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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00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한다. 일본의 제국대학을 졸업한 조선인의 수다. 추산인 것은 저자가 일곱 개의 제국대학 졸업생을 모두 조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다고도, 적다고도 할 수 없는 숫자다. 기준을 갖기 어려운 숫자기 때문이다.

 

일본 내에서도 ‘제대’ 출신이라면 사회적 처우가 전혀 달라지는 사회였는데, 식민지에서 유학한 ‘제대’ 출신이면 그 입장이 애매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히 이들이 식민지에 돌아와서는 최고의 엘리트 대접을 받았을 것인데, 문제는 광복 이후에도 이들은 여전히 엘리트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식민지 시대의 엘리트들을 판단하는 문제는 참으로 혼란스런 가치관을 요구한다.

 

최고의 헤게모니는 당연히 도쿄제국대학이겠고, 유학생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학교는 교토제국대학과 규슈제국대학이었다고 한다. 이공계 유학생은 극소수고 법학부 졸업생이 절반을 넘는다는 점이 특징. 저자는 과거급제를 통해 관직에 오르는 것을최고 가치로 간주하던 조선시대의 사회인식 결과였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이 졸업생들을 갈라놓은 것이 남북분단이다. 북으로 간 사람들은 당연히 김일성종합대학 설립의 중요한 구성원들이 되었다는 이야기. 저자가 예를 들어 추적한 개인적 노정들은 드라마틱하다고 해야할 만큼 편차가 크다. 감옥에서 죽은 이도 있고 건국의 화려한 주역이 된 이도 있다. 이들의 인생을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주목할 점은 도쿄제국대학은 끝내 일본인 여학생도 한 명 없었다는 것. 도호쿠제국대학에서 최초의 일본인 여학생을 받았고, 이후 신의경이 최초의 제국대학 입학 조선인 여학생이었다고 한다. 경성제국대학을 포함해도 조선인 여학생은 열명 안팎이었고 두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 이화여전출신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모두 광복 후 남한에 남았고. 여학생비율이 절반을 넘는 지금으로 보면 참으로 까마득한 이야기겠다. 그러나 그들의 흔적이 사회 곳곳에 남아있으니 그리 까마득한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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