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박사

중앙일보-상상력사전 조회 수 81 추천 수 0 2017.12.19 10:39:06

[중앙선데이, 2017. 12. 07]


동방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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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탄 세 그림자가 어두운 광야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서쪽 하늘에는 신비로운 밝은 별. 연금술사들은 새로운 별 밑에 누가 기다리고 있을지 알 길이 없었다.


연금술의 역사는 이들에 의해 종결되었어야 했다. 황금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박사 칭호를 받았으며 주변의 칭송을 얻었다. 그러나 연금술사들이 막상 목격한 세상은 예상과 달랐다. 세상은 이 황금을 얻고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악행을 저질렀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헐뜯고 강탈하려 하였다. 소문을 들은 로마 황제는 제국 전체에 인구조사령을 내렸다.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 조사에 응하라. 직업과 주소를 밝히라. 연금술사들의 위치를 찾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금술사들은 로마제국 밖 페르시아인들이었다.


연금술사들은 황금으로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황금으로 세상은 더 불행해지는구나. 연금술사들은 아주 작은 황금 한 덩이만 남기고 기꺼이 연금술법을 소각했다. 대신 그들은 원래의 뜻에 가까운 새로운 물질을 만들기로 했다. 그것은 황금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인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약, 지혜의 묘약이었다.


조심스러웠다. 지혜는 황금과 달라 사람을 매개로 하기에 함부로 실험을 할 수 없었다. 누가 지혜의 묘약을 마셔야 할 것인가. 마침 자라투스트라의 예언서를 읽고 있던 점성술사가 새로 나타난 별의 상서로움에 놀라와 하며 연금술사들에게 전했다. 저 별은 평화의 천사 가브리엘의 눈동자요, 그 시선이 머무는 곳에 지혜의 영광으로 수태한 아이가 있을 것이오. 지혜의 묘약은 마땅히 그 아이의 것이오.


먼 길이었다. 별이 알려준 곳은 광야의 서쪽 끝 요단강 너머의 작은 마을이었다. 목동의 집 마구간에 가브리엘의 눈동자가 빛나고 말구유에 갓난 아기가 놓여 있었다. 인구조사령에 따라 고향으로 가던 가난한 목수 부부의 아들이었다. 연금술사들은 목격한 성탄에 탄성을 질렀다. 바로 이 아이로구나. 이들은 가져온 유향과 몰약을 꺼내 경건히 지혜의 묘약을 조제했다. 부모에게는 자신들의 마지막 황금을 선물했다. 아이의 무사한 성장을 위한 최소한의 경제적 도움이었다. 하늘의 영광, 땅 위의 평화가 드디어 이루어지는 듯 했다.


연금술사들은 동방 페르시아로 돌아갔지만 이후에도 틈틈이 다시 먼 광야를 가로질러 아이의 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조화와 논리에 관한 학문을 가르쳤다. 연금술사들은 아이에게 일렀다. 지식은 지혜의 발목이매 지식 없이 능히 딛고 일어날 지혜가 없느니라. 아이는 과연 총명하여 연금술사들이 전하는 지식을 속속 이해하고 습득했다. 아이는 특히 논리와 비유를 섞은 수사학(修辭學)에 뛰어났다. 어린 나이에 랍비들과 토론을 했고 랍비들은 이 아이가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고 놀라워했다.


아이는 서른 살의 청년이 되었다. 동방의 박사들은 차례로 세상을 떠났고 마지막 스승도 임종을 맞았다. 그는 청년에게 회한 같은 유언을 남겼다. 너는 이제 지혜의 왕이니라. 너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므로 세상의 권세로는 거기 닿을 길이 없느니라. 우리 세 사람은 세상의 평화라는 소망을 갖고 평생을 살았다. 그 평화는 주어지지 않고 이뤄야 한다는 것 또한 우리의 믿음이었느니라. 그 믿음과 소망은 모두 하나의 받침을 가질 것이니 그것이 사랑이라. 그리하여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우리를 받쳐준 힘이었으되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니라. 부디 가서 너의 지혜로 세상을 밝히거라.


청년이 고향을 떠나 처음 한 일은 스승들의 비전제법에 따라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것이었다. 혼인잔치의 하객들이 모두 놀라와 했다고 기록은 증언한다. 이후 삼 년 간 그의 행적은 네 권의 책에 적혀 지금까지 전한다. 그러나 그의 지혜로운 이야기를 들은 세상은 여전히 서로 사랑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핍박하여 기어이 죽였다. 무지는 집단의 힘을 무기 삼아 지혜를 폭력으로 파묻었으며 결국 역사가 증오의 기록인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후 누구도 연금술에 성공하지 못했다. 여전히 세상에서 믿음, 소망, 사랑은 황금만큼 구하기 어려웠다. 다만 동방박사를 인도했던 별은 이후에 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더 이상 밤새 머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눈을 들어 노을을 보라. 초저녁, 맺혔다 곧 말라 사라지는 가브리엘의 눈물방울, 샛별이 보이리니.


http://news.joins.com/article/2221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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