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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세 단어가 조합되어 있다. 숲, 젊음, 나. 이들을 관통하는 의미는 생명이다. 숲에 가면 익명의 수많은 생명체가 숨쉬고 있다. 숲은 그들을 뭉뚱그려 표현하는 단어이되 숲 안에는 서로 다르고도 수 많은 나무들, 개미들, 사람들이 기명성을 요구하며 숨쉬고 있다. 그 기명성이 극단적으로 변하는 순간이 숲 안에 ‘나’라는 주체가 존재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소설가는 이 ‘나’ 역시 다른 주체에게는 또 다른 나무와 개미와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고 묻는다.

 

소설가가 책 속에서 스스로 제목을 풀어낸 문장은 “개별적 생명의 현재성”이다. 소설가는 삶과 죽음, 거기 엮여있는 짓누르는 무게와 어이없는 가벼움을 지속적으로 병치시킨다. 그 병치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결과물이 바로 이 소설이다. 한국전에서 죽은 병사는 여전히 그 숲안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개미들 사이에 묻혀있다. 그 병사의 뼈는 거기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들의 수관같은 단면을 드러내고 낙엽 속에 묻혀있다. 죽은 이를 지탱하던 뼈는 산화되고 분쇄되어 밥과 비벼진 채 다시 새의 소화기관으로 들어간다. 

 

‘젊은’은 시간이 아닌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다. 여기 ‘날’이 붙으면서 이 단어는 시간성을 얻게 된다. 그것이 ‘내 젊은 날’이 되면서 주인공은 스스로 그려야 할 꽃의 관찰자로서 제대로 된 자격을 얻게 된다. 관찰자이면서 주인공은 이미 숲속을 메운 낙엽과 시체의 현재적 과거형이 된다. 그들도 과거에는 ‘내 젊은 날’의 주인공들이었으므로.

 

저자가 밝힌 것처럼 이 소설은 그가 산천을 떠돌면서 되돌려 받은 질문임에 틀림없다. 애써 답하려 하지 않고 그냥 질문으로만 이야기를 마무리한다는 점이 이미 조바심을 초월한 저자의 내공을 보여준다. 소설을 읽으면서 줄곧 천년 전의 노래가 머리 속에 맴돌았다. “삶과 죽음이 예 있으매 나는 간다는 말도 다 못이르고 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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