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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반장’이라는 단어가 있다. 손바닥 뒤집듯이 쉽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면 손바닥을 뒤집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뼈의 메커니즘을 거치게 되는지 짐작하게 된다. 바로 지금 손을 한번 뒤집어보면서 팔꿈치의 뼈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지를 추론해보면 된다. 책에는 영국 여왕이 손흔드는 방식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그래서 우연히 저녁식사를 함께 하게 된 영국인 음향학자에게 나는 영국여왕이 도대체 어떻게 손을 흔드냐고 물어보고야 말았다. 뼈의 움직임을 짐작해가면서.

 

이것은 책에 관한 책이다. 출간된 지 150년이 되면서 단 한번도 절판된 적이 없이 500만부가 팔린 책. 그 책이 바로 <Grey’s Anatomy>다. 워낙 많이 팔리다보니 해부학은 놔두고 의학에 관심이 있을 턱이 없는 건축쟁이도 이름을 들어본 기억이 있는 그런 책. 저자는 도대체 이 헨리 그레이라는 사람이 누구였을까라는 간단한 호기심에서 일을 벌이기 시작한다. 아쉽게도 헨리 그레이에 대한 단서는 거의 없다. 대신 그림을 그린 헨리 카터의 일기를 찾아낸다. 그리고 거기서 헨리 그레이와 헨리 카터의 일생을 짜 맞추기 시작한다.

 

당황스런 것은 저자가 단지 두 사람의 일생을 추적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해부학실험강의를 청강하는 것. 그것도 무려 세 강좌를. 책은 해부학교실 풍경과 헨리 카터의 일생이 교차하면서 서술된다. 책에서 몸은 마구 파헤쳐진다. 음산하고 기괴하기만 해야할 해부할 책이 이렇게 흥미진진한 것은 저자의 탁월하고 낙천적인 글 솜씨 덕이다. 여기 겹쳐진 천연덕스런 번역은 아마 저자도 그 수준을 알면 어이없어할 만한 수준이다.

 

시시콜콜한 개인의 자료가 이처럼 남아있는 사회는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금 하게 하는 책이다. 헨리 그레이의 자료가 없는 것은 그가 천연두로 죽었기 때문이었고 천연두의 전파를 막는 확실한 방법은 죽은 이의 몸 뿐만 아니라 그의 손이 닿은 모든 것을 소각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란다. 책의 마무리는 결국 죽음을 묻게 한다. 본인이 게이임을 숨기지 않는 저자는 원고를 마무리할 즈음에 파트너의  죽음을 맞는다. 결국 저자는 이야기한다. 죽은 시체로부터는 죽음에 관해 배울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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