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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 / 동아일보 / 수요프리즘 / 2004. 12. 08사적 제324호. 1923년에 지어진 단층목조 건물. 방문객들은 공원 후미진 구석의 이 작은 건물 앞에서 말을 잊는다. 이 압도적인 절대침묵의 공간은 분노, 회한, 절규로 가득한 과거를 덮고 있다. 이 건물은 사형장이었다. 서대문독립공원으로 바뀐 서대문형무소의 사형장. 이 건물이 건축가에게 더욱 비감한 것은 건축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건축은 인간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존재한다. 건물이 일상의 소비재가 아니고 다음 세대를 위한 문화적 환경이라는 가치관이 건축을 의미 있게 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존재의미이면서 다음 세대에 대한 역사적 책임의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건물로서 사형장은 이에 대한 극단적인 반론이다. 사형은 인간의 존재를 부정한다. 그렇다면 이 제도를 담는 건축의 의미는 무엇인가. 질문은 건축가에게 남는다. 사형제도 옹호의 가장 직설적인 근거는 복수다.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자는 또 그렇게 처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복수의지에 의해 추동되는 처벌은 이미 근대적 제도화의 설득력을 잃고 있다. 사형제도 존치의 줄기는 일반예방론으로 수렴된다. 극형을 통해 잔혹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론은 만만치 않다. 사형제도가 잔혹범죄를 예방한다는 통계적 근거가 있느냐는 것이다. 없다는 추정의 근거는 오히려 많다. 복수의지와 일반예방론을 기계적으로 확장하면 사형의 방법은 공개처형이어야 한다. 그러나 공개처형을 시행하는 사회의 범죄율이 더 낮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런 사회가 얼마나 더 안전한지, 그래서 탈북자들은 줄고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데이터는 찾을 수 없다. 사형제도폐지의 가장 큰 논거는 오심의 가능성이다. 역사상 가장 널리 알려진 예는 예수의 처형일 것이다. 종교적인 판단을 접어둔다면 그 처형은 번제를 요구하는 집단광기와 정치적 이기심에 의한 것이었다. 이후 이천 년 동안 유럽사회에 이어지던 유태인혐오의 근저에는 예수처형자의 자손들이라는 적개심이 깔려있었다. 이차대전 때에는 이 혐오감이 무려 육 백 만 명의 인간을 처형했다. 역사는 집단광기의 몸부림으로 휘청거려왔다. 지구 반대편의 나라인들 다르지 않았다. 북한의 사주를 받아 사회를 어지럽혔다는 조작된 죄목으로 대법원 확정판결 하루 만에 8명의 사형이 집행되기도 했다. 역시 북한의 사주를 받아 무려 115명의 민간인이 탑승한 비행기를 이국의 바다에 수장시켰다는 폭파범은 석방되어 평범한 사회구성원이 되었다. 그가 정말 폭파범이었느냐는 질문도 대답도 모두 허공에 떠돌고 있다. 국제적인 압력으로 사면된 내란음모의 사형수는 몇 년 후에는 바로 그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 생중계 속에 북한에 다녀오기까지 했다. 모두 이십 세기 후반에 벌어진 사건들이었다. 비극인지 희극인지 모를 일들이었다. 이처럼 극단적인 모순의 사회에서 사형제도는 위험한 칼날이다. 그때 칼날을 휘두르던 사람들과 칼날을 피한 사람들이 모두 현실의 공간 안에서 공존하는 기묘한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사형제도의 폐지는 시기상조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 접근은 뒤집혀 있다. 사형제도의 채택이 시기상조인 것이다. 국회에서부터 저자거리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사회는 아직도 무모한 광기와 적개심으로 가득하다. 텔레비전의 뉴스에 등장하는 인터뷰의 절반은 음성변조와 영상모자이크 뒤에 숨은 음모와 밀고로 뒤숭숭하다. 도시 곳곳에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겠다는 이 사회는 정당한 사유 없이 거리를 배회하면 30일 미만의 구류에 처하겠다던 바로 그 사회다. 분노의 별자리 밑에서 태어나는 저주받은 인생은 없어야 한다. 흉악범이 존재한다면 이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날이 선 작두가 아니다. 그 증오를 키우게 한 사회구조에 대한 성찰이다. 사형제도를 채택할 수 있을 만큼 완전한 사회는 올 것 같지 않다. 인간의 존재를 부정하는 건물은 이 사회에서 더 이상 없어야 한다. http://www.donga.com/fbin/output?f=i_s&n=200412070299&main=1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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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 / 동아일보 / 수요프리즘 / 2004. 11. 10이스탄불은 빛나는 도시가 아니었다. 비잔틴의 모자이크에는 이슬람의 금욕적 문양이 덮여 있었다. 그 위로 회색 먼지가 두터웠다. 무심한 여행객의 눈에 비친 도시는 어둡고 신비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삼촌을 떠올리며 포도주를 안겨주던 사람도, 양탄자를 사라고 을러대던 사람도 모두 검은 수염의 아저씨들이었다.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여자들은 침묵 속에서 부유하듯 돌아다녔다. 이런 도시에 최근 화려한 색채가 더해졌다. 먼지를 걷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건물이 아니고 소설에 의해 드러난 색채였다. <내 이름은 빨강>. 16세기의 도시와 그림을 치밀하게 그려나간 이 소설은 단지 터키의 문학적 성취에 그치지 않는다. 이스탄불이라는 도시가 얻게 된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다. 건물에만 관심 있던 여행자에게 회색빛이던 도시는 이제 빨갛고 파란 속살을 지닌 도시로 변모했다. 그 색을 보여준 도구가 바로 소설이다. 도시는 건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설, 음악, 영화에 담긴 도시의 모습은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도시가 지닌 문화적 자산들이고 도시를 의미 있게 만드는 것들이다. <토지>를 존재하게 하는 것은 하동이고 <탁류>를 의미있게 하는 것은 군산이다. 메밀꽃 필 무렵이면 봉평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건물이 아닌 소설 때문이다. 16세기 이스탄불의 화원들은 술탄에게 바칠 세밀화를 그렸다.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18세기 조선의 화원들은 어람용 도성도를 그렸다. 이들에게도 지도제작은 목숨이 걸린 문제였을 것이다. 그 지도에는 도성의 길과 천들이 붉고 푸른색으로 빼곡하게 그려져 있다. 지금 천은 복개되었고 길은 여기저기가 지워졌다. 그러나 이 지도에 담긴 길로서의 도시의 모습은 아직 놀랄 만큼 남아있다. 궁은 학교, 병원, 관공서로 변했지만 이들이 바뀌어나간 역사는 소멸한 왕가의 이야기처럼 비감하다. 그래도 이들은 여전히 이 도시의 역사적 흔적이고 증언들이다. 우리의 도시에서 역사는 어디에 있느냐고들 묻는다. 관광엽서의 사진처럼 도시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물을 수 있다. 도시의 역사와 가치는 건물만이 아닌 문화 전체에서 찾아야 한다. 겸재(謙齋)의 인왕제색도가 없었다면 인왕산의 의미는 지금 같지 않았을 것이다. 목숨을 걸고 도성도를 그린 화원들의 붓끝을 이 도시 안에서 느껴보지 않은 채 역사의 실체는 사라지고 숫자만 남았다고 단언할 수 없다. 도시는 이전 시대의 흔적을 박제로 보존하는 창고가 아니다. 자기가 거기 살지 않는다고 해서 비새는 집을 보존하라고 목청을 높일 수도 없다. 도시는 살아있어야 하고 새로운 제안을 통해 계속 변화해 나가야 한다. 좋은 도시는 우리의 야심이어야 한다. 그러나 도시는 선택받은 강자에게 맡겨진 스케치북이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찢어버리고 새로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도시는 덧칠해 나가면서 발전해야 한다. 들춰보면 과거의 증언이 들려야 한다. 터키의 세밀화가들은 기계적 투시도법을 앞세운 화풍에 위협을 받았다. 조선의 화원들이 그린 도시는 지금 계량적 도시계획의 위협을 받고 있다. 넓은 자동차길과 크고 높은 건물로 이루어진 도시의 그림은 우리의 도시에 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세운상가 주변 블록의 대규모 재개발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현상공모에 외국 건축가들만 초대했다는 불평도 들렸다. 바라는 만큼은 아니어도 기존 도시조직을 배려한 흔적이 보이는 계획안이 1등 당선작이 되었다. 그러나 사막에 도시를 짓듯 새 도화지에 그린 계획안을 낸 건축가들도 입상을 하고 실제 설계의 참여자격이 주어졌다. 이들의 서울에 대한 무지와 과감함이 두렵다. 도시가 사라지면 이들을 담았던 문화는 정말 박제가 된다. 좁고 지저분해 보이는 종로의 골목길에는 흰 구두, 흰 양복을 차려입은 원로가수의 낭랑한 노래가 묻혀 있다. 그래서 이 길이 더 애절하다. “보신각 골목길을 돌아서 나올 때엔 찢어버린 편지에는 한숨이 흐렸다.” http://www.donga.com/fbin/output?f=i_s&n=200411090358&main=1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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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건축 / 동아일보 / 수요프리즘 / 2004. 10. 13모른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렇다. 지나가는 구름사진이 용천역 폭발보다 더 큰 사고로 둔갑하여 전해지기도 했다. 우리는 코끼리 주위를 배회하는 장님들과 호들갑스런 양치기소년 사이의 어딘가에 있었다. 덕분에 새롭게 알려진 사실은 북한에 김형직군이라는 행정구역이 있다는 것과 우리가 정말 북한에 대해 모른다는 것이다. 남한 건축가들인들 북한 건축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나서기는 어렵다. 북한에서 발행하는 화보집은 건축으로 가득하다. 만수대예술극장, 인민문화궁전, 인문대학습당 등 북한이 자랑하는 공공건물들은 과연 우람하다. 그림으로 전해지는 평양 도시계획의 화끈함에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전체 국민들에게 무상으로 주거를 공급하는 것이 사회주의 국가의 이상이다. 북한에서는 평양 신도시의 살림집 모습을 화보에 담아 뿌린다. 평양 창광거리, 경흥거리의 고층살림집들은 남한으로 치면 강남의 주상복합아파트에 해당된다. 이 둘 사이의 공통점은 초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남한의 아파트는 괴상한 기반시설물, 불법간판, 불법주차로 범벅이 된 도시에 세워지면서도 인테리어의 화려함은 세계최고 수준이다. 썰렁하게 빈 거리에 세워진 북한의 고층살림집은 그 크기가 세계최고 수준이다. 북한 화보집의 건축이 감동스럽지 않은 것은 인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건축은 정치적 구호를 실어 나르는 도구가 아니다. 인간을 담는 그릇이다. 북한 화보집의 건물과 도시에서는 피사체로서의 인간만 보인다. 그런 건물과 도시는 자신들이 완벽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다는 주장처럼 공허하기만 하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북한의 일상이고 그 일상을 담는 공간이다. 그러나 실제 북한의 주거모습은 꽁꽁 감춰져서 잘 보이지 않는다. 간간히 드러나는 자료의 내용은 생경하다. 북한의 살림집 도면에는 위생실, 내민대, 물림퇴와 같은 생소한 이름들이 가득하다. 그 평면의 모습도 남쪽 아파트와 전혀 다르다. 당이 원하는 대로, 자본이 원하는 대로 각각 만들어온 건축은 오십 년 동안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간 우리는 통일을 이야기해 왔다. 통일은 정치적으로 시작되어도 문화적으로 마무리되어야 할 것이다. 일상생활의 통일은 건축을 매개로 할 것이다. 많이 알고 시작할수록 부작용도 적다. 북한에 관한 정보의 대부분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자료실에서 독점하고 있다. 이 자료실들은 아직도 다분히 폐쇄적이다. 북한의 출판사에서 발행한 <조선건축사>는 남한의 도서전시회에서 팔리고 김정일 저술의 <건축예술론>은 컴퓨터 화일로 떠돌아다닌다. 그런데 정부 자료실에서는 복사 한 장을 하려 해도 도장 찍힌 서류를 내밀어야 한다. 북한에 관한 자료는 볼수록 동경심이 아니라 안타까움이 커진다. 그러기에 좀더 자신 있게 그리고 넓게 공개되어야 한다. 용천역 폭발이 일어났을 때 몇 장 사진이 보도되었다. 의사들에게는 다친 어린이들의 모습이 보였을 것이다. 건축가들에게는 무너진 집이 보였다. 그 벽에서 단열재가 보이지 않았다. 북한은 남한보다 당연히 더 추운 겨울을 보낸다. 그런 곳에 지어지는 건물의 벽에 단열재가 없었다. 건물 복구 중의 사진 역시 다르지 않았다. 남한은 북한에 이런저런 구호물자를 보냈다. 그 속에 단열재가 포함되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단열재는 싸다. 그러나 건물의 보온성능을 향상시키는 데는 그 가격이 훨씬 넘는 역할을 한다. 단열재를 넣겠다고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기존 건물의 외벽에 단열재를 붙이고 거기 합성수지를 한 겹 더 입히는 방법도 있다. 건물의 외장 방법으로 가장 값싼 방법이고 단열효과는 오히려 더 좋다. 단열재로는 전투기를 움직인다는 걱정도 없다. 가을이 왔다. 북한의 산은 떨어질 낙엽도 없이 헐벗어 있다. 우람한 고층살림집 뒤편으로 단열재 없는 건물에 사는 북한주민들이 얼핏얼핏 보인다. 그들에게 알싸한 새벽 공기가 어떻게 느껴질지 정말 모르겠다. 아직도 결론은 그렇다. http://www.donga.com/fbin/output?f=i_s&n=200410120329&main=1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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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 동아일보 / 수요프리즘 / 2004. 09. 08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 하마비(下馬碑)에 쓰인 내용은 이렇다. 모두 말에서 내려 걸으라. 이것은 건물에 담긴 신성함에 경의를 표하라는 뜻이었다. 태종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종묘와 궐문의 동구 밖에서 말에서 내리라고 요구했다. 길의 가운데는 제왕의 공간이라고 지적함을 잊지 않았다. 우리 역사에서 왕정의 폐지는 국왕의 처형이 아닌 제국의 몰락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어진 것은 식민지 통치였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는 왕정의 폐해를 거론하기보다 이국에 의해 뒤틀린 역사를 추스르기에 바쁘다. 고종이 우유부단한 서생이었는지 결연한 전략가였는지의 이견은 아직도 분분하다. 왕정과 이국의 통치는 정리되지 못하고 간판만 바꿔달았다. 이 사회는 권위, 금지, 차별, 통제, 보안으로 빽빽했다. 대통령은 제왕처럼 군림했다. 경찰에게 고문은 자연스런 취조도구였다. 조선총독부 건물에 대한민국정부가 들어섰을 때도 광화문의 가운데 칸은 대통령의 차량을 위한 것이었다. 탈권위의 시대가 왔다. 이를 통해 더욱 커져야 할 것은 국민의 권위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했다. 그 권력은 투표로 표현되고 투표의 결과는 신성한 것이다. 그 결과를 담고 있는 국회의사당은 그러기에 우리 시대의 성전이고 그 앞에는 하마비가 세워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회의사당 본관 앞마당에는 하마비가 아닌 품계석이 세워져 있다. 정일품, 정이품이라고 쓰인 품계석이 아니다. 국회의장, 국회부의장, 열린우리당 당의장, 국회운영위원장, 한나라당 원내총무,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이라고 새겨진 품계석이다. 그 품계석 앞에는 이들의 승용차가 서있다. 조선시대로 치면 경복궁 근정전 안마당까지 마차가 밀고 들어선 것이다. 이복동생도 벤 태종의 칼이 부르르 떨릴 일이다. 국회의사당 본관 정문의 한복판에는 붉은 카펫이 깔려있다. 그 길은 국회의원 전용이다. 비표가 있는 기자나 관련공무원은 옆문으로 들어간다. 비표가 없는 시민은 건물의 뒤로 돌아 지하1층 입구로 들어가야 한다. 시민들은 위험하고 냄새나는 식민지 백성인가보다. 세상은 바뀌었다. 광화문으로는 시민도 관광객도 드나들 수 있다. 청와대 앞길도, 앞마당도 개방되었다. 서울시청에는 제재 아닌 안내를 받으며 드나들 수 있다. 그러나 시대의 뒤에 처진 건물들이 여전히 있다. 정부청사들의 앞마당은 아직 철옹성이다. 수문장들이 길을 막고 그 안에는 공무원들의 쇠마차가 가득하다. 안전이 중요한 건물이어서 빈틈없는 보안검색이 이루어져야 한단다.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공무원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허술한 검문이 아니고 수뢰혐의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중단시켜 온 것은 테러에 의한 상해가 아니고 선거법 위반이었다. 관공서 건물의 권위적 형태와 크기에 대한 비난은 많다. 권위는 건물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부족한 권위를 건물을 통해 채워 넣으려던 권력기관들이 있었다. 이들에게 팔을 비틀리면서 그런 건물을 만들어낸 건축계에 사회가 돌을 던지면 건축계는 맞아야 한다. 그렇다고 건물을 아침저녁으로 허물고 새로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건물을 이용하는 방법은 바꿀 수 있다. 자동차는 마당 아래 세워둬야 하고 시민들이 가운데 문으로 들어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기능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다. 이 건물들이 지닌 상징적인 힘 때문이다. 이곳이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바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국민이 뽑은 선민(選民)은 하늘이 내린 선민(先民)이 아니다. 국회의사당 엘리베이터에서 ‘의원전용’의 문구가 떨어졌다.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국회의원은 존경받아야 한다. 그 존경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강요된 차별이 아니라 시민의 자발적인 양보에 의해 표현되는 것이다. 우리는 국회의사당이 신성한 공간이기를 원한다. 그 앞마당은 주차가 아닌 미래를 향해 열려있어야 한다. 말에서 내려 걸으라. 문의 한가운데로 시민과 함께 들어서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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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속의 문화 / 동아일보 / 수요프리즘 / 2004. 08. 11북소리가 울린다. 수문장 교대의식이 벌어진다. 궁궐 앞에서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수문장들이 근엄하게 오간다. 관광도시가 만든 상품이다. 지방자치단체가 가진 고민의 방향은 거의 같다. 어떻게 문화관광도시를 만드느냐. 시장규모가 작고 제조업 기반이 빈약한 도시에서는 문화관광도시 이외의 대안도 별로 없다. 가장 손쉬운 것은 농수산물 축제다. 그러나 1차 산업 생산물의 축제로는 경제적인 앞날을 기약할 수 없다. 잘 된다고 하면 덩달아 하는 풍속도도 생겼다. 꽃 축제, 도자기 축제가 전국에 넘쳐난다. 역사 도시에서는 기와집을 새로 짓고 민속촌을 만들겠다고 한다. 문제는 거짓말이다. 쇼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더니 역사 도시의 곳곳이 사극의 배경세트로 변해가고 있다. 수문장 교대의식에서 등장하는 것은 수문장이 아니고 배우들이다. 턱에 붙인 것은 가짜 수염이다. 춤추는 가수들처럼 머리에 마이크를 두른 채 호령하는 재현행사 배우들 모습 뒤로 보이는 도시는 처절하기까지 하다. 이런 교대의식이 남겨주는 것은 기념사진의 알록달록한 배경에 그치지 않는다. 얄팍한 쇼의 나라, 돈을 위해서는 왕궁의 역사까지 희화화하는 나라의 이미지를 덤으로 얹어준다. 조선시대를 넘어 삼국시대의 수문장 교대 쇼를 보여주겠다고 나서는 도시까지 생겼다. 한쪽에서는 화랑의 정체성에 관해서도 이견이 많은데 수문장 교대의 고증에 충실하다고 자신한다. 버킹검의 근위병 교대의식이 의미 있는 것은 여왕이 아직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근위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궁궐에는 임금님이 없다. 수문장 교대의식을 하려면 우리는 청와대 앞에서 해야 한다. 배우가 아닌 실제 수문장들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프라하 성의 수문장 교대도 대통령궁 앞에서 한다. 그러나 청와대에 가면 수문장은 진짜여도 건물이 가짜다. 건물로서 청와대는 기와를 얹기는 했으나 콘크리트로 된 가짜 기와집이다. 세종로에서 보이는 대표 건물들인 광화문, 청와대가 모두 콘크리트 기와집일 만큼 이 나라의 도시에서는 복제, 모조품이 횡행하고 있다. 전국 곳곳을 휘젓고 있는 콘크리트 기와집, 장인의식을 발휘해 콘크리트로 만든 나무 모양 벤치, 배우들이 눈치껏 움직이는 민속촌. 모두 우리 도시의 모습들이다. 이렇게 해서 지방자치단체에서 구하는 것은 관광객들이 남기고 가는 돈이다. 그 돈도 들여다보자. 영조의 어진은 남아있어도 세종대왕의 어진은 남아있지 않다. 이순신 장군의 얼굴도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가짜로 초상화를 만들고 한국은행 총재가 도장 찍은 화폐에 넣어 유통시킨다. 화폐에 위인의 얼굴이 들어가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 유로화에는 인물이 아니고 건물이 들어있다. 화폐통용의 근간은 신뢰도에 있다. 달러화에는 신의 이름으로 우리는 믿는다고 자신 있게 쓰여 있다. 그러나 우리는 화폐에서 도시에 이르기까지 곳곳을 믿을 수 없는 것들로 채우고 있다. 가짜, 거짓말, 사기, 유사품, 위조, 짝퉁. 학교는 아이들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담장 밖의 사회는 거리낌 없이 이런 것들로 채워나간다. 이런 사회로 세상의 문화적 중심에 서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도시가 살 방향은 모방과 재현에 있지 않다. 창조에 있다. 꾸준한 노력으로 곳곳에서 괄목할만한 결과들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변변한 공원 하나 없던 동네 부천이 지금 국제적인 독립영화제의 메카가 되었다.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말러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는 기량으로 서울의 내로라는 교향악단을 위협하고 있다. 통영은 이제 굴, 미역을 따서 파는 도시에서 세계수준의 음악제의 도시로 바뀌고 있다. 광주는 빛고을 이라는 이름에 기대 빛산업단지를 만들어 도시를 바꾸겠다고 한다. 작은 단서들을 크게 일궈낸 성과들이다. 시간이 갈수록 창조의 열매는 커지고 모방의 결과는 사그러들 것이다. http://www.donga.com/fbin/output?f=i_s&n=200408100346&main=1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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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개발 / 동아일보 / 수요프리즘 / 2004. 07. 21부평초 같은 인생들이었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을 헤맸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위의 초가삼간을 그리워했다. 일제시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고향에서 내몰린 떠돌이는 늘어만 갔다. 서울. 1970년대를 지나면서 목적지가 뚜렷해졌다. 원로 도시학자는 1966년부터 1980년까지 서울로 몰려든 인구가 하루 평균 약 900명꼴이었던 것으로 계산했다. 이들은 도시에 살았지만 금의환향을 꿈꿨다. 멋쟁이 높은 빌딩 으스대지만 고향으로 돌아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겠다고 했다. 1960년의 도시인구 비율은 30%가 못되었다. 그러나 단 30년 만에 이 비율은 75%로 뛴다. 인구의 도시집중 외에 농촌의 도시화도 큰 몫을 했다. 고향이 없어졌다. 목적지가 사라진 것이다. 이제는 강남으로 가야했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아파트로 향했다. 대한민국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이 되었다. 아파트도 많고 그 아파트의 값도 가장 비싸다. 종로의 아파트들을 모두 모아 팔아도 강남의 특정한 아파트 단지 하나를 못산다는 계산도 나왔다. 학원도 많고 유흥가도 많다. 공부를 하건 놀건 강남으로 모여야 한다. 강남의 아파트로 주거지를 옮기는 것은 이사가 아니고 입성이었다. 이제 서울의 균형발전을 위해 강북도 강남처럼 개발해야 한다고 한다.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아예 수도를 옮겨야 한다고 한다. 지나간 시대의 화두가 경제발전이었다면 이 시대의 화두는 균형발전인 모양이다. 원칙은 맞다. 대한민국은 골고루 발전해야 한다. 그러나 그 논리가 걱정스러운 것은 강남을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불안한 것은 부동산 가치의 상승으로만 의미가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 개발이 우려되는 것은 결국 과객들로만 붐비는 도시를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평면을 가졌어도 연립주택보다는 아파트 값이 비싸다. 작은 단지보다는 큰 단지 아파트 값이 비싸다.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언제라도 빠져나올 수 있다는 환금성 때문이다. 좋은 환경으로 오래 살 수 있는 동네가 아니고 막내아들의 대학입학과 함께 미련 없이 박차고 나올 수 있는 동네여야 가치가 높다는 사실은 서글프다. 자본의 논리는 이 사회를 재단하는 유일한 도구가 되어왔다. 돈이 된다면 신주도 팔고 족보도 팔고 비석도 팔아넘겼다. 살던 이의 흔적이 새겨진 문패는 던져버리고 평당 가격과 면적이 적힌 번지수만 붙잡고 있으면 된다는 가치관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 들소와 산양이 아닌 부동산을 사냥감으로 찾아 떠도는 유목민이 되지 않으면 영원히 뒤처진다는 위협이 이 사회에 팽팽하다. 새로운 행정수도의 후보지가 발표되는 순간은 집단적인 복권당첨자의 발표 순간으로 여겨졌다. 관심의 중심은 어느 쪽으로 금긋기가 진행되고, 누가 그 땅을 갖고 있고, 그 땅을 얼마에 팔아넘길 수 있으며, 언제 팔자를 고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비용이 부족하면 광화문 앞의 정부청사와 땅을 팔아서라도 수도를 옮긴다고 한다. 육백년 이어온 육조거리를 시골의 무심한 논밭과 부동산 시장의 교환가치로만 비교하는 모습이 섬뜩하다. 실핏줄같이 엮여온 사대문안의 도시 조직을 삼십년 전 채마밭이었던 강남처럼 개발해야 한다는 인식도 두렵다. 대한민국은 자본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강남과 그 유사지역으로 개발한다고 한다. 청계천 복원의 기대도 컸던 만큼 이어지는 개발에 대한 우려도 크다. 아쉬운 것은 사라져 가는 이 땅의 역사적 흔적들이고 두려운 것은 종횡무진 힘을 더해가는 자본의 논리다. 부족한 것은 도시에 대한 애정이고 넘치는 것은 도시에 대한 탐욕이다. 주인이 사라지고 주민만 남은 도시, 공동체의식의 자리에 집단적 배타만 가득한 도시, 생활의 바탕이 아니고 투자와 회수의 대상이 되는 도시, 거기서 도시의 미래에 대한 논의는 무기력하기만 할 따름이다. 아름다운 도시는 이토록 멀다. http://www.donga.com/fbin/output?f=i_s&n=200407200395&main=1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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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폴리오 매뉴얼 /1990년 말에 현 황두진건축의 황두진 소장과 유학용 작품집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물론 한 자리에 앉아서 같이 작업을 했다는 것이 아니었고 지속적으로 정보를 교환해가며 작업을 한 것이었습니다. 지원 후 두 사람 모두 원하던 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쌓인 노우하우는 그냥 던져버리기 아깝다는 생각에 이 매뉴얼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컴퓨터가 없이 로트링펜을 갖고 승부를 하던 시대라 지금과 다른 부분은 많습니다. 그러나 작품집이 가져야 하는 내용의 근간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해마다 수많은 작품집을 평가해야 하다보니 그 생각은 계속 확인되곤 합니다. 매뉴얼에 대한 신념은 황두진 소장과 내가 공유하는 바입니다. 이후에도 미국건축사시험 매뉴얼, 실시설계도면작성 매뉴얼, 설계사무소신입사원 기본매뉴얼 등을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미국건축사시험 매뉴얼은 이제 시험이 아예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으로 바뀌었으니 쓸모가 없어졌고 설계사무소신입사원 매뉴얼은 쓴 사람이 지금 학교 선생이어서 더욱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다만 실시설계도면작성 매뉴얼은 학생들 졸업 후에 당연히 알아야 할 내용이어서 가끔 시간되면 이걸 기본으로 강의를 하곤 합니다. 하여간, 당시에는 당연히 손으로 써놓았던 이 포트폴리오 매뉴얼은 귀국해 돌아와보니 그 매뉴얼이 누군가에 의해 타이핑이 되어 웹상을 떠돌고 있더군요. 여기 옮겨 놓습니다. --------------------------------------------------------------------- I. 서 론 황두진과 서현은 유학을 위해 작품집 (portfolio 혹은 brief라고 함)을 만들면서 너무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바, 그것들의 대부분이 정보의 부재, 혹은 부족에 기인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되었고 이제 장도에 오르기 전에 간단하나마 우리의 경험을 정리하여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How to make a successful portfolio'식의 manual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지는 않으며 어디까지나 technique이 아닌 principle, 즉 작품집을 만드는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들을 제시하는데 주목적이 있다 우리는 작품집을 만들면서, 그리고 이글을 엮으면서 약 20개 정도의 국내외 작품집을 조사해 보았는데 여기서 얻은 정보와 우리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항목별 설명을 여기에 제시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항목들은 그 중요도나 우선순위에 있어 차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편집상의 편의를 위해 병렬로 나열되어 있으니 이 점 유의하기 바란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작품집을 완성하고 나서도 계속 주의 사람들에게 비평을 즐겨 듣곤 하였는데 이것은 매우 좋은 경험으로서 이 글을 엮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일면식도 없었던 U-Penn 학생들 몇몇이 편지로 황두진의 작품집에 대해 각자의 평을 써 보내 주었는데 매우 고맙게 생각하며, 필요할 때마다 그들의 의견을 여기서 인용하고자 한다. II. 본 론 1. 작품집은 왜 만드나? 이 질문은 어처구니없이 기본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올바른 문제 제기만이 바른 결론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문제라 하겠다. 작품집을 만드는 목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겠다. - 작가 자신의 기록을 위해 - 취직을 위해 (예: 설계사무소 등) - 고객의 확보를 위해 (예: 회사의 brochure등) -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제일 마지막 경우로서 예민한 사람이라면 이 각각의 경우에 있어 작품집의 성격이 모두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입학을 목적으로 작품집을 만드는 경우를 보자. - 상대방은 그 학교의 교수이다. 학생다운 탐구정신과 열의가 들어있어야 한다. - 대개의 경우 경쟁자의 수는 수백 개에 달한다 ('한방 가득히'라는 표현이 있음) 첫 번에 눈길을 끌지 못하면 탈락의 위험이 커진다. 표지를 넘기자마자 결론이 난다'는 말도 있다. 자질구레한 설명, 도면 등이 많아 봤자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 - 학교에서 원하는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예비 전문가로서의 기량 못지않게 문제를 풀어나가는 process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 U-Penn 친구들의 의견:“ The schools are afraid you are not ‘open to suggestion ', if you present all finished work as if you know all the answers." 실무 건축가의 작품집과 학생들의 작품집이 갖는 가장 큰 성격상의 차이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실무 건축가 중에서도 Norman Foster 같은 사람은 이러한 process를 매우 충실히 보여주는 작품집을 내고 있다. 홍콩-상하이 은행의 설계과정에서 만든 수십 개의 구조 모형 사진은 감동적이라고 생각된다. 가장 이상적 경우라면 평소에 설계를 열심히 하고 자료 정리를 잘 해 두었다가 입학용으로 재구성하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실정상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못하고 완전히 다시 하는 형편이다. 여러모로 반성해야할 점임에 틀림없으며 건축계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예산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자면 한마디로 ‘내가 가진 최고급품이 바로 내 작품집’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옷도 잘 입고 술도 비싼 걸로 잘 사 마시고 차도 좋은 놈을 굴리는데 유독 작품집 만들 때는 경제성이 어쩌고 한다면 예비 전문가로서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시간과 노력과 자금을 아끼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일은 평생에 여러 번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 작품의 선택 일단 원칙부터 제시하자: 선택된 소수. 이것은 Mies의'Less is More'와도 상통하는 이야기로 다른 것 하나 없이 이 원칙에만 충실해도 작품집의 수준은 대단히 높아질 수 있다. 작품을 고를 때, 한 작품 내의 도면의 종류 및 개수를 결정할 때, 설명을 쓸 때 등 거의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best 만을 골라 최대한 부각시키도록 애써야 한다. 학교에서는 B+가 수두룩한 어중간한 모범생보다 C가 몇 개 있어도 A+를 따 낼 줄 아는 싸나이를 더 높이 평가한다는 것 같다. (흔히 'potential이 많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이것과 결부시켜 한 가지 추가하자면 한마디로 작품집은 그리 설명적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상대방은 도면 읽는데는 도가 튼 교수들이고 잔글씨는 눈만 아프게하니 꼭 필요한 것 빼고는 가급적 설명을 줄일 필요가 있다. 작품집은 다소간 과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들의 결론이다. '과시적'이라는 말이 자칫하면 덜 진지한 것으로 오해될 여지가 있으나 충분히 자신을 부각시키면서도 진지함을 유지하는 것이 기량이요 실력이니 만큼 현상설계에 나가는 심정으로 임하면 좋을 것이다. 누구나 모처럼 만드는 작품집이니 만큼, 자신의 경력을 정리해 보고자 하는 생각에서 작품의 질에 상관없이 연대기 순으로 죄다 수록해보고 싶은 욕심을 갖게 마련인데 아무튼 이런 태도는 빨리 버릴수록 득이 된다. 현실적인 이야기로, 아래를 보자: 학교 페이지 규격 기타 Berkeley 24페이지 최대 8 1/2"*11" Columbia 상동 최대두께 1/2" Cornell 상동 Havard 가급적8 1/2"*11" UCLA 최대 11 1/2"*14" U-Penn 20페이지 최대 14" * 17" 가급적 10" * 12" Princeton 최대 8 1/2"*11" Yale 상동 여기서 대충 얻어지는 결론은 20페이지에 8 1/2"*11"의 크기를 갖는 작품집이면 거의 모든 학교에서 받아들이는 표준 규격이 된다는 것이다. 이 8 1/2"*11"은 21.6cm * 28cm정도가 되는데 복사용지 A4보다 조금 작으며 신기하게도 80column짜리 컴퓨터 용지 한 장의 크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우연일까?) 학교에서는 규격에 위반했을 경우에 대한 각종 엄포를 늘어놓고 있으나 실제로 약간씩 초과되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책임질 수 없음! 경험상 그렇다는 것임.) 20페이지라고 하면 대부분의 여기 학생들은 '너무 적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지만 현지에서 그것도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의 작품집은 모두 20페이지씩이었는데 U-Penn 친구들의 편지에는 'Probably too much shown', 'Too many pages'등의 말이 여러 번 써 있었다. 대충 20페이지라고 해 놓고 작품을 선택해 보자 기본적으로 'Academic Works‘(학부, 대학원), 'Professional Works‘(회사, 개인), 'Art Works’(스케치, 정밀묘사 등), '기타‘ 등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중 학부 때 작품은 꼭 들어가야 하고 스케치 등 소위 'freehand drawing'은 손맛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필수로 요구하는 학교가 많다. (일설에 의하면 미국 학생들이 하도 freehand실력이 없어 그렇다고도 한다. 한국 학생들은 이점에 있어서는 좀 나은 편인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작품의 선택에도 소위 주와 종, major 와 minor의 구별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한 두개의 간판스타 격 작품에는 상당한 페이지를 할애하고 나머지는 간단하게 심지어는 한 페이지로 처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중요한 작품에는 약 6페이지 정도를 할애했다 작품집 작성에 대한 각 학교의 요구 사항을 종합해 보면 개인적 작품일수록 선호하고 회사 다니며 한 것은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특히 학교 마치고 한 회사에 오래 다닌 사람일수록 작품집이 마치 그 회사의 brochure같이 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래서는 곤란하다. 한국 건축계의 실정상 왠간히 실험적이고 뛰어난 사무실이 아니고서는 소위 유학용 작품집에 실을 만한 작품이 별로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색깔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사실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전통적 사고를 보여주는 작품이 있으면 좋다. 학교 측에서도 이런 작품에 호감을 갖는 것 같다.) 3. 인쇄냐, 손 작업이냐 아무것도 아닌 문제 같지만 처음에 이걸 결정해 놓지 않으면 막판에 가서 매우 고생하게 된다. 인쇄소라는 악마의 소굴은 우리 맘대로 움직여 주질 않으며 손 작업은 근본적으로 대량 생산이 쉽지 않다. 그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우스개 소리로 작품집 만드는 방법에 나라별로 차이가 있다고 한다. (확인되지 않은 루머임을 감암하고 읽기 바란다.) 딱 펼쳐서 인쇄되어 있으면 한국학생, 표지에 자기 얼굴 사진이 들어 있으면 대만학생, 작품이 세련되었는데 청사진 대충 구어 보냈으면 유럽의 아방가르드 학교 출신 등등. 우리도 이전에 만들어진 한국 학생들 작품집은 많이 보았는데 거의 예외 없이 인쇄한 것들이었다. 그 중에는 심지어 투명 필름에 금박으로 속지를 해 넣은 것도 있었다. 당연히 감투상 감이지만 아까운 돈을 이런데다 쓸 필요가 없다. 인쇄가 좋은 방법인 것은 다 아는 사실인데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즉 인쇄는 고급일 때만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학생이 작품집 만든다고 하면 제아무리 애써봐야 예산이 빠듯한데 이 정도 비용으로 인쇄해 봐야 조잡한 글씨체로 뭉개진 숯덩이가 다 된 사진, 한마디로 넝마 같은 형국이 된다. 물론 개인의 능력에 따라 시각적 효과를 높일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인쇄는 너무나 많은 작업이 제3자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쪽이 을지로의 터줏대감이 아니고서야 원하는 효과를 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모처럼 만든 작품집을 대량으로 찍어내어 마치 명함처럼 쓰기도 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인쇄는 앞으로도 계속 작품집 제작의 주요 방식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손 작업이 경제적인 방법이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도리어 개당 비용은 훨씬 높아지는 것 같다. (우리의 경우 작품집 한 권당 순수 제작비, 즉 이전에 도면 만들고 모델 만들고 하는 비용을 뺀 사진 인화 비, 종이 값 등등이 10만원 이상 된 것 같다.) 그러나 손작업은 이 정도 비용으로 상당한 quality를 얻을 수 있다. 8'*10" 사진 한 장에 국내 최고 가격이 대충 5,000원 수준인데 이 정도되면 그 사진의 품위와 색상, 선명도 등이 더 할 나위 없게 된다. 이런 효과를 인쇄로 내볼라치면 금방 파산해 버릴 것이다. 손작업은 이밖에도 최종 단계까지 자신이 직접 통제의 손길을 미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일을 해 보면 알겠지만 작품집이 완성될 무렵이면 그야 말로 정신없는 상황이 되는데 인쇄소는 꼭 이 무렵에 대형사고를 한 번씩 내곤 한다. 끝까지 냉정하게 자신의 안목으로 작품집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은 손 작업의 큰 장점이다. 인쇄는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고 일단 찍혀 나오면 치를 떨어봤자 청구서의 대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되지만 손작업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허용한다는 점에서 권하고 싶은 방법이다. 단지 여러 권 만들기가 어려우므로 주위의 가까운 분들께 한 권씩 드리지 못하게 되기가 십상이다. 4. 도면의 종류 주어진 하나의 작품을 어떤 도면(여기에는 일반도면, 모형사진, 스케치 등이 다 들어감)들로써 보여줄 것이냐 하는 것은 쉽게 결정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며 사실상 작품의 설계를 제외하고는 작품집 제작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반복해서 적용하는 원칙은 역시 '선택된 소수'의 개념이다. 우리는 자꾸 완벽한 한 벌의 도면, 즉 배치도, 개념도, 평면도(그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전 층 평면도), 입면도(4면 모두!), 단면도(종, 횡!) 거기에 투시도에 소위 정체불명의 image drawing까지 집어넣어야 안심을 하는 습관을 갖고 있는데 작품집은 건축 허가용 도면이 아니므로 자신이 판단해서 중요한 것만 부가시키고 나머지 것은 과감히 생략한다. 이렇게 도면의 개수를 극히 중요한 것으로만 제한하면 '그 많은 페이지를 어떻게 메꾸나'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간단하다. 도면의 크기를 크게 하면 된다. 8"*10"을 크다고 생각하지 말고 과감히 한 페이지에 도면 한 장, 많아봐야 두 장, 이런 식으로 집어넣는다. 때로는 아예 펼쳐서 한 장이 되게 할 수도 있다. 말은 쉽지만 사실 이것은 만드는 사람에게는 고역이다. 한 페이지에 가득 차는 도면이면 적어도 A4나 B4는 될 터이고 그 원도는 적어도 A1 이나 A2 정도는 되어야 엉성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도면 하나 하나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데 이러한 방법이 시원찮은 도면 여러 장 넣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임은 앞에서도 밝힌 바 있다. 우리의 경우 어떤 도면들은 설계다 끝나고 그리는 데만 꼬박 60시간이 넘게 걸린 것도 있다 ('입에서 신물이 나도록'하고 충고해 준 선배가 있었다) 바람직한 태도로는 도면을 거의 전시해도 좋을 수준으로 그리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별 놈 다 있지만 외국 학생들의 도면을 본 바로는 마치 '칼끝으로 제도하는 듯한' (서현의 표현임) 예가 매우 많았다. 대충해 버리면 결과는 뻔하다. 도면의 사이즈 그 자체가 실제로는 큰 효과의 차이를 가져온다. 똑같은 도면이라도 주먹만하게 줄여 놓은 것과 책상만한 것과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 영어의 portfolio라는 단어 자체가 원래 서류 가방을 의미하듯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작품 소개는 원도로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결국 A4정도에 우겨 넣어야 하지만 그래도 가급적 도면을 큼직큼직하게 넣어 대형 스케일로 빵빵 때리면 작품집이 시원시원하게 된다. (소위 빠다 냄새나는 작품집들이 대충 이렇다. 특히 I.I.T 출신들은 더욱 그렇다) 대형 도면이면서도 엉성함을 잃지 않을 것,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어쩔 수 없이 많은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작은 도면 여러 개가 필요한 경우에는 아예 collage등으로 재구성하여 크게 한판으로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려야 할 도면의 종류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또 하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되도록 이면 자신이 '3D로 사고하고 있음'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도면보다는 모델이, 같은 도면이라도 입면도보다는 투시도나 투상도가, 단면도보다는 단면 투시도가 공간에 대한 입체적인 접근의 태도를 보다 명확히 보여 준다. 배치도나 평면도를 그릴 때라도 이왕이면 음영을 그려 넣어 입체감을 주는 것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흥미를 갖게 한다. 또 다시 U.Penn에서 온 편지를 인용하자면, “You had better include more renderings or perspectivers rather than 'architectural' drawings. That would tell more about feeling the space, rather than architectural language." 덧붙여 이야기하자면 한 장의 삼빡한 모델 사진 하나가 서너 장의 도면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심사하는 입장에서도 모델은 훨씬 더 정성이 깃들어 보이며 입체적인 설계 approach를 느끼게 해준다. 완성된 것이 아닌 거친 study model이라도 설계의 process를 보여줄 수 있으므로 효과적이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미국의 학교들은, 특히 좋은 학교일수록, 건축에 대한 예술적인 접근 방식을 선호하는 것 같다 ("American schools love this type of 'artistic work.") 따라서 스케치, 사진, 조각, 판화, illustration등 자신의 예술적 소양을 보여주는 것들을 요구하는데 이것을 별도의 페이지에 마련해도 좋지만 가급적이면 도면의 rendering, 설계 과정의 스케치, 모델 등을 통해 작품 내에 골고루 스며들게 하는 편이 나은 것 같다. 잘 그린 실시 설계도면, 디테일 등은 현실 감각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므로 한 두장 넣으면 효과적이다. 5. Lay-out에 대하여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다. 태초에 lay-out이란 말이 있었기에 모두들 이걸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결과 항상 매 페이지마다 도면과 사진, 설명이 '균형 있게' 들어가야 하는 것으로 되어 버리지 않았나 국내의 작품집을 여러 개 조사해 본 결과 'typically Korean lay-out'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대충 다음과 같다. (그림 생략) 이 자체가 좋다, 나쁘다 라고 는 할 수 없으나 대체로 한 페이지의 구성이 이렇게 되면 전체적으로 정보 과잉, 부분적으로는 스케일 부족이 되어 버린다. ('선택된 소수'의 개념을 다시 한번 떠올리자) - 상당히 많은 작품집들이 내용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스케일 조절에 실패해 결과적으로 따분해지는 것 같다.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엉성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크게 원도를 작성하는 것이 좋다. Lay-out이란 단어를 혐오하는 것 같아 써 놓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로 전체적인 질서를 잡고 형식미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lay-out은 중요하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학교측에서 요구하는 몇 가지 사항이 있다. UCLA같은 곳에서는 아예 작품집 자체도 하나의 작품으로 간주, 'book design을 하시오'라고 요구해 오며 그밖에도 대부분의 학교가 매 페이지마다 본인의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하므로 세심하게 계획할 필요가 있다. 전체적으로 일관성 있는 format을 유지하되 부분적인 파격을 주는 것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작품의 순서는 시대역순이 원칙으로, 표지 열자마자 가장 최근작이 나오게 되어있으나 여기에 연연해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완전히 거꾸로 할 수도 있고 자기 나름의 시나리오가 있으면 시대를 무시하고 편집할 수도 있다. 황두진, 서현의 작품집은 완전히 시대 역순으로 되어 있는데 U.Penn의 Blake Williams란 친구는 황두진의 작품집을 순서만 바꿔 재구성해 보라는 제안을 해 오기도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 I removed 4 pages and rearranged the pages to give a better rhythm and continuity...... so it has a greater impact." 6. 설명문 쓰기에 대하여 설계에 있어서 소위 'mundane'한 사항들 즉, 화장실이 어떻고 진입이 남쪽이고 하는 것들은 하나도 쓸 필요가 없다. 도면에 다 나오기 때문이며 설혹 의사전달이 더 잘 된다고 해도 자신에 대한 평가가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기 나름대로의 개념 등은 써도 좋은데 그것도 너무 딱딱하게 말고 예술적으로 향취가 있게 쓴다. (" ....more artistic, not so technical." from U.Penn) 설명은 아무튼 짧으면서 할 말 다하는 것이 요령인데 학교에서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것들은 꼭 해야 한다. 즉 제목, 날짜, 공동작품인지 개인적인 것 인지의 여부 등, 특히 회사 다니며 한 것들은 전체 설계과정에서 자신이 담당한 역할('responsibility'라 한다)을 꼭 밝혀주어야 한다. 한국에는 슈퍼맨 학생들이 많아서 대형 사무실, 호텔, 병원 등의 작품에 아무 부연 설명 없이 자기 이름을 달랑 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상대방이 믿지도 않을 뿐더러, 자신의 신뢰도, 나아가 한국 학생의 전체적인 성실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Responsibility를 밝힌다고 해도 예를 들어 현상 마감 전날 소방수로 끌려가 도면 몇 장 그린 것은 하나도 소용이 없고 본격적인 설계과정에 참여하여 자신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어야 효력이 있다. 또한 도면이나 모형을 보여줄 때 자기가 만들거나 그린 것이 아니면 아니라고 솔직히 밝힌다. (가급적 자기 손맛이 없는 것은 아예 넣지를 않는 것이 좋다.) .. 다음의 작품 설명의 model case를 하나 제시한다. - Project Architect / Advisor : ~~ - Site : ~~ - Program : ~~ - Objectives : ~~ - Responsibilities : ~~ 어휘는 이것 말고도 많이 있을 수 있고 글재주가 있으면 아예 죄 풀어서 줄줄이 써 버릴 수도 있겠으나 정확히 밝힐 것은 정확히 밝히도록 한다. (에를 들어 esponsibilities 같은 경우 자기가 한 일의 내용, 기간 등을 써준다.) 일반적으로 많이 무시되고 있고 또 우리의 형편상 해결하기에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꼭 지적해야 하는 것의 하나가 영어의 사용에 대한 것이다. 꼭 명문장이 아니더라도 가급적 격식에 맞는 표준 영어로 철자법, 구두점, 한글의 영어 표기 원칙을 준수하여 설명을 쓸 필요가 있다. "나는 한국인인데 뭐 "하지만 사실 이런 것은 기본적 상식에 속하는 일로서 제대로 해 놓지 않으면 아무래도 성실성을 약간 의심받게 된다. 작품집의 수준이 올라가는 일이므로 충분히 신경 쓰도록 한다. 7. 표현 매체별 특징 일반적으로 작품집에 들어가는 내용을 매체별로 분류하면 도면, 스케치, 사진, 글씨 등이 될 것이다. 각각의 경우에 대해 설명한다. ( 전문 업체들에 대한 소개가 뒤에 붙어 있다.) 도면 여기서 도면이라 함은 half-tone이나 touch가 전혀 없는, line drawing을 의미한다. 이것을 작품집에 싣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반적으로 제단을 펴서 인화지에 옮기는 것인데 막상 해보니 싸구려 제판을 펴 봐야 세밀한 선이 뭉개지는 등 별로 만족스럽지 않았다. (역시 고급의 인쇄가 아니면 효과가 나질 않는다) 최고의 선택은 소위 photostat라고 하는 방법인데 사실상 이것도 제판의 일종 이라고 하며 대단한 quality의 축소(및 확대) 도면을 얻을 수 있다. 당연히 엄청나게 비싸므로 극히 제한적으로 쓸 수밖에 없다. 서현이 이 방법으로 도면 몇 장을 처리했는데 A1 크기에 0.1mm로 세밀하게 그은 선들이 8"*10"으로 축소해도 생생히 살아 나와 그를 기쁘게 했다. 차선책으로는, 다소 쇼킹하게 들리겠지만, 복사가 있다. 요즘 나오는 복사기는 경하해 마지않을 정도의 성능을 과시하며 특히 canon 복사기의 정밀도는 압권이다. 웬만큼 축소해도 디테일이 거의 뭉개지지 않는다. "복사는 좀 싸구려 같아 보이는데...." 하는 사람들이 많고 또 그게 사실이지만 그건 복사지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일반적인 복사지는 얇고 또 뒤가 비치므로 당연히 멍청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획기적인 재료의 출현으로 제판 뺨치는 효과를 복사로 낼수 있다. Iconorex라는 독일제 종이를 명보극장 옆 코스퍼(종이도매상)에서 전지에 500원 정도로 팔고 있는데 이걸 규격대로 잘라 수동 급지 (장동으로 하면 잘 걸림)해서 복사하면 매끈한 면에 짙고 힘찬 선들이 찍혀 나오는데 모르고 보면 인쇄와 똑 같다. 서현이 어디서 이걸 알아내어 황두진은 아예 photostat 대신 복사로 모든 line drawing을 처리했는데 quality에 있어 하나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지금도 이 종이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을 상기하면 이~러ᄒ게 그~ᄅ 씨가 떠~~ᄅ린다. (주의:Iconorex지가 복사기에 어떤 나쁜 영향을 주는지는 잘 모르겠음. 아르텍의 복사기 아직 잘 돌아가나?) 스케치 및 연필 도면 선 뿐 아니라 명암, 질감 등을 나타내는 연필 touch, 혹은 거친 크로키 touch 등이 있는 도면은 제판이나 photostat로 재현이 안되므로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 단 기성제품의 tone지 등을 사용한 균일한 texture는 상관없다) 인쇄소에서 가장 권하는 것은 색 분해 (흑백인 경우 단색 분해, 천연색인 경우 원색분해)로 이것으로 하면 결과는 양호하는 비용이 좀 비싸진다. 일단 필름만 떠놓으면 재생('스리'라고 함)에는 그다지 큰돈은 안 든다고 한다. 우리는 색 분해 대신에 복사와 사진을 즐겨 썼다. 일반적으로 복사기도 texture재현이 안 되는 걸로 되어 있으나 그건 구청 앞 사법서사 사무실에 있는 것이니 그렇고 최신 기종들은 적어도 첫 번 재생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 황두진은 롱샹 성당의 스케치를 상당히 공들여 연필로 정밀 묘사한 후 -역시 Iconorex지에 canon 복사기로 1/2축소해서 붙였는데 그걸 본 U. Penn의 한 친구가, "... I like the drawing of Ronchamps because of tones and mood w/o sharp lines or typical hatching." 사진, 특히 흑백 사진은 잘만 뽑으면 연필 touch같은 것을 충실히 살릴 수 있다. 단 가급적 인화할 때 높은 contrast를 요구해야 멍청해지지 않는다. 황두진은 inking위에 연필 touch 넣은 도면이 몇 있었는데 대부분 흑백사진으로 처리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천연색 도면 및 모형 오프셋 인쇄 등을 하지 않고 천연색 도면이나 모형등을 재생하는 방법이라고는 사진 밖에 없는 것 같다. 물론 color 복사기가 시중에 많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축소, 확대가 안되므로 크게 그린 도면 같은 것은 처리할 수 없게 된다. (등배로 복사하는 경우 quality는 문제가 없다. 우리도 시험삼아 해보고 놀랐는데 단 operator가 기계의 성능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에 사활이 걸려 있다. 우리의 경험으로는 역시 color 복사기도 cacon을 당할 것이 없는 듯하다.) Color 사진의 경우 국내 최고의 quality를 얻으려면 하셀블라드 등 120mm 대형 사진기에 코닥필름(슬라이드용)을 써서 찍은 후 충무로의 photopia에 맡겨 시바크롬 디럭스 내지는 글로시로 뽑는 것이다. 잘 찍은 필름을 가지고 이렇게 고급 인화지로 뽑으면 가슴이 벅차 오르게 된다. 단 대형 카메라는 워낙 비싸고 가지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으므로 일반적으로는 소형의 35mm 카메라를 쓰게 되는데 8"*10" 정도까지는 큰 무리가 없는 것 같다. (나란히놓고 보면 물론 차이남) Photopia는 흑백인화도 잘 처리해 주며 직원들도 친절하다. (곱게 생긴 아가씨는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단 일반 negative 필름의 현상 인화는 취급하지 않는다. 그다지 고급의 사진이 필요하지 않거나 혹은 3"*5"정도의 크기로 집어넣을 때에는 그냥 일반 negative 필름을 쓰게 되며 이 경우 현상 및 인화는 25분, 45분 나아가 스튜디오 현상소(주로 충무로에 있음)등 다양한 선택의 여지를 갖는다. 명심할 것은 사진이 작을 때에는 상관없으나 5"*7" 이상의 규격이 되면 꼭 전문 스튜디오에 맡기라는 것이다. (참고: 5"*7"도 아쉬운 대로 25분 현상 인화가 가능함. 8"*10"은 안됨) 여기서 전문 스튜디오라 함은 충무로 등에 있는 작은 현상 인화 업소를 말한다. 처리에 하루밖에 안 걸리며 가격도 적당하다. 절대 현대칼라에는 맡기지 말 것. 편견인지 모르겠으나 황두진은 여러 번 골탕을 먹은 적이 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솜씨도 형편없다. Color 사진에 있어 한번쯤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무분별한 color의 남발이다. 우리가 본 가장 'impressive'한 작품집의 하나는 순전히 흑백으로만 된 모노톤의 것이었다. 가급적 수시로 가 편집 등을 통하여 전체적인 느낌을 파악해 보고 굳이 color가 아니어도 될 것들은 흑백으로 바꾸던지 한다. 글씨 도면, 모형 사진 등은 이럭저럭 해결이 되도 정작 글씨는 막상 뾰족한 처리방법이 없다 결국 글씨 때문에 인쇄할 결심을 굳히게도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적당한 비용으로 작품집에 글씨를 넣는 방법은 다음의 것이 있다. - 글씨 쓰는 법 : 공타, 식자, 컴퓨터(IBM,Mc), lettraset, 타자(전동, 수동) - 쓴 글씨를 재현하는 법 : 인쇄, 복사, 컴퓨터 프린터 우리도 이 문제를 갖고 고민고민 하다가 결국 황두진은 글씨만 인쇄소에 가서 식자를 쳐 왔고 서현은 IBM 컴퓨터를 이용했는데 (그것도 역상으로) 후자의 경우 아무래도 시각적 명료도에 문제가 있는 듯하다. 식자는 돈이 좀 들지만 글시체도 좋은 것이 있고 일단 치고 나면 자기 의도대로 편집한 후 복사해서 재생하면 된다. 조금 큰 글씨는 Lettraset이 다양한 선택의 여지를 주므로 추천할 만 하다. 요즘은 국산 Lettraset의 품질이 매우 향상되었으므로 굳이 외제를 쓰지 않아도 된다. 표현 매체별 종류/표현매체 line drawing - photostat - 제판 - 복사 스케치, 연필 touch - 복사 - 단색분해 - 흑백사진 천연색 도면, 모형 - 윈색분해 - color 사진 (slide, negative) - color 복사 8. 재료의 선택 올바른 재료의 선택이야 그야말로 본인이 알아서 할 문제이나 그래도 약간의 설명은 필요하리라고 본다. Binder, File의 선택 인쇄하는 경우라면 아무래도 떡 제본을 하므로 별도의 binder, file 등을 필요로 하지 않으나, 넘기기 쉽게 binder를 하거나 손 작업으로 낱장낱장 되어있어 file을 필요로 하는 경우 맘에 드는 것을 찾아 헤매 다니게 된다. 플라스틱 바인더를 감아주는 곳은 꽤 많이 있는데 지름이 너무 크면 보기 싫으므로 가급적 작게 감아줄 것을 요구한다. 서현이 이전에 만들었던 작품집의 바인더는 지름이 6-7mm밖에 안되어 아주 간결한 느낌을 주었다. 낱장낱장 file에 끼우는 경우 시판되는 clear file (A4규격)을 쓰게 되는데 의외로 좋은 것이 없다. 다행히 일본 제품 중에 딱 20페이지 짜리가 있어 택해 썼는데 결과적으로 황두진과 서현의 작품집은 겉모양이 똑같아졌다. (우리도 서로 몰랐음) 색깔도 다양하고 아주 납작한 맛이 있으므로 그런 데로 괜찮았다. 종이 종이의 종류가 가장 많은 곳은 역시 남대문 알파와 명보극장 옆 코스퍼이다. 이중 코스퍼가 더 대규모이고 사람들도 친절하므로 한번 가보기를 원한다. 코스퍼에는 아까 이야기한 Iconorex지 말고도, 그와 비슷한 특징을 갖지만 면이 거칠어 복사하면 아주 rough한 느낌이 나는 종이도 있다. 서현은 이 종이에다 collage를 복사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모형 재료 모형재료 하면 역시 남대문 알파가 최고이지만 의외로 플라스틱 모형가게에 가면 참신한 재료들이 있다. (예: 바르면 마치 녹슨 철 같이 느낌이 나는 일본제 weathering color set, 냉장고 부품을 이용해 만든 air brush용 compressor, 등등) 우리가 가장 선호한 모형 재료는 balsa 였는데 가공의 용이함, 가늘게 잘라도 유지되는 탄력, 만들고 나서의 품위 등 상당한 장점이 있었다. 두께별로 팔고 있으니 적당히 골라 사면된다. contour용으로 흔히 styrofoam을 많이 쓰고 있으나 골판지나 콜크판 등을 써도 효과가 좋다. 골판지는 중구 방산 시장에 가면 싸게 살 수 있다. (의외로 무거우니 운송 수단을 마련할 것) 모형 재료야말로 정석도, 이론도 없이 그야말로 묘기 백출 할 수 있는 것이니만큼 계속 관심을 갖고 자기의 재료를 찾을 필요가 있다. III. 결 론 작품집의 제작은 학생으로서의 실험 정신과 예비 전문가로서의 숙련도, 일관성 등을 동시에 보여주어야 하는 매우 어렵고도 긴 작업이다. 좋은 학교일수록 마감기일도 빠르므로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 경우 TOEFL, GRE 시험 준비 기간을 빼 놓고도 약 3개월은 꼬박 잡아야 충분히 작업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의 경우 서현은 이미 영어 시험을 봐 논 뒤라 상관이 없었지만 황두진은 처음부터 죄다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8월부터 12월까지 두문불출, 시험 공부와 작품집 제작에 매달렸다. 많은 학교에 지원하는 경우 원서 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니 충분히 시간을 잡기 바란다. 이 글에서 설계와 presentation에 관한 내용은 거의 집어넣지 않았다. 그것은 개인의 소관이며 이 정도 얇은 글로 대단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도 없는 것이다. 단지 우리는 훌륭한 presentation이란 흔히, 이야기하듯 손재주, 그림 technique의 문제이기 이전에 전달하고자 하는 image나 정보에 가장 합당한 형식을 찾아내야 한다는 점에서 두뇌 플레이임을 믿는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이미 이 글에서 언급한 내용의 많은 부분이 구닥다리일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에서 학생이 뭘 해보겠다고 하면 대충 이 정도일 것으로 예상되므로 약간의 참고가 되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작업 환경에 관한 것이다. 완전히 혼자 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만인이 보는 곳에서 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작품집 제작에 있어 필수적인 존재의 하나가 그 때 그 때 적절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인데 여러 사람 있는 곳에서 일하는 경우 누구나 지나가면서 한 마디씩 내뱉게 마련이고 이렇게 내 뱉는 말치고 귀담아 들을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서현은 원래 일하던 사무실에서 소장님의 배려로 계속 자기 일을 할 수 있었는데 나름대로 피곤한 경우가 많이 있었다.) 자기 주변에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일부러라도 찾아가서 작업 상황을 보여주고 조언을 구하자 (황두진은 이렇게 해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정리된 결과를 내 놓을 수 있었다) 사실상 여기 쓴 여러 내용 중 많은 것들이 이렇게 구해서 얻은 조언들에 기초하고 있다.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야 말로 이번 우리들의 작업 태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원천이었음을 밝히며 글을 맺는다.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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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묻는다 / 이상건축 / 2000. 10진보 나는 진보를 믿는다. 역사의 진보에 관한 회의와 반론은 물론 만만치 않다. 그러나 생산력의 증가라는 틀로 역사를 보면 우리는 진보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청동기시대를 철기시대가 대체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진보의 모습이다. 후기 철기시대의 도래라고 하는 산업혁명도 바로 이 생산력의 증가, 진보를 보여주는 모습들이다. 농경생활이 경제를 규정하던 이 땅에서 이앙법, 심경법, 이모작 등이 모두 국사책에서 거론되는 이유는 그것들이 생산력의 증가를 가져오는 중요한 변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보의 모습이었다. 진보의 핵심은 기술이다. 생산력의 증가는 당연히 오는 것이 아니고 기술의 발달에 의해서 온다. 기술의 발달은 더 적은 자원의 소비로 더 많고 크고 높은 결과물을 얻어내게 한다. 건축의 진보를 이야기한다면 그 바탕에는 기술이 있다. 이성 나는 이성(理性)을 믿는다. 의사소통의 가장 중요한 도구는 사고(思考)를 공유하는 틀이고 그 틀을 이루는 것은 합리성, 이성이다. 이 사회는 덜 이성적이 되기에는 이미 지나치게 비이성적이다. 사형을 선고받은 이가 대통령도 되고, 그를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이도 대통령이 되고, 그들이 한 탁자에 앉아 밥을 먹으며 덕담도 나누고 기념사진도 찍고 하는 이 괴상한 사회는 분명 충분히 비이성적이다. 풍수지리에 의한 배치, 기가 흐르는 장판지, 원적외선이 나오는 마루판이 횡행하는 것이 이 땅의 건축의 모습이다. 이성의 가치에 대해 회의하는 서양의 이론을 들먹이기에는 너무나 비이성적인 우리 시대의 모습이다. 정의 나는 정의를 믿는다. 정의의 모습은 분배에 있다. 늘어난 생산력이 진보의 모습이라면 그 결과물을 어떻게 나누는가는 정의의 모습이다. 인간이 사회를 통제하기 위해 고안해낸 가치개념이 선이라면 인간은 악하게 태어나고 이 사회에는 만인에 대한 늑대들이 가득 차 있다. 그 늑대는 틈이 나면 언제나 사회를 장악하려고 하고 거기 저항해내는 힘이 정의에 대한 신념이다. 태어날 때 가지고 나는 것보다 정직한 노력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아야 하고 그 노력에 의한 경쟁이 공정해지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 사회 구성원의 책임이다. 이 사회는 정의롭지 않고 완전히 정의로와 질 수도 없다. 그러나 좀더 정의롭게 만들려는 구성원의 노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사회의 정의롭지 못한 모습은 물리적으로 표현되어 도시에 깔린다.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보다 그렇지 않아도 좋을 곳에서 필요 이상의 대접을 받는 도시는 잘못되어 있다. 때로는 뻔뻔스럽게 드러나고 때로는 교활하게 숨어있는 그 모습을 나는 애써 찾아내고 싶다. 건축 나는 건축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묻는다. 건축이 무엇이냐고. 교과서를 펼치면 대인(大人)들의 이야기가 보인다. 공간으로 표현된 시대정신, 빛 아래서 펼쳐지는 덩어리들의 정교한 조화 운운하는 이야기들. 건축에 대한 표현은 정의로 둔갑하여 인용되곤 한다. 이 때 철학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고 자신하던 어느 철인(哲人)의 말은 분명 옳다. 건축은 정의할 수 없다. 그리고 정의할 필요도 없다. 질문은 바꾸어야 한다. 너에게 건축은 무엇이냐고. 나에게 건축은 세상을 해석하는 틀이다. 어떤 이들은 그림을 그려서, 어떤 이들은 글을 써서 세상을 들여다본다. 내가 건축을 선택한 것은 건축을 다른 것들보다 좀 더 잘할 수 있으리라는 근거없는 믿음 때문이다. 거기 내가 남보다 낫고 못하고 하는 경쟁의 잣대는 끼어 들 필요가 없다. 그들이 펼쳐놓는 건축 이론들에 대해서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오직 나와 건축의 관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을 보는 방법을 나의 작업이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지가 그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될 뿐이다. 나는 멋있거나 도발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나의 작업도 신기하거나 재미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의미있기를 원한다.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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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 / 확률과 통계 / 2004. 06. 26개인적인 단계에서 길흉화복을 점치는 문제는 집단화되면 풍수지리로 통한다. 묘자리, 집터를 잘쓰면 인생이 행복해진다는 것이 작게는 가족단위로 크게는 국가단위로 이야기된다. 풍수지리 문제 역시 짚어야 할 문제는 묘자리를 잘 쓴다는 것과 후손이 잘 산다는 것이 과연 종속변수의 관계인가 하는 점이다. 과연 이들은 종속변수의 관계인가? 여기서 드러나는 강변은 사주팔자관상의 경우와 다르지가 않다. 즉 통계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이것은 거의 코미디에 가까운 수준의 이야기다. 독립변수인 두 사건을 놓고 통계를 거론한다는 것은 고등어가 많이 잡히는 해에는 기차요금이 오른다는 주장처럼 들린다. 통계에 대한 모독이다. 풍수지리가 가지고 있는 또다른 치명적인 문제는 정설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조선조 초기에 벌어졌던 정도에 관한 논쟁의 예가 그렇듯이 입달린 사람이면 다 한마디씩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풍수지리의 주장은 방증의 자료가 부족한 가운데 정치적 역량이나 사회적 영향력에 의해 설득력이 커지고 작아지고 한다는 것이다. 풍수지리의 심오한 논의끝에 결정된 국가와 가족이 정말 그만큼 훌륭한 결과물을 얻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조선이 도읍을 서울에 하여 찬란한 역사를 얻게 되었는지, 혹은 치욕의 역사를 얻게 되었는지 누가 증명할 수 있는 것인가? 풍수지리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곧잘 들먹이는 것이 옛 사람이 남겨놓은 문서들이다. 이것은 문자에 대한 맹목적적인 신뢰의 결과물이다. 동의보감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오래 전에 쓰인 책은 오래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검증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여전히 유효한 검증의 도구는 합리적인 판단이다. 통계라고 하면 두 사건이 종속변수임을 밝혀야 하는 것이다. 검증할 수 없는 내용을 주장하는 것은 1999년 말에 세상을 소란스럽게 하던 교주들의 주장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당장 세상의 종말이 올거라고 하던, 그런. 세상의 종말이 실제로 왔나? 왔다고 믿는 사람들은 양택, 음택을 이야기해도 좋을 것이다. 아파트에도 풍수지리가 있다는 주장이 먹혀들어가고 언론매체에서 소개가 되는 판이니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근대적인 세상은 언제나 오는 건가?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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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팔자 / 확률과 통계 / 2004. 06. 26연말이고 연초면 사주팔자관상보는 사건이 늘어난다. 도대체 올 한 해의 운수는 어떻게 될 것이고 도대체 어디다 투자를 해야 하며 어디를 피해다녀야 하느냐는 것을 알아보겠다고 한다. 들춰보는 대상도 가지가지다. 얼굴을 보기도 하고 손금을 보기도 하고 출생시기를 묻기도 한다. 이런 자료들을 가지고 미래를 알아주겠다고 한다. 그 근거는? 대개가 통계라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손바닥에 있는 수많은 잔금 중에서 생명선이라고 이름이 붙은 그 선이 길면 명줄이 길단다. 왜 그렇냐고? 그런 사람이 많아서이기 때문에. 손바닥의 생명선이 길면 생명이 길다는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먼저 규명되어야 할 사항은 생명선이 길다와 생명이 길다가 서로 종속변수인가하는 문제다. 이들이 독립변수라면 생명선이 길다는 점을 통해 생명이 길다고 주장하는 것은 완전한 수학적 무지, 특히 통계의 무지를 스스로 공개하는 것이다. 과연 어떤 위대한 점술가, 의학자, 수학자가 손바닥의 눈금과 생명의 길이가 종속변수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 생명선이 긴 사람들이 대체로 생명이 길다는 통계자료가 있기 때문이라고? 이건 어제까지 동전을 던졌는데 앞면이 나온 경우가 2/3에 달하므로 오늘 동전을 던졌을 때 앞면이 나올 확률이 2/3라고 주장하는 것 만큼이나 무지한 주장이다. 생명선이 짧은 사람이 생명이 길다고 주장하는 것과 요만큼의 차이도 보이지 않는 주장이다. 왜냐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생명선과 생명의 길이가 서로 종속변수임을 규명해주는 위대한 점술가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따라서 같은 시간에 태어난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일사불란하게 같아질 수도 없고, 일제시대에 바뀐 시간대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들의 인생이 바뀐다고 볼 수도 없고, 출생시간이 같다고 해도 출생시기가 다른(?) 서로 다른 시간대 여러 나라 백성들의 운명이 같다고 볼 수도 없다. 수억, 수십억, 수백억 년 전에 근원지를 떠난 별빛을 보고 점을 친다는 점성술만큼이나 괴이한 풍속이 수학적 논리를 떠나 횡횅하는 이 사회에서는 언제쯤 대화(!)가 가능해지려나?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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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 / 확률과 통계 / 2002. 06. 11우리 주위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확률놀이는 복권이다. 요즘 수많은 복권이 생겨서 동전으로 긁어대느라고 정신이 없지만 그걸 긁어서 5천만원을 받았다는 사람도, EF소나타를 받았다는 사람도 주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도대체 그 기대값이 얼마나 되길래. 복권으로 가장 유서깊은 주택복권을 사서 한번 기대값을 계산해보자. 요즘은 주택복권도 연식으로 만들어 말이 한장당 500원이지 꼬박 천원을 내야 한장을 살 수가 있다. 하여간 이 친구들이 2매1세트 어쩌고 하면서 3세트연속번호 당첨시 무려 5억원을 받을 수 있다고 시뻘건 글씨로 써놓고 있으니 과연 우리가 복권을 사서 떼부자가 될 수 있는지 들여다보자. 주택복권의 뒷면에는 발행량과 당첨금 내역을 상세하게 설명해놓고 있다. 이걸 정리해보자. 우선 연식이라는 점을 빼놓고 500원짜리 단식복권으로 생각해보자. 전체 발행량은 5,400,000장. 1등- 150,000,000원-1매 2등-50,000,000원-2매 행운상-1,000,000원-5매 3등-2,500,000원-6매 4등-5,000원-10,800매 5등-1,000원-216,000매 6등-500원-1,620,000매 이 수치를 놓고 각 등수별 기대값을 계산해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1등 - 27.78원 2등 -18.52원 행운상 - 0.92원 3등 - 2.78원 4등 - 10원 5등 - 40원 .....여기까지 더하면 꼭 100원을 맞춰놓은 걸 알 수 있다. 6등 - 166.7원 이상을 모두 더하면 266.7원 사실 이건 복권이라는 돈놓고 돈먹기의 속성상 그리 나쁜 액수는 아니다. 그러나 함정은 4,5,6등은 당첨이 되면 돈으로 주는게 아니고 다시 복권을 준다는데 있다. 이 복권은 유가증권이 아니어서 이걸 가지고 오다가다 담배를 사 피울 수도, 떡볶이를 사먹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 종이는 위의 계산에 의하면 266.7원의 기대값을 갖는 복권일 뿐이다. 그렇다면 4,5,6등의 상금도, 기대값도 위의 값이 되지를 않는다. 계산은 좀더 복잡해진다. 그리고 전체 기대값도 266.7원보다 더 내려가게 된다. 이제 그 알지못하는 기대값을 k라고 해보자. 그러면 4등은 이걸 10장을 받을 수 있으므로 10k, 5등은 2k, 6등은 k라는 당첨금을 받게된다. 1,2,행운, 3등의 기대값의 합은 일단 50원이다. 따라서 전체 기대값은 50 + 10k*1/500 + 2k*1/25 + k*1/3 = k가 된다. 이걸 풀어 계산하면 85k = 7,500, 즉 k = 88.23원이 된다. 결론은 명쾌하다. 사기다. 액면가 500원짜리 복권의 기대값이 270원 정도 되는척하면서 실제로는 90원도 안되게 책정되어 있다면 이건 국민은행이 수십년간 국민을 대상으로 행해온 사기극이다.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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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놀이 / 확률과 통계 / 2002. 06. 10주사위를 던지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표현할 때 곧잘 등장하는 문장이다. 1에서 6까지의 숫자 중 하나가 나올 확률이 정확히 1/6. 이 확률은 정육면체라는 주사위의 기하학적 형상이 전제되어야 한다. 주사위가 직육면체라면 주사위를 던지는 사건은 소위 "짜고 치는 고도리" 수준으로 접근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직육면체라도 젓가락처럼 두면의 크기가 기형적으로 다른 육면체면 경우의 수는 4로 줄어들고 결국 주사위를 던져서 나올 형식적인 가능성은 6종류지만 확률은 0/4와 1/4로 나뉘게 될 것이다. 젓가락을 던졌을 때 그 젓가락이 꼿꼿이 서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하니까. 기본적으로 주사위던지기와 같은 개념을 갖고 있으나 직육면체 주사위던지기처럼 경우의 수가 검증되지 않는 게임이 윷놀이다. 윷은 동그란 단면의 원통에서 한 쪽을 잘라 평면으로 만들어 곡면이 바닥에 깔리는가, 평면이 바닥에 깔리는가에 따라 말의 진행정도를 결정한다. 젓가락의 경우에서처럼 윷이 꼿꼿이 설 경우도 상정할 수도 있으나 윷놀이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고 실제로 제대로 만든 윷은 건축에서치면 배흘림을 두어 윷이 윷판에 서게 되는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더욱 봉쇄된다. 그렇다면 각 윷은 두가지의 경우의 수만 갖는다. 평면이냐 곡면이냐. 윷놀이가 주사위놀이처럼 정말 예측불허의 게임이되기 위해서는 이 두 경우가 각각 1/2의 확률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모와 윷이 나올 확률이 같아지므로. 이 확률은 주사위와 같이 윷단면의 기하학적인 형상에 의존하나 그 계산은 좀더 복잡하다. 윷의 단면이 잘려나간 원형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문제는 얼마나 잘려나간 단면을 갖는 윷이 가장 공정한 윷이 되는가를 계산하는 것이다. 무게중심을 찾는 수학적 계산과 토크를 감안하는 물리적 계산을 통해 이 답을 찾아줄 용사는 누구인가?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