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중앙일보-상상력사전 조회 수 455 추천 수 0 2017.05.01 10:07:56

[중앙선데이, 2017. 04. 30] 오토바이


영혼, 그런 거 없다. 진정성, 애정, 관심도 없다. 최저시급이 있을 따름이다. 그것이 알바의 자세다. 가끔 찌그러진 오토바이가 따라 오기도 한다. 그걸 타고 쓰러질 듯 밤거리의 모퉁이를 달려보라. 휘청거리는 세상을 마주보고 질주하는 그 맛을 너희가 아느냐. 길게 빤 담배를 빨갛게 털어 날려주는 맛도 빼놓지는 마라.


알바 광고가 떴다. 지구 위 생명체 수를 센다던 그 회사였다. 채용된 인원은 알 수 없다. 나는 사람, 호모사피엔스 세는 곳에 배정되었다. 뭔가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말했잖아, 시급이 중요하다고.


내 임무는 현장확인이었다. 판단이 모호하니 가서 사람 수를 확인해라. 회사에서 일을 지시하는 사람을 우리는 그냥 점장이라고 불렀다. 사람 담당 점장은 나이는 엄청 먹었는데 여전히 말단인 아저씨였다. 이전에 티라노사우르스 담당이라던.


점장은 이런 기초조사의 중요성과 빅보스의 선견지명을, 그런데 자기가 젊었을 때 겪은 세상살이의 고난을, 그래서 이룩된 요즘 시대의 물질적 풍요를, 따라서 만연하고 해이한 요즘 애들의 정신력 상태를 얼굴 마주칠 때마다 늘어놨다. 서론은 달라도 이르는 결론은 항상 같았다. 기어이 이룩한 강 보이는 아파트 입성기.


점장의 이야기는 하나도 내 귀에 걸려들지 않았다. 그 입가의 허연 게거품만 눈에 거슬렸다. 내가 사는 창 없는 고시원이 왜 강 보이는 강남 아파트보다 평당 월세가 높아야 하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점장 같은 세대들이 우리들 옆구리에 빨대를 꼽고 있는 거 아니냐고 따지지도 않았다. 최저시급이라고 알려주면 최적시급이라고 알아듣는데 말을 섞어야 피곤할 따름이다. 이 알바에서 잘리면 나는 중국집 오토바이를 타야 한다. 최저시급은 글자 속에나 있게 되고 나는 고시원 월세 낼 일이 막막해진다.


점장이 원하면 우리는 한다. 열정을 기대하지는 마라. 점장의 말이 끝나면 나는 오토바이 열쇠를 꽂고 내달렸다. 신호, 차선 그런 건 묻지 마라. 내 인생의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데 가는 길인들 보이겠느냐. 길이 보이지 않는데 무서울 건 있겠으며 아쉬울 건 있겠느냐. 세상에 내가 남길 게 있다면 오토바이의 브레이크자국일 것이다. 나는 달린다.


나는 개 담당과 짝꿍이가 되었다. 같이 출동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개만도 못한신고가 개 같이접수되면 나는 짝꿍이를 뒷자리에 태우고 빛의 속도로 출동했다. 틀림없이 다 큰 어른을 보고 개의 새끼일 거라고 단호하게 주장하는 경우에도 달려갔다. 유전자검사, 가족관계확인원은 필요 없었다. 개와 사람은 분명히 달랐다고 나는 점장에게 문자보고를 날렸다. 그런데 대개는 신고를 한 사람들이 개처럼 이빨을 드러내며 씩씩거렸다.


걔는 술만 먹으면 개가 돼.” 그러면 또 우리는 즉시 출동해서 지칭된 걔가 누구인지, 걔가 술을 먹고 있는지, 그리하여 걔는 과연 개로 변하는지 확인해야 했다. 걔가 개가 되기 위해 떼 내야 할 그 점 하나는 밤늦게까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빨간 담뱃재를 허공에 날려주면서 어두운 길을 달려 돌아왔다.


봄날이었다. 점장 책상의 숫자가 갑자기 -295를 찍었다. 파도도 없었는데 배는 뒤집혔고 가라앉았다. 아이들이 많았다고 했다. 9명의 상태를 아직 알 수 없다면서 점장이 나를 바닷가로 보냈다.


나도 철이 들어서 사람 보는 눈이 생겼다. 그 눈은 또 제 각각인지라 장사치에게는 사람이 돈이고 정치인에게는 사람이 표였다. 사업가에게 배는 돈이므로 돈 때문에 뜯어고쳐졌다. 고용된 선원은 돈 때문에 고용되었고 배 안의 사람은 배 안의 짐과 다르지 않았다. 자식 잃은 어미들이 곡기를 끊고 엎드려 울고 있는데 또 이빨을 드러내고 이죽거리는 무리들을 나는 보았다. 마지못해 바닷가에 온 정치인들은 왜 이런 절규의 목소리를 듣고 있어야 하는지 어리둥절해 했다. 아마 이들은 내가 알고 있는 호모사피엔스의 종류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점장 책상의 숫자도 잘못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일을 그만 둘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오토바이 열쇠를 반납하고 나올 때 바람이 조금 불어 나뭇잎이 흔들렸다. 펴보니 내 손은 텅 비었고 그 바람 끝의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늘도 마음도 텅 비었고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아서 너무 슬펐다. 얘들아, 잘 가



http://news.joins.com/article/21527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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