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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대답을 할 필요가 없는 질문일 수도 있다. 대답을 할 필요가 없다면 물을 필요도 없다는 의미일 수 있다. 어차피 우리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지금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그러나 이 질문이 문제가 되는 것은 미래의 모습을 그리는데 중요한 근간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특히 본인이 정치인이라면 그 근간의 존재가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유권자라면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의 근간이 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질문이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저자의 지적대로 이미 국가가 폭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이행하지않으면 폭력으로 이행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항상 논쟁의 중심이 되는 것은 국가가 어느 정도의 폭력으로 그 정당성의 기준점을 마련하는 것이냐는 것이다. 1981년의 광주에서 보여준 국가, 혹은 국가를 대신한 정부, 혹은 정부를 대신한 특정개인들의 폭력, 그리고 탈세사범에 대한 재산징발의 폭력 사이의 어디쯤에서 그 정당성의 기준점을 잡느냐는 것이다. 그 위치는 국가의 도덕성을 재단하는 지점이이고 하다.

 

저자는 당연히 홉스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에게 익숙하기도 하고 생소한 이름들이 주장한 국가의 모습을 적당한 난이도로 풀어나간다. 개인적으로는 이 대열에 <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의 저자인 소스타인 베블런이 들어있다는 것이 좀 의아했다. 베블런이 이렇게 이해되기도 하는구나, 혹은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옳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안겨준다.

 

저자가 정치인인만큼 현안에 대해 좀더 적극적인 저자의 입장을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책의 내용은 좀 많다 싶은 타인의 의견 소개가 들어있다. 책의 단점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아쉬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많지는 않으나 뚜렷한 저자의 목소리는 확인할 수 있다. 선출되지 않은, 즉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지 않은 사법부가 폭력을 행사할 권한을 갖게 되는 메커니즘에 대해 궁금해했었는데 저자는 ‘지식의 지배’라는 단어로 그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진보정당의 연합 당위성을 이야기한 부분만은 아직도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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