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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책이다. 제목으로 보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한글’이 세종대왕시기에 어떤 과정을 거쳐서 창제되었는가를 서술한 역사서 정도일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은 그런 수준을 훨씬 넘는다. 우선 처음 명칭은 ‘정음’이었다. 책은 역사가의 입장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정음’이 창제되었는가를 후술하는 모습을 갖추지 않는다. 맨 처음의 순간, 비슷한 류의 쓰기가 전혀 존재하지 않고 오직 말하기만 존재하던 순간이 저자가 주목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역사가가 아니라 미술작가다. 한글에 관심이 많은 미술작가.

 

저자의 글은 집요하고 방대하며 독창적이다. 말하기는 쓰기와 다른 차원으로 존재한다. 한자라는 기존의 쓰기체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전복적인 사고로 새로운 쓰기체계, 즉 정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어떤 상상력이 필요했을 것인지를 저자는 들춰낸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우선 동아시아 언어 전체를 아우리는 통찰력이다. 문자를 만들었다고 일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단발적 단어의 표현을 넘어 문장(sentence)가 되고 또 문장(text)가 되는 과정은 자연발생적이지 않다. 모두 고안과 발견의 과정이다. 책은 바로 이런 과정을 추적한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최만리의 반대상소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있다. 저자는 이것이 단순히 정치적인 반대입장의 표명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한다. 이것은 서로에게 존재하는 복잡한 세계관의 표명이다. 물론 세종의 지닌 통찰력이 이 반대를 극복할만큼 포괄적이고 깊은 것이었다는 점도 그냥 문장으로 넘어갈 수 없는 점이다.

 

책의 곳곳에는 저자의 관찰력이 들어있다. 예를 들면 저자는 방언이 군대를 갖추면 언어가 된다고 서술한다. 스페인과 포르투칼어의 차이는 한국으로 치면 경상도와 전라도의 언어 차이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이들이 독립적인 언어로 인정받는 것은 서로 다른 상비군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란 것. 국어, 모국어, 공용어, 표준어의 구분도 뚜렷하지 않은 문장이 신문지상에 등장하는 판이니 이런 저자의 정교한 서술은 스스로를 각성하게 하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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