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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왕조 멸망에 임해 민족사회를 비참한 상태에 몰아넣은 책임은 그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그는 고종이다. 고종의 개명군주론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날리는 직격탄이다. 저자가 그리는 고종은 개명군주는 커녕 러시아의 니콜라이2세와 같은 반동적 전제군주다.

 

그러나 저자가 이해하는 조선의 망국사는 몇 개인의 시대착오적 판단과 개인적 야욕에 의해 규정될 것이 아니다. 저자는 서세동점기 동아시아의 풍경을 거시적으로 그려나가는데서 글을 시작한다. 그 복판에 서있는 것은 당연히 중국이다. 조선의 경우는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급속히 쇄락하는 왕권과 기형화하는 조공질서에서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다. 저자의 구도는 명료하다. 그런만큼 설득력이 높다.

 

19세기 후반 산업혁명을 통해 무력으로 시장을 확보하려던 제국주의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먹이는 당연히 중국이었고 조선은 다만 일본에게 상대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을 따름이다. 그런 비교적 느슨한 경쟁에서도 조선은 스스로 망국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군주와 신료는 무능했고 탐욕스럽기만 했다는 것이 저자가 그려낸 모습이다. 문제는 그런 탐욕과 부도덕이 일제시대에 생존무기로 이어졌고, 더 큰 문제는 그 가치관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에세이라고 표지에 쓰였으니 엄중한 고증이 더 필요한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폭넓은 구도로 국사를 서술해주는 저자가 있다는 점이 반갑다. 세상을 덩달아 넓게 보고자 하는 이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바깥 세상은 신비적 민족주의로 스스로를 치장해도 좋을만큼 한가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무능한 진보보다 부패한 보수가 낫다.”는 시각의 뿌리를 저자는 들춰준다. 거기 망국의 역사가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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