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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면의 두 사람이 만나서 제일 먼저 탐색해서 얻으려는 정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상대방의 성별이다. 남녀의 구분은 이성적인 잣대로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오묘한 문제들을 무궁무진하게 던져놓는다. 일단 경쟁력의 잣대부터 다르다. 남자는 경제력, 여자는 외모. 이 책은 여자의 그 경쟁력에 관한 책이다. 외모라고 하는 그 경쟁력을 갖고 도대체 암컷으로서의 인간이 구사하는 전술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 주제다.

 

제목과 달리 역사책이라고 볼 수는 없다. 생물학과 사회학, 인문학의 여기저기 발을 뻗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 문제는 한두가지 갈래로 재단할만큼 호락호락한 주제가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여자는 가장 좋은 유전자를 받아 자신의 유전자와 결합시킬 책임이 유전자에 새겨져있다. 이 책임을 완수하기 위한 방법이 유혹이고 도구는 자신의 몸이다. 유혹의 대상은 남자고 경쟁상대는 여자다. 그래서 여자들은 자신들의 몸을 치장하는데 남자보다 다른 여자들을 더 염두에 둘 수 밖에 없다.

 

거리를 나다니면 의식이 혼미할 정도의 노출의 여자들이 곳곳에 즐비하다. 딜레마는 그 노출의 신체를 열심히, 노골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허용되는 것은 훔쳐보기 수준이다. 안보는 척 보기. 이 괴상한 사회적 구도는 소위 이중구속(double binding)의 한 예다. 그 힐끗보기를 위해 여자들은 엉덩이, 가슴, 허벅지, 다리, 피부에 남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시간과 정렬을 쏟다붓는다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책의 후반에는 전족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에서 설명한대로 작은 발이 성적인 도발을 위한 도구였다는 것은 명시적 기능(manifest function)이다. 그러나 남성의 입장에서 노동을 할 수 없는 그런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의 경제력을 과시하는 잠재적 기능(latent function)을 한다는 것이 사회학적 해석이다. 미인의 기준이 풍만한 여자에서 날씬한 여자로 바뀐 것도 같은 구도로 해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식량의 잉여가 오히려 문제가 되는 사회에서는 마른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고, 날씬한 여자는 바로 그런 잉여를 갖고 있다는 증명을 자신의 신체로 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여전히 생물학적 요구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다보니 못 먹은 것 같은 ‘마른 여자’가 아니라 잘 먹고 난 후 살을 뺀 것 같은 ‘날씬한 여자’가 미인으로 등장한 것은 아닐까. 지방이 충분히 있어야 할 곳에는 있되 허리는 잘록하고 배에는 왕자(王字)가 새겨진 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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