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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조와 인조 사이에는 광해군이 끼어있을 따름이다. 임진왜란의 종결과 병자호란의 발발 사이는 40년도 되지 않는 시간이다. 한국전쟁이 종전된지 60년인데 그보다 짧은 시간 안에 조선시대에 가장 중요한 외침이 두 개 존재하는 것이다. 그 사이에는 정묘호란이라는 것도 끼어있다.

 

제목처럼 이 책은 병자호란의 47일 동안 남한산성에서 벌어진 사건을 풀어쓴 것이다. 김훈선생의 소설과 비하면 이 책은 말 그대로 담담히 사료를 정리했다는 차이가 있다. 이 사료의 큰 얼개는 <조선왕조실록>과 <병자록>이다.  <병자록>은 남한산성에서 군량과 물품관리를 책임지던 관리 나만갑의 서술이다. 소설과 달리 저자의 주관개입이 최소화되었으리라는 판단에서 읽게 된 책이다.

 

책 속에 들어있는 조선의 국왕과 조정은 임진왜란에서 별로 배운 것이 없어 보인다. 있다면 명나라를 향한 사은의 뜻 정도. 어떤 판단에서건 중요한 것은 현실의 객관적 인식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과 갖지 못한 것, 상대방이 갖고 있는 것과 갖고 있지 못한 것을 정확히 파악해내는 능력이다. 그러나 대개의 명분론자들은 객관적인 판단보다 극단적인 판단을 요구하고 바로 이런 사건이 벌어진 것이 바로 병자호란의 전후맥락이었다.

 

책의 내용을 한 단어로 정리하면 무능이다. 최고책임자의 무능은 책임집단의 판단을 흐리고 결국 피해는 아래로 내려가면서 말단 구성원들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준다. 임금님은 밥 몇 끼 줄여먹고 이국 황제에게 절하는 수준의 굴욕이 문제겠지만 백성에게는 생사여탈이 걸린 사안이었던 것이다. 사안을 정리하는 책임규정의 순간에서도 결국 주위에서 도와줄 사람 없는 이들만 이국에 끌려가 죽음을 맞았다. 권력을 여진히 쥔 책임자들은 여전히 살아남았고 천수를 누렸다.

 

책을 덮고 조간신문을 보면 아연하게 된다. 도대체 목표와 의도를 명확하게 알 수 없는 아비규환과 거친 언어가 여전히 종횡무진 쏟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다. 사 백 년 정도의 시간은 집단으로서의 인간이 뭘 학습하고 체득하기에는 참으로 짧은 시간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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