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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이다. 그것도 유럽 기행문. 프라하 카를다리 위에서 철수야, 영이야가 서울거리를 방불케 들리는 시점이니 유럽 기행문이 새삼스러울 수가 없다. 게다가 온갖 인물들이 다녀와서 써낸 글들은 이미 유럽을 넘어 아프리카라도 집어들 마음을 접게 만든다. 제목에 유럽과 음악이 함께 들어 있어도 그 사실이 졸린 눈을 새로 뜨게 할 리가 없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내공이 다르다. 그 내공은 당연히 저자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배낭여행으로 이곳저곳을 거친 후 그림엽서 사모아 쓴 원고가 아니고 유럽에서 수십년 장년기를 보낸 저자의 원고다. 책의 뒷표지에 쓰인 바, “유럽의 웬만한 언어는 모두 구사하”는 저자는 역사, 음악, 미술, 건축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한 채 음악사의 사건들이 묻혀있는 공간들을 주유한다. 그 결과가 이 책. 저자는 사진들도 찍었다.

 

베토벤이 유서를 썼던 빈 교외의 하일리겐슈타트는 나는 오로지 숲으로 이루어진 오지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저자가 찍어 보여주는 사진은 녹지가 많은 읍내 정도. 리스트의 <순례의 해>는 그의 초절기교 시대를 지나 말 그대로 순례의 묵상을 느끼게 해주는 곡이다. 저자는 그 중에서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의 <빌라 데스테의 분수>를 사진으로 보여주며 리스트의 머리 속에 들어있던 풍경을 드러낸다. 환상과 무지가 동시에 깨지는 순간이다.

 

글은 그냥 걸음을 걷듯 흘러가지 않는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조율된 글은 기행문으로는 드물게 잘 쌓은 구조체를 이루고 있다. 저자가 건축학 박사임이 글을 통해 드러난다. 알지 못하는 외국어에 묻혀 있던 아리아들이 저자의 화인더 속 풍경과 함께 한국어로 번역되어 속살을 보여준다. 책의 마지막 사진에는 캐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악보와 유리에 비친 동네 풍경이 겹쳐져있다. 허리에 파우치를 찬 저자의 모습도 잘 보면 보인다. 건축책이 아닌데 대단히 건축적인 기행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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