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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조선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두 개의 새로운 세력과 만나게 되고 결국 소멸한다. 하나는 외세이고 다른 하나는 인민이다. 그 인민은 자연인의 집합으로는 이전부터 백성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으나 그 실체가 구성되고 드러난 것은 이 시기가 처음이다. 인민(people)은 시민(citizen) 이전 단계의 구성체로서 개인적 이익을 집단공론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주체의 집단이다.

 

‘공론장의 구조변동’이라는 부제로 보면 하버마스의 “The Transformation of Public Sphere”를 연상시킨다. 저자 역시 이 가능성을 충분히 인정하고 책 곳곳에 하버마스가 인용이 되어 있기도 하다. 분명 저자가 하버마스의 틀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상황이 유럽 부르조아들의 등장상황과 현격하게 다르므로 책의 전개는 전혀 다르다. 하버마스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공간으로서의 장을 조선시대에는 규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커피점이나 살롱 대신에 정확한 실체가 없는 시장 정도가 거론되는 수준이다.

 

저자가 인민의 등장 요소로 가장 중요하게 부각시키는 것은 문자다. 구어를 바로 전달할 수 있는 문자니 그것은 훈민정음일 수밖에 없다. 문자화된 구어는 정보와 의견을 유통시키고 발화자들의 다발을 묶어내면서 담론을 형성한다. 그 문자의 유통이라는 점에서 유럽의 사례와 동일하게 중요한 것은 신문이다. 그 전에 문자의 유통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사건은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천주교였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이미 일간지 칼럼을 통해 수년간 과시해온 저자의 유장하고 빛나는 문체는 이 책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거기에 예리한 사회학자의 분석력이 더해져 있으니 책을 소설읽듯 술술 넘어갈 수는 없다. 책 읽기는 상당히 어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조선 후기 사회변동에 대한 이런 거시적 진단은 참으로 신선하다. 지식이 권력이며 종교임으로 인해 유지되던 시대의 진단과 그 균열을 통한 사회 쇠락의 설명은 이전에 접해본 바가 없다. 후속 연구가 이어진다니 독자로서 벌써 버겁기도하고 기대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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