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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논란이 없었으면 굳이 이 책을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쟁점은 그 교과서에 균형잡힌 내용이 들어있느냐는 것이 아니다. 균형이 잡혔다는 판단도 자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 관점으로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낱낱히 보여준다. 한국 역사학의 태생과 제도 정착 과정이 바로 그 뜨거운 증거라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의 삼분과체제가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하는 시스템이라는 점을 적시한다. 반면 철학은 한국철학이 없이 바로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으로 나눈다. 이런 구분의 배경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일본에 의해 이식된 교육제도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식민지를 지배하기 위한 바탕을 이론적으로 제공하려면 결국 이런 구분이 필요했다는 것.

 

시작점은 경학이었다. 이것이 메이지시대에 문사철로 분리된다. 문학, 역사, 철학이 모두 이 시대의 번역어들이니 이 사실은 새삼스럽지 않다. 문제는 조선사편수회를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일본인의 한국사 서술이 경성제국대학을 거쳐 체계를 갖추고 이것이 광복 후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광복 이후에 미군정이 이식한 외형상 미국식 대학체제 안에서 이 과점은 계속 유지되었다는 것. 말하자면 문헌고증학적 입장이.

 

저자는 1950년대까지만 서술한다. 저자가 다루는 시기에는 단군을 어떻게 파악하느냐, 신라의 통일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정도가 가장 큰 쟁점이었던 듯 하다. 여기서 나머지 입장들이 모두 파생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지금 한국사의 쟁점은 현대사다. 대안은 현대사를 다루지 않는 것일 수도 있는데 저자는 그것이 바로 식민시대 문헌고증학적 입장의 연장에 있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현대를 서술하지 않으면 그것은 가치관이 배제된 역사라는 것이다.

 

역사학이 대학이라는 제도를 통해 자리를 잡았으므로 저자가 다루는 내용은 대학 자체의 변화과정을 모두 포함한다. 경성제국대학이 어떻게 형성되어 서울대학교로 바뀌어갔는지까지 모두 기술되어 있다. 내 관심사인 문이과 분리가 일제시대의 발명이라는 점이 더욱 뚜렷하게 부각되어 있고. 주제로만 보면 읽기 심란할 수 있는데 저자는 서술은 허를 찌르고 흥미진진하다.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고 체화한 저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단호한 정리, 그리고 ‘균형잡힌 서술’ 덕에 보기 드물게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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