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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서울 정동에 구한말부터 자리잡기 시작한 공사관들에 관한 이야기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공사관들이 언제, 어디에 자리를 잡고 있었느냐는 이야기. 간단히 몇 페이지에 정리되어야 할 객관적인 사실들이 결국 이렇게 책으로 묶인 것은 아직도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공사관들이 아니면 언제와 어디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태조의 계비였던 신덕왕후 강씨의 묘가 있던 곳이어서 지금 정동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 동네가 중요해진 것은 미국공사관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이후에 다른 나라의 공사관들도 멀지 않는 곳에 하나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는데 이유는 인천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길목이라는 지리적 장점과 토지매입의 유연성 때문이었다고 한다. 2층 높이의 건물도 없던 한양에 ‘고층’ 양관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남의 일이 아니게 된 것은 아관파천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 이후의 역사때문이다. 바로 ‘아관’이 정동에 있었고 일 년 뒤 고종이 이어한 곳도 바로 정동의 경운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896년부터 1905년의 십 년간 조선의 외교와 정치는 이 정동이라는 공간에서 복작이며 벌어지고 결국 그 흔적이 오늘 우리에게 편편히 남아있다.

 

책을 읽으면서 신기한 것은 참으로 놀랍게도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있어도 서로 다른 시기와 장소를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책이 결국 나오게 된 것이다. 특히 책에서 많은 공간을 할애한 것은 도대체 언제 공사관, 혹은 영사관이 개설되었느냐는 것. 우리쪽 자료가 없으면 저쪽, 본국의 자료를 찾아보면 답이 쉽게 나오지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영국 대사사관 옆의 성공회 건물을 완성하게 된 것은 영국에서 발견된 도면 덕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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