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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나라가 아니다. 책은 이 인용문으로 시작한다. 앞의 단어가 지칭하는 나라는 조선이다. 이 문장의 무게는 화자의 존재에 의해 결정된다. 이 화자는 율곡이다. 이 백년 역사의 나라가 당장 이 년 먹을 양식이 없으니 이를 나라로 부를 수도 없다는 것이다. 비극은 곧 일본의 침략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라가 아닌 나라에 전면전이 벌어졌으니 피해를 보는 것은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백성들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주제는 류성룡이다. 임진왜란 내내 나라가 아닌 나라를 건져내야했던 인물. 그가 만났던 임금과 조정, 국토는 어떤 것이었는가. 저자는 임금과 조정을 재단하는데 율곡의 단언에서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존재의 가치를 이미 상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상태는 전쟁 이전에도 그랬으며 전쟁 기간에도 내내 그랬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러하여 결국 그로부터 300년 뒤에 같은 침략자들에게 합방될 때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임진왜란은 일본과 명나라의 전쟁이었다. 비극은 전쟁터가 조선의 땅이었다는 점. 조선은 병사가 없었으며 병사를 먹일 군량도, 병사가 들고 싸울 병기도 없었다. 장수는 있었으나 위계는 서 있지 않아 군령은 중구난방이었으니 전쟁을 수행할 능력도 없었다. 전쟁의 한 주체인 명나라 군사와 군마에게 먹일 식량을 조달할 책임이 조선 조정에 있었으므로 결국 조선 백성의 양식이 징발될 수 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도 조선의 국왕은 명나라의 장수와 사신들에게 빌붙어 있어야 했다.

 

무능한 국왕신료와 궁핍한 재정에도 누군가는 집단을 회생시키기 위해 움직여야 했으니 임진왜란에서 그 인물은 류성룡이었다. 원칙론으로 이루어진 대안이 아니고 실천가능한 대안을 만들고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 임진왜란은 조선과 명나라의 군사적 공격이 아니라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 덕분에 마무리가 되었다. 그들이 퇴각하는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전사했고 바로 그날, 이전에 그를 발탁했던 영의정 류성룡은 탄핵되었다. 이 둘의 만남이 위대한 것이었다.

저자는 보수 논객으로 이미 널리 알려진 학자다. 역사학자가 아니라 사회학자로 알려진 저자의 이 책은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혹독한 문장으로 점철되어 있다. 극기훈련을 통해 강해지는 것처럼 이런 혹독한 역사를 통해 스스로를 들여다 보아야 반성의 강도가 커질 것이다. 질문은 간단하다. 나라가 아니었던 나라에서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더 나아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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