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address will show here +12 34 56 78

부제가 <한국 훈민공론장의 역사적 형성>이다. 풍기는 냄새대로 저자는 하버마스에 기댄 이야기로 시작한다. 유럽의 공론장이 화수를 건너왔을 때 동일한 공론장으로 부르기 어렵게 변하는데 그래서 동일한 단어인 ‘공론장’으로 지칭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선택한 조어는 ‘훈민공론장’이다.

 

우리가 일반적인 유럽 모델로 상정하는 국가-시민사회의 구도가 한국에서는 국가-국민사회로 치환되어 있다는 것이 저자가 시작하는 지점이다. 조선시대, 구한말, 일제시대. 그리고 근대화와 민주화시대를 거치면서 우리의 공론은 지속적으로 일방향성을 견지했다. 즉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의 공론장은 보통사람들이 토론하는 장이 아니고 파워엘리트들이 주도한 담론의 일방적 전달장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배경에 국가가 강요한 훈육적 동원과 후견적 규율이 존재한다고 진단한다. 관변단체를 제외하면 자율적 시민사회의 영역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언론을 이끄는 파워엘리트들의 주위에 사회적 공론장에서 배제되는 빈곤층이 폭넓게 포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그 권력구조의 실증으로 드는 것은 한국사회에 빈번한 사건, 기자의 정치권력진출이다. 

 

이전의 논문을 재배치한 책은 일사분란한 진단과 논리로 서술되어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시대적 흐름을 따라가면서 공론장의 변화와 담론의 생성주체, 담론 자체의 변화 등을 흔들리지 않고 짚어주고 있다. 그리하여 저자가 이르는 지점은 왜 한국의 공론장은 그리 투쟁적인가 하는 곳이다. 저자는 훈민공론장에서 방향설정의 기준이 국가와 민족의 번영이어 왔고 그 방향설정의 주체가 제한적으로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2016년 후반 한국은 새로운 공론장의 등장을 목격하고 있다. 그것은 저자가 아직 책에서는 짚지 못한 새로운 현상으로서 테두리에 모여있던 엄청난 ‘시민’들이 카페나 신문에 의지하지 않고 광장에 나온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훈민공론장이 아니라 유럽의 공론장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사회적 모델이다. 저자의 분석이 궁금해진다. 


REVIEWS

REVIEWS

REVIEWS

REVI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