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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을 말하면 충격적인 깨달음이다. “이 책은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교환양식’에서 다시 보려는 시도이다.” 당연히 역사를 ‘생산양식’의 관점에서 바라본 마르크스가 비교대상이다. 생산의 결과가 지속적인 잉여의 산출이라면 진정한 문제는 그 잉여의 생산의 방식이 아니고 교환의 방식일 수 밖에 없다. 주위를 둘러보면 경제적 패권은 생산주체가 아니고 교환, 즉 유통주체가 쥐고 있다. 잉여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 힘의 이전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저자는 세계사를 네 개의 단계로 나눈다. 엉여를 증여하여 사회를 구성하던 씨족사회, 폭력적 교환을 강제하던 제국주의 시대, 그리고 상업자본과 화폐를 근간으로 하는 현재의 근대세계시스템, 마지막으로 제안하는 새로운 평화적 공생의 사회. 마르크스가 최초의 공산사회와 오지않은 사회를 결합한 것처럼 이 저자도 최초의 증여사회를 오지 않은 사회에 결합하여 투영한다. 새로운 사회는 국가연방으로 현재 유엔이 가장 가깝지만 안전보장이사회와 같은 걸림돌이 존재한다는 것.

 

거대담론과 별개로 저자의 지명도를 충분히 증명하는 놀라운 천착이 책 곳곳에 숨어있다. 예컨대 ‘눈에는 눈’으로 널리 알려진 함부라비법전은 등가의 복수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피의 복수를 금지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 죄형법정주의는 하위조직의 자의적 판단을 금지하는 상위조직의 존재를 의미하며 그리스가 폴리스로 바뀐 것도 이러한 상위조직의 출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책은 일본어를 그대로 읽는 듯한 느낌이다. 네이션, 스테이트, 국가라는 단어는 정교하게 분리되고 조합되어야 하지만 국가라는 단어는 임의로 네이션과 스테이트에 임의로 조합된다. 분명히 ‘위계’로 번역됨직한 단어가 히어르아키라고 그냥 쓰여있는 상황도 이해하기는 어렵다. 네 단계의 교환양식을 상상력 없이 교환양식 A,B,C,D로 지칭해버린 저자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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