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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온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논쟁에 관한 이야기다. 창조론과 진화론. 요즘 변화한 단어로 치면 지적설계론과 진화론이라고 해야 하겠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학교에서 이 둘에 대한 입장을 어떻게 취해야 하느냐는 이야기겠고. 일요일이면 굳건히 교회에 나가서 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믿어야 하는 이들에게 교과서에 실린 화석의 이야기는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니.

 

미국은 유럽에 비해 보수적인 사회다. 종교에 목숨을 걸고 대서양을 건넌 사람들이 세운 나라라니 굳이 국교가 기독교라고 간판을 걸지는 않았어도 기독교가 중요한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써서 지금만큼 압도적 지지를 받지 못하던 시기에 학교에서 진화론을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대한 갈등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이 책은 바로 그 갈등이 재판을 통해 부각된 사연을 다루고 있다.

 

시작은 음모였다. 보수적인 주 테네시에서 진화론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느냐는 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결국 이걸 법정으로 끌고 가서 이야기를 키우자는 몇 사람들의 작당이 시작한 일이다. 진화론을 가르친 과학선생님이 본인의 동의하에 기소가 되었다. 이 재판을 부각시켜서 작은 마을 데이턴에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켜보자는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깜찍한 의도와 달리 전개되는 논지들이다. 문제는 인간이 원숭이와 닮았느냐는 것이 아니고 납세가자 원하는 방식의 교육을 고등학교가 수행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것으로 옮겨간다. 결국 법정이 다투는 것은 과학적 진실의 문제라기보다는 납세자의 교육권이 되는 것이다. 물론 재판에서는 두 문제가 서로 겹쳐져서 진행된다.

 

결론은 애초에 음모를 꾸민 이들이 대개 생각한대로 진화론을 가르친 선생님에게 최소한의 벌금을 물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1925년 여름에 벌어진 이 해프닝에 가까운 재판은 결국 20세기 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여전히 신을 믿는다는 사람이 90%를 넘는 사회에서 논쟁은 당연하기도 할 것이다. 지금부터 무려 90년전의 재판기록이 이처럼 꼼꼼하게 남아있는 사회가 미국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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