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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다카와의 원제소설보다 더 유명해진 것이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이다. 동일한 사건이 화자에 따라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인식, 혹은 서술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그 사건이 사무라이의 죽음 정도가 아니고 수 십만의 죽음을 몰고온 전쟁이라면 목격자와 이해당사자에 따라 서술은 천양지차로 달라질 것이다. 갑자기 궁금해졌던 것은 16세기의 전쟁, 임진왜란이었다. 우리는 의병장과 수군제독의 이야기만 듣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것은 다른 시각이었다. 일본 학자가 쓴 임진왜란 역사서이기에 집어들었다. 전쟁의 시작을 보는 시점부터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 천축, 즉 인도까지 손에 넣겠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허황한 욕심이었는지, 동일인을 만나고 상대방에 대한 경계와 의구심으로 서로 다른 평을 내린 두  통신사의 분파의식이었는지, 이 백년 간 전쟁을 모르고 살았으며 그렇기에 아무 대책도 판단도 내리지 못했던 조선의 왕실 때문이었는지, 혹은 이 모든 것 다였는지.

이 책은 내가 읽은 임진왜란 관련 서적 중 가장 명료하게 사건을 서술하고 있다. 조선, 일본, 명나라의 주연과 조연들이 사건에서 언제 등장하고 퇴장하였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서의 저자는 사료의 선택 순간에서부터 서술의 주관성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저자는 쉽게 토를 달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고 풍부한 사료를 통해 전쟁의 경과를 재구성하고 있다.

 

역사서의 가치는 시대를 뛰어넘어 사건들을 재조립하는 교훈의 순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임진왜란의 구도는 한반도에 여전히 출몰하고 재현되는 악령이라는 것이다. 전쟁의 직접 피해자는 배제되고 침략자와 구원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휴전 협정, 이국의 구원병력 외에는 기댈 곳이 없던 통치자가 전쟁의 마무리 강화가 진행될 무렵 휴전에 반발하는 모습들이 그렇다.

 

여전히 질문은 가치관에 관한 것이다. 왕조에 관련된 일체 사안의 재현이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어있는 프랑스와 달리 우리가 끔찍할 정도로 무능했던 왕조의 사연을 포장하고 회상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부심인지 피해의식인지, 혹은 애정인지 무지인지. 교훈은 포장된 낭만이 아니고 변수와 사실의 이해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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