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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사의 굴욕. 중학교의 세계사 수업시간에 들려온 것으로 아마 유일하게 머리에 남아있는 사건일 것이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4세가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의 카노사성에까지 가서 성문 밖에서 맨발로 눈 내리는 사흘을 서서 지새며 교황 그레고리우스4세에게 파문을 거두어달라고 했다는 사건. 이 책, <십자군 이야기>도 바로 이 카노사의 굴욕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앞뒤 설명이 없기는 어디나 비슷한 모양이다. 저자는 말한다. 세계사 교과서는 그 이후는 설명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십자군 이야기>가 그 이후의 이야기다.

 

192년의 시간 동안 유럽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모두 여덟 차례의 십자군 원정을 감행했다. 이슬람교도들에게 점령당한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자는 것이 바로 카톨릭 교도들에게 던져진 선동의 문구였다.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고. 여덟 번의 먼 원정이 단지 그렇게 간단한 구호만으로 추동되었을리는 당연히 없고 그 노정도 복잡다단하기만 했다. 그 구구절한한 사연이 이 세 권의 책에 빼곡하게, 그리고 실감나게 담겨있다.

 

방대한 고문서 사료를, 그것도 유럽과 이슬람 양편의 사료를 샅샅이 찾아내 어제 일자의 신문처럼 엮어 서술해내는 저자의 능력은 과연 탄복스럽다. 저자가 복원해내고자 하는 것은 수백 년 전의 사건이 아니고 그 사건을 벌이던 사람들의 모습이다. 고민하고 판단하고 후회하는 군상들. 거기 엮인 타인의 판단과 자연, 지리의 변수를 통해 항상 사건은 예측할 수 없게 전개되고 그리하여 모든 시대는 새로운 사건을 마주칠 수 밖에 없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고 현재형일 때 의미가 있을 뿐이다. 과거에 진공의 순간은 없으며 존재하는 것은 우리의 망각일 뿐이다.

 

내 머리 속에는 밀라노칙령부터 콘스탄티노플의 함락까지의 유럽 역사가 비어있었다. 그 시기의 중요한 부분을 채워준 것이 이 책이었다. 책의 마지막 순간은 십자군의 마지막 보루였던 아코(Akko)전투 서술이다. 피가 흥건한 그 사건을 문자로 거치고나서 구글 어스로 그 지역을 찾아보았다. 지금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새로운 이름, Acre에는 관광객들이 찍은 사진들도 여럿 링크되어 있다. 칼과 광기가 아우성치던 성채들은 한가한 관광지의 피사체로 변했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돌들은 그것이 무엇이었느냐고 묻는 자에게만 기꺼이 대화를 시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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