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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포드에서 대학생들을 위해 펴내는 교양서 시리즈가 있다. 시리즈 중 제목이 ‘Christianity’였던 것으로 기억하는 책의 내용에서 충격적인 것은 첫번째 사진으로 한국의 교회가 나오는 것이었다. 세계 최대의 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내부 사진이었다. 얄팍한 이 책에서 한국의 교회는 수시로 등장하는 사례였다. 한국의 기독교는 전 세계가 주목할만한 사건의 반열에 올랐음을 방증하는 자료였을 것이다. 그 과정이 궁금했다.

 

궁금한 것은 한국의 기독교가 아니고 교회였다. 종교가 아니고 기관으로서의 그 무엇. 그 역사를 서술한 이 책의 시작은 경교에 대한 간략한 서술이다. 우리가 접하는 서방의 기독교와 달리 동방으로 전파되어 당나라에 이르고 결국 신라에도 이르렀을 그 종교. 자취를 거의 찾을 수 없는 그 종교와 방향을 달리해 서쪽으로 전파된 종교는 기독교라는 이름을 걸고 19세기 후반에 한반도에 등장한다. 자생적이었던 천주교와 달리 이 새로운 종교는 선교사를 필요로 했다.

 

새로운 종교가 정치적 갈등의 요소가 없는 방식, 즉 의료와 교육을 통해 교두보를 확보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장로교의 언더우드, 감리교의 아펜젤러 목사는 같은 배로 제물포에 도착하여 이 땅의 역사를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는 여성들을 포섭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려면 여성교육기관이 설립되어야 했으니 그 결과가 이화학당이었다. 주목할 점은 전국 선교를 목표로 한 장로교가 선교지분담정책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황해도는 북장로교, 충남호남은 남장로교, 함경도는 캐나다장로교, 경상도는 호주장로교의 선교지로. 

 

정치와 무관하려고 해도 일제시대의 신사참배 요구는 종교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문제였다. 결국 이 요구에 응한 집단과 불응한 집단은 광복과 전쟁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만났고 과거에 대한 단죄와 반성의 방식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늘어난 개신교분파를 형성하였다. 그리하여 지금 개신교 교단은 숫자로 세 자리에 이르고 결국 개(individual)교회주의에 이른 기독교는 지역과 분리된 교회의 존재를 매주 일요일마다 확인하고 있다.

 

기대하지 않았던 내용은 건물로서의 교회형식이 설명되어 있는 것이다. 목사를 제사장으로 간주하는 독특한 신앙은 설교의 공간을 신성시하여 그것이 강단이 아니고 제단의 형식을 갖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금 서초동에 짓고있는 초대형교회의 지하주차장 분쟁을 보면서 주차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천주교와 대비되는 개교회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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