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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연륜으로 이천 오백 년이고 인도, 중국을 거쳐 한국에 왔으니 통합적 단일체제이기를 기대하기는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난마와 같은 무정부주의체제일 수도 없다. 책은 그 시간과 공간을 거치면서 불교가 축적해온 비논변적 언어체계를 해설해놓았다고 보면된다. 대개의 경우는 언어가 쉽고 비언어체계가 어려울 것인데 이 경우는 비언어체계, 즉 상징이 더 이해하기 쉬워보인다. 불교의 언어체계는 불경이기 때문이다. 법화경, 금강경, 화엄경 하는.

 

이런 장대한 시간과 공간을 아울러야 하는 주제이다보니 저자의 내공이 만만치 않아야 하겠다. 책날개에 쓰인 저자의 내공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는 학벌이다. 취득한 석사 학위가 두 개, 박사 학위가 두 개. 그리고 박사과정을 수료한 것도 하나 있다. 당연히 학벌이 전부를 증명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논의의 수준은 확연히 보여준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는 확신에 가득한 문장으로 중국과 인도를 넘나들면서 답사여행에서 궁금해했으나 굳이 알아볼 생각이 없었던 주제들을 설명한다.

 

기와집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대웅전, 원통전, 용화전, 지장전, 영산전, 무량수전과 같은 건물의 공통점은 딱 거기까지다. 그 이름은 건물 지은 사람의 취향대로 골라잡은 것이 아니고 그 안에 모신 부처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저자는 왜 그 부처님들의 집이 그 이름들을 갖게 되었는지도 친절하게 설명한다. 책에는 달마가 왜 그리 부리부리하게 생겼는지, 왜 절에서는 동지에 달력을 나눠주는지, 예불은 도대체 왜 꼭 그 시간에 드리는지와 같은 질문과 답들이 빼곡하다. 궁금한 것이 많다보니 책은 두 권으로 나뉘어있다.

 

민족주의자라고 해야 할 스님을 만나면서 궁금했던 것이 있다. 포용적 불교와 배타적 민족주의가 양립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지금 우리의 불교는 인도의 것도, 중국의 것도 아니다. 이 둘이 비벼진 후 한국이 더해진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석가모니는 요즘 표현으로는 인도사람이다. 가끔 지하철 안에서 만나는 그 인도사람. 그러나 우리가 불교를 이야기할 때, 그런 인도인을 상상하기는 어려우니 우리의 불교가 얼마나 한국화된 것인지를 곧 이해할 수 있다. 민족주의가 더해진들 무슨 문제냐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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