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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쇼킹한 두 개의 사진을 대비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둘은 모두 인간의 오른손에 쏙 들어오는 것이다. 하나는 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 다른 하나는 컴퓨터 마우스. 인간의 손은 그 크기와 모양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지만 이들이 만지고 다루어야 할 대상은 이처럼 변했다. 저자는 그 배경에 깔린 힘을 집단지성으로 꼽는다.

 

책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낙관주의자의 반대말은 비관주의자임에 틀림없다. 저자는 비관주의는 항상 흥행실적이 좋았다고 전제한다. 이대로 두면 화석연료가 내일모레 고갈되고 지구는 더워져서 북극의 얼음은 녹을 것이며 따라서 생태계는 교란되고 우리의 앞길을 캄캄하다는 내용들이다. 저자가 거론하는 비관주의자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이 거명된다. 놈 촘스키, 엘 고어, 제레드 다이아몬드, 마이클 무어 등.

 

저자가 미래를 낙관하는 근거는 ‘교환’ 때문이다. 인류의 미래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위협은 멜서스의 인구론이었다. 그러나 멜서스의 위협이 오늘날 현실화되지 못한 이유는 인간이 선택한 분업과 교환 덕분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모든 인류가 각자 먹을 것만 생산한다면 멜서스의 예측이 옳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분업과 교환을 통해 생산력을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로 성장시켰다. 그 성장의 규모는 시장의 크기가 클수록 더 커진다. 거기 동력을 공급하는 것이 집단지성이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지독한 시장주의자다. 그가 논거로 삼는 것은 이 책의 제목에 쓰인 그대로 이성적인 수치들이다. 우리가 ‘푸드마일리지’라는 이름으로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식품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할 때 과연 그 식품이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줄이고 있느냐고 저자는 냉소적인 수치를 제시한다. 유전자조작 농산물, 원자력발전과 같은 대안에 대한 저자의 신뢰에 조건없이 고개를 끄덕거릴 필요는 없으나, 적어도 무책임한 환경절대론에 대해 좀더 균형잡힌 시각을 확보하게 해주는 책임에 틀림없다. 환경보호의 가치에 분명 동의할 수밖에 없으나 플러그를 뽑은 상태로는 이 글도 쓸 수가 없다는 사실도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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