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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가면 식물이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지 느낄 수 있다. 그것은 화분 속의 세계와 좀 다르다. 물론 화분 안의 식물도 치열하기는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치열함이 우연하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래서 한글 제목에는 ‘뇌’가, 원제에는 ‘지능’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우리가 동물 중심의 단어로 식물을 판단한다면 식물에게는 감각기관이 없다고 말하기 쉽다. 저자는 그런 판단이 동물 중심적 사고, 바로 그것이라고 단언한다. 동물은 몸을 구성하는 각 부분이 분화를 이루고 있어 한 부분이 고장나면 대체가 불가능하고 전체가 망가진다. 그러나 식물은 모듈 형식의 몸을 갖고 있어서 한 부분이 뜯겨나가도 충분히 대체와 생존이 가능하다. 그러니 동물중심의 단어로는 식물을 설명할 길은 없다.

 

저자는 식물에게도 오감이 있다고 주장한다. 동의를 하기 위해서는 그 오감이 좀더 명확히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식물을 물을 찾아서 뿌리의 위치를 바꾸고, 햇빛을 찾아서 잎의 방향을 바꾼다. 이것만 생각해도 식물에게 감각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겠다. 

 

저자는 식물의 지능을 설명하게 위해 인공지능을 예로 든다. 인공지능은 지능인가. 이때 지능은 어떻게 규정되는가. 다음 질문은 이렇다. 인간의 지능이 뇌에 의해 규정된다면 식물의 지능은 도대체 어디에 의해 규정되는가. 저자가 짚는 곳은 뿌리의 끝단이다. 아무리 작은 식물도 1,500만개 이상 갖고 있다는 바로 그 근단.

 

내용으로만 보면 대니엘 샤모니즈의 <식물은 알고 있다>와 거의 같은 책이다. 다루는 내용의 진지함에 비해 내용이 짧고 간단한 것이 오히려 아쉽기는 하나 주변의 식물들이 얼마나 치열하고 교활하게 세상을 살아나가는지를 느끼는데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동물을 속이는 지능적 식물들. 그 식물들의 권리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좀 부담스럽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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