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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주제와 단호한 글쓰기가 묶인 책이다. 이처럼 단호한 문장을 구사하는 저자가 또 누구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할 따름이다. 아마 마르크스 정도? 책의 앞 부분에 등장하는 문장은 이렇다. “세상의 모든 학자는 환원주의자다. 이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책의 마지막 꼭지 제목은 또 이렇다. “나의 견해는 언제나 옳다.”

 

저자는 단호한 문장의 구사자답게 세계사를 세 마디로 나눈다. 수렵사회, 농경사회, 화석연료시대. 저자가 이들을 나누는 근거는 일인당 필요하고 사용하는 에너지의 차이다. 수렵사회에서 하루 몇 천 칼리리 정도를 사용하던 인류는 1970년대에 20만 칼로리 이상을 소모한다. 그리고 각 시대에 따라 가치관이 바뀌는데 저자가 다시 뽑아내는 가치관의 내용은 평등, 위계, 폭력이다. 각각 세 개의 주제가 매트릭스를 이루는 것이다.

 

저자의 수렵시대는 “개 이외에 어떤 동물도 사육하지 않고, 어떤 식물도 재배하지 않고, 야생에서 사냥과 채집과 어로활동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 시대의 사회는 위계가 적되 광범위하게 폭력적이다. 저자의 농경민은 “길들인 동식물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이 시대는 불평등하고 위계가 뚜렷하되 덜 폭력적이다. 즉 폭력은 재한된 조직의 배타적 소유라는 것이다.

 

인간은 왜 수렵채집에서 농경으로 이동했을까. 여전히 학자들의 이견이 분분한 질문이기는 하다. 저자는 그 이동이 필연은 아니었다고 단언한다. 다만 세상이 따뜻해지고 현생인류가 진화하면서 선택적 압력이 가해졌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본인이 단언하는 그대로 유물론자임을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종교를 농경시대의 산물로 간주한다. 18세기에 화석연료의 시대가 오면서 종교는 인간세의 중심에서 밀려나 세상은 세속화되기 시작했다고 진단한다. 종교를 포함하여 저자가 ‘가치관’에 대해 보이는 입장은 철저한 상대주의다. 지금 폭력을 부인하는 가치관은 이 시대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으며 다른 세상에서는 그 폭력이 세상을 유지하는 자연스런 가치관의 하나였다는 것. 특정한 가치관은 그렇게 물질적 조건에 따라 태어나고 사라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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