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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 갖고 있던 음악사전에 좀 독특한 곡제목이 있었다.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5번의 3악장에 붙어있던 부제다. “회복된 자의 상제(上帝)에 대한 감사.” 이 ‘상제’가 무슨 뜻일까 궁금해하던 때였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자리에 앉아 검색하던 시절이 아니었고 막연하게 짐작이 가기도 하므로 사전을 찾아다닐 일도 아니었기에 잊고 있던 단어가 이 책을 통해 정체를 드러냈다.  천주, 신과 동의번역어. 영어로 하면 god.

 

이 책은 19세기 후반 서양의 언어들 중 중요한 몇 개념들이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번역되었는지를 정리한다. 번역의 주체는 동아시아의 한자권 세 나라인 일본, 중국, 한국, 전반부인 한국의 이야기는 당연히 모두 일본의 번역을 거의 그대로 수입한 이야기다. 문명, 사회, 철학과 같은 단어가 등장한다. 지혜(sophia)를 애호(philos)하는 작업이 어떻게 격치, 궁리, 성리 등을 넘어 철학으로 번역되었는지. 그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단순한 개념을 좀 넘어서는 서술로는 창가, 민요의 개념정립사가 있다. 여럿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창가는 일단 “함께 노래를 부른다”는 현상과 함께 도입이 되어야 했다. 이건 조선에 존재하지 않던 풍습이다. 이것을 들여온 기관은 학교와 군대. 거의 같은 시기에 일본에서 등장하고 고스란히 한국에 도입된 이 체제는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함께 노래를 부르는 제도도 수입하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익숙한 ‘애국가봉창’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책 후반부는 중국의 이야기. 거의 일본을 통해 수입된 개념과 번역어들 중에서 중국의 독자적인 자리가 보이는 곳은 종교. religion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교(敎)’라는 가르침의 번역어를 얻게 되었는지를 알려면 거기 유교가 끼어있음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교(神敎)’가 아니고 ‘천주교(天主敎)’라는 이름의  ‘종교’를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혹은 서양에서 수입된 ‘종교’를 갖고 있는,  혹은 믿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꼭지는 읽어두어야 할 것이다. 때로는 개념이 실체를 규정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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