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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도시를 바꾸었다면 텔레비전은 거실을 바꿨다고 해야 하겠다. 그런데 이 물건에는 뚜렷한 발명자가 없다. 자동차에 단 한 명의 발명가는 아니어도 기념비적 업적의 인물들이 부각되는데 비해 이 물건의 역사에는 그런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발명이 아니라 진화의 과정을 거쳤다고 해야 하겠는데 그 기간이 굉장히 짧다.

 

책은 그 역사에서 시작한다. 진공관, 음극관의 발명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텔레비전이라는 괴물이 되었느냐는 것인데 진정 중요한 이야기는 아마 그 개념일 것이다. 동영상을 전파로 바꿔 재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 개념. 19세기 말, 분명 허황되게 느껴졌을 그 개념이 현실이 되었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이 텔레비전 진화의 혁신이었다고 짚는다. 텔레비전이 전투기나 핵폭탄처럼 부각되는 역할을 하지는 못했지만 분명 감시, 첩보라는 점에서 중요한 기계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술이 전후 텔레비전 보급의 견인차였고.

 

책은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이나 사회적 의미는 전혀 다루지 않는다. 물체로서 본 텔레비전이 설명의 대상이다. 화면에 이미지가 맺히지 않을 때 물건으로서 텔레비전은 어떤 과정을 거쳐 나갔느냐는 것이 저자의 관심이다. 개인적인 관심사로 살짝 덧붙여 분석하면 과연 미국과 유럽의 텔레비전은 좀 다른 디자인 과정을 거쳤다. 이것이 지금과 같은 플라스틱덩어리가 되기 이전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뒷부분은 텔레비전이 허를 찌르고 예술작업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백남준으로 대표되는 무리들이다. 기계로서의 텔레비전을 조작하여 기이한 영상을 만들어낸 일군의 무리들. 책의 마무리는 간결하다. 텔레비전은 초기에 과시적 물건이었던 바 지금 다시 과시적 자리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의 방법이 형태였다면 지금은 크기라고. 겁나 큰 화면이 바로 그 과시의 모습이라고 저자는 읽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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