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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다루는 시기는 대한제국기에서 시작해 일제강점기로 끝난다. 8명의 다양하되 단 하나의 공통분모로, 당시의 건축을 전공한 학자들은 이 책의 제목이 왜 궁궐의 눈물이고 백년의 침묵인지를 이야기한다. 책의 내용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한제국기는 단지 서글푼 눈물의 시기라기보다는 적극적인 대응이 있었으되 분루의 시기라는 관점에 저자들은 대개 동의하는듯 하다.

 

사실 대한제국기는 평가가 곤혹스런 시기다. 어제 일어난 사건도 조간신문에 서로 다른 논조로 보도되는데 백년 전의 사건이 모두 일관된 논조로 표현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여기 모인 필자들은 대개 개명군주로서의 고종을 관찰하려는 이태진 교수의 입장에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여기 동의하느냐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나는 이 동의에 유보적인 독자의 하나다.

 

책은 여덟명의 저자가 쓴 책으로는 보기드문 집중력을 보여준다. 이 시기에 관심이 없지 않던 바지만 평양에 풍경궁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책이 소설처럼 술술 읽히는 것은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 시기에 관한 중요한 자료가 대중적으로 공유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 책이 중요하다.

 

공간은 시대의 목격자인데 여기서 그 목격자들은 이리저리 뿌리를 뽑혀 옮겨다녀야 했다. 건물이 이처럼 부평초같은 삶을 살았을진대 백성인들인들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대학으로, 호텔로, 박물관으로 옮겨지고 변해간 건물들은 시대의 묵묵한 목격자라기보다 더 처절한 수모의 피해자들이었다. 그 수모의 주인공들은 바로 궁궐의 건물들이었다. 질문은 다시 등장한다. 우리에게 이 건물들이 중요한 것이라면 우리에게 왕조는 또 어떤 의미인가. 일제강점기가 우리에게 요구한 삶은 어떤 것이었나. 그 질문이 현재진행형인 것은 바로 여전히 등장하는 친일인사명부발간을 둘러싼 갈등이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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