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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은 이랬다. 원래 메르카토르에 관한 평전이고 제목도 단순히 메르카토르였는데 번역하면서 독자들을 현혹하기 위해 이런 제목을 붙였겠구나. 책을 펼치매 책날개에 적힌 번역자의 소개가 왜 이리 커야하는지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이 책은 번역본이 아니었다. 국내의 지리학자가 쓴 책이었다. 국내의 학자가 메르카토르에 관한 서적을 낼 것이라고는 예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메르카토르는 중학교부터 지리부도라는 책을 통해서 익히 접해온 이름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다양한 도법 중에서 제일 앞에 나오고 가장 많이 나오는 도법이었다. 다양한 도법이 필요한 이유는 지구가 공모양이기 때문이다. 이 위에 생긴 땅의 모양을 평면의 종이 위에 옮겨놓기 위해 지금까지 알려진 단 하나의 가장 훌륭한 방법은 없다. 

 

저자에 의하면 지구의 모양을 평면에 그리기 위해 형태, 면적, 방향, 거리의 네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데 지금까지 등장한 200여 개의 투영법 중 이 네 조건의 세 개를 만족시키는 것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두 가지 속성을 만족시키는 투영법이라 할지라도 지도 전체에서 두 가지 속성 모두를 만족시키는 투영법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 중 메르카토르도법은 정각성의 한가지만 만족시키는 사례라고 한다. 이 정각성이 대항해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가치였으니 결국 지도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한반도를 그린 김정호의 생몰연도를 우리가 모르고 그가 지도를 그렸다는 이유로 피곤한 인생을 살았다는 사실 정도를 우리가 알고 있다. 그에 비하면 메르카토르에 대해 저자가 파악한 내용은 끔찍할 정도로 자세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린 지도의 용의주도함은 고개를 내흔들게 한다. 16세기에 포르투칼과 스페인 사람들이 지녔던 사고의 크기는 새삼스럽게 놀랍기도 하고.

 

메르카토르도법이 지닌 면적상의 왜곡이 냉전시대에 소련의 위협을 강조하는 도구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책의 맨 마지막 꼭지는 이런 정치적의도를 뒤집는 페터스의 지도가 나온다. 이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이 지도를 만든 이가 기존의 지도학계 밖에 있던 사람이고 그래서 기존의 내부 인사들에 의해 견제를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 결국 지도는 땅의 모양을 담담하게 옮겨놓는 과정이 아니고 만든 이가 지닌 세계관에 예속된 표현이라는 결론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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