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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읽은 소설이다. 이런 소설을 쓰려면 엄청난 뱃심이 필요할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읽힌 책에 도전장을 내미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런 무모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완벽한 지식무장이 선행되어야 한다. 2000년 전의 지리, 역사, 문화를 완벽하게 장착하고 나서야 첫 문장을 들이밀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짓을 한 이 저자는 노벨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

 

따옴표가 없는 저자의 문체는 여전하다. 나도 따옴표가 없는 문장을 좋아한다. 어딘지 깊은 심연으로 이야기를 끌고들어가는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문사에 따옴표 없는 원고를 보내면 보도된 글에는 여지없이 따옴표가 붙어나오곤 한다. ‘환상적 리얼리즘’으로 표현되는 저자의 소설은 그가 선택하는 줄거리뿐만 아니라 이 독특한 글쓰기 방식도 역할을 할 것이다. 지극히 건조하고 짧은 문장 사이에 길게 늘어지는 문장이 튀어나오곤 하는 그런 글쓰기.

 

소설은 기독교인들이 당황하고 남을 도발적인 설정에서 시작한다. 처녀가 애를 낳았다는 소리를 아직도 믿고 있느냐는 설정. 여기서부터 이미 이 소설은 세속적 서술로 들어서기를 작정하고 있다. 저자가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부분은 정경 성서에서 빼놓은 부분이다. 태어난 후부터 서른 살 까지의 그 상황이다. 나사렛 근처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는 세포리스였고 소설 속 예수는 청년기는 그 도시를 배경으로 움직인다. 

 

예수의 죽음은 아버지의 죽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설정이다. 그 아버지는 하늘의 아버지가 아니고 생부라고 해야 할 요셉. 소설 속의 그는 어린 예수의 생존과 관련된 죄책감에 시달리다 서른 세살의 나이로 십자가에서 처형된다. 예수는 운명같은 그 전조를 밟아나가며 번민하는 존재이고. 소설이 황망한 미궁으로 빠지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복음서와 겹쳐지는 부분이다. 리일리즘의 무기를 들고 질주하던 소설은 갑자기 하느님과 악마가 예수와 대결하는 좀 허망된 설정으로 후반부를 마무리한다. 그럼에도 중역된 번역문 넘어 느낄 수 있는 저자의 진중한 관찰과 서술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에게 기대되는 그 중후한 역사감,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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