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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책이다. 주기율표가 없었다면 화학은 화학이 아니고 연금술에 훨씬 더 가깝게 취급되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문이 아니고 전문학교에서 가르치는 기술과목이었을 것이라는 이야기. 아니면 약장수 술법으로 치부되거나. 과연 이 책은 그 주기율표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고등학생 시절 화학이 괴로웠던 것은 다짜고짜 주기율표를 외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주기율표 안의 원소들을 모두 지운 상태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원소 자채들에 대한 내용보다 그것들이 주기율표에서 점유하고 있는 위치가 중요하므로 이름이 뭐가 되든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겠다. 과연 그 순간 책은 훨씬 흥미진진해진다.

 

맨델레프가 주기율표 안에 원소들을 집어넣은 사건이 물리학으로 치면 뉴턴이 만유인력으로 세상을 설명한 것에 육박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맨델레프가 무려 30번 정도나 주기율표를 바꿨고 그 이후에 적지 않은 조정이 이어졌다는 건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내용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장님 코끼리 더듬듯 갈래를 잡아 나가는 과정이 한 번에 이루어졌으면 오히려 이상하기도 했을 것이다.

 

책의 후반부는 주기율표의 공란을 채워나가는 과정이다. 어떤 것은 중간을 채워야 했고 어떤 것은 맨 뒤를 이어야 했다. 그리고 그 칸을 채운 사람들이 노벨상과 연관이 되는 것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새로 발견된 원소들에 이름을 붙이는데 끼어드는 시기와 질투와 열정의 하모니는 화학 밖의 세상과 별로 다르지 않다.

 

낙관적 유머로 보면 저자소개를 읽지 않아도 미국인임을 느끼게 해준다. 러더포드는 자신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가르친 제자 11명이 노벨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걸 “700여 년 전에 칭기스칸이 수백 명의 자녀을 낳은 이래 가장 놀라운 후손 생산이 아닐까?”라고 표현하는 수준. 제목을 <사라진 스푼>이라고 번역하는 바람에 진화론책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제대로 화학책이 되려면 <사라지는 스푼>이겠다. 원제도 <The Disappearing Spo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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