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address will show here +12 34 56 78

책 뒤표지에 쓰인 글이 가장 책 내용을 잘 설명한다. “불전은 어떻게 한문으로 번역되었는가.” 수 백 년이 걸린 작업이고 수 많은 사람들이 관여한 일이다. 그냥 책도 아니고 부처님의 말씀이니 허투루 넘어갈 부분도 없다. 불교도가 아닌 자에게는 기껏해야 ‘반야심경’ 정도 알려져 있지만 당대의 스님들에게는 생의 전부를 걸 일이었을 것이다.

 

책은 놀라움으로 가득하다. 산스크리트어와 한문은 유전자가 다른 언어다. 어순, 발음, 의미가 유사한 점이라고는 찾아 볼 길이 없는 언어다. 그런 언어를 번역하는 과정을 설명한 부분은 기가 막힐 지경이다. ‘역주’가 정좌하고 범어문장을 발음하면 ‘증의’가 그 문장을 토의하고 ‘증문’은 ‘역주’의 낭독에 잘못이 없는지 확인한다. ‘서자’는 소리를 한자로 받아쓰고 ‘필수’가 한어로 바꾸고 ‘철문’이 어순을 바꿔 문장으로 만든다. ‘참역’이 비교하여 잘못을 짚고 ‘간정’이 불필요한 부분을 삭제하면 ‘윤문관’이 윤색한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 번역의 방법이다. 범어를 단어별로 모두 옮긴 다음 순서를 한자 방식으로 바꿔 문장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독자를 당황시키되 역자들 입장에서 여전히 곤혹스러웠던 것은 범어의 단어를 소리로 옮기느냐, 뜻으로 옮기느냐는 것. ‘보리수’는 ‘bodhi-vrksa’의 음역이되 4세기까지 이 나무는 깨달음의 나무로 의역되었다고 한다. 소리를 옮길 때 L과 R을 어떻게 달리 표기하느냐는 문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고민거리.

 

책에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위작경전의 존재가 소개된다. ‘경’은 부처님께 들은 이야기를 적은 것인데 그 이후에 쓰였지만 ‘경’으로 둔갑한 것들이 등장한 것이다. 심지어 중국의 풍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경’들이. 성경책의 Apocrypha가 불교경전에도 존재한다는 것이 내심 신기하기도 하다.

 

‘세계’는 당연히 메이지시대의 단어일 줄 알았는데, 책은 명쾌히 불교용어임을 지적한다. 책의 마지막은 ‘聖’이 어떻게 지금의 의미를 갖게 되는지를 설명한다. 지금 우리는 대개 ‘holy’의 의미로 짐작하지만 전국시대를 거쳐 불교의 문화가 더해지고 경교가 전파되면서 그 의미는 그리 간단히 정착되지 않았고 그리 간단히 짐작할 일도 아니라는 것을 저자는 설명한다. 글자 하나가 이리도 막중한 것임을 이 책이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REVIEWS

REVI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