날 개신교 사제들이 결혼을 하게 되고 결혼식장에서 “예”라는 대답을 요구하는 근간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일부일처제라는 제도의 사회적인 분석을 기대했던 독자에게 종교적인 근거로만 이야기를 진행한 책이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저자의 입심에 책은 충분히 흥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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