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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은 1권보다 더 두껍다. 시기는 19세기부터다. 우리로 치면 순조 시대부터다. 우리에게는 별 볼일 없되 젊고 허수아비인 임금들이 오가기 시작한 시대다. 동아시아 전체로 보면 중국이 아편전쟁을 통해 세상의 중심에서 먹이감으로 전락하기 시작한 시대다.

 

책은 제국주의와 식민지 구도에서 시작한다. 제목이 동아시아지만 이 구도에 의해 책의 서술은 세계 전반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차차 이야기를 좁혀들어간다. 한일합방에서 마무리되는 조선의 이야기는 책 후반의 1/3 정도에 서술되어 있다. 한글로 쓰인 책이므로 그 정도가 할애되었을 따름이지 당시 동아시아 상황에서 열강의 관심은 만주와 태평양이었다. 한반도는 이를 확보하기 위한 교두보에 지나지 않았고.

 

아편전쟁을 통해 중국은 세계의 중심에서 내리막길을 걸었고 청일전쟁을 통해 조선에 대한 종주국의 자리를 내놓았다. 러시아는 시베리아종단 철도부설을 통해 동아시아 패권확보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러일전쟁을 통해 다시 유럽 중심으로 물러났다. 거시적 논의는 익숙히 알려진 바였지만 이 책은 서세동점의 구도를 훨씬 더 다양한 입장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입장을 통해 일관되게 발견되는 것은 역시 국가관계도 무력과 외교의 줄타기일 뿐이라는 점이다. 이 두 전략 수립의 주체는 국가의 핵심엘리트지만 실패의 고통은 백성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 비극이다.

 

19세기 내내 조선은 씨족공동체 의식에 근거한 권력 배분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혈족을 전제로 한 폐쇄적 정치회로에서 개인의 능력은 무의미했고 왕실과 척족은 지속적으로 무모한 패착수를 던졌다. 저자는 고종 개명군주론자인 이태진 교수와 대척점에 서 있는 입장이다. 나는 이 저자에 동의한다. 고종이 얼마나 자주적 개명군주였는지를 설파하는 글을 읽으면 그랬을까 하는 회의가 들지만 이 책을 통해 내게 드는 생각은 다시는 그런 시대가 오지 않아야겠다는 것이다. 내게 역사는 반성을 위한 것이지 허울과 자존심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일제 강점기를 ‘발전을 통한 착취’ 구도로 보는 것이다. 식민지 착취를 위해서는 식민지를 개발해야 했다.  구분하면 개발과 착취가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지 둘 중 하나만 배타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개발이 바로 한국 모더니티의 시발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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