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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현상공모 심사를 할 때 가장 쉽게 제출자의 수준을 판단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도판에 사용한 폰트를 보는 것이다. 결국 도판을 통해서 본인과 제출물을 과시해야 하는 공모전에서 폰트의 선정은 그가 어느 정도 예민한 눈을 가졌는지 즉시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고른 여러 폰트를 도판에 써서 당선된 예는 내 경험으로는 없다.

 

본인이 직접 글꼴을 디자인하는 저자의 책이다. 어느 영역에서나 실전을 뛰는 선수의 글은 항상 더 흡입력이 높다. 관찰하는 시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책도 예외가 아니다. 도대체 저 작은 글씨의 점 하나가 왜 그리 중요한지 설명하는 능력은 그 위에 덧붙여진 덕목이고.

 

책에는 이탤릭체 ‘of’의 사례가 나온다. 이걸 주물활자로 인쇄하려면 o와 f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게 우아하게 읽히려면 f가 활자의 사각형 주물공간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야말로 번거롭 까다로운 공정인데 이걸 감내하는 것이 바로 프로일 것이다. 이탈리아의 활자제작자들이 바로 그런 프로였다는 이야기. 무릎을 칠 일이다.

 

이런 책이 건네주는 미덕은 아마 관찰의 개안일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가득 들어서기 시작하고 더 심심할 틈이 없어지는 그런 관찰의 세계. 비텐베르크의 루터 동상에서 루터가 펴든 성서의 활자체까지 들여다보는 그런 관찰이다. 그리고 그 글꼴에 얼마나 많은 고민들이 들어있는지는 눈 뜬 관찰자만 알 수 있다는 이야기고.

 

글꼴은 매체이므로 담백해야 하겠는데 그게 무지 어렵겠다. 이 책의 분위기는 그렇게 담백하다. 잊을만하면 살짝 문장의 양념이 감칠 맛 날 만큼 등장해서 타이포그래피에 딱 적당한 수준이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책을 참 잘 만들었다. 오래된 출판사의 관록이 허명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고 이 책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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