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사피엔스

중앙일보-상상력사전 조회 수 515 추천 수 0 2017.04.24 10:05:30

[중앙선데이, 2017. 04. 23] 호모사피엔스


7,337,634,754. 쉽게 읽어주면 73억이 좀 넘는다. 지구에 사는 사람 수를 실시간으로 세는 것, 그게 내 직업이다. 우리 회사는 생물체의 개수를 센다. 내 옆 책상에는 챔팬지, 보노보노, 오랑우탄 담당 등이 죽 앉아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종속과목강문계. 그게 우리 조직도다. 여러 분 회사라면 과장, 부장 위에 상무, 사장, 회장이 있을 것이다. 우리 회사 최고임원은 동물계장, 식물계장이다. 그 위의 창립자를 우리는 빅보스라고 부른다. 여러분은 조물주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전에 티라노사우르스 담당이었다.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지금의 멕시코 부근에 소행성이 떨어졌다. 미세먼지, 황사수준이 아닌 굵은 먼지로 하늘이 덮였다. 온도는 툭툭 내려갔다. 숫자는 확확 떨어졌다. 내 눈앞의 숫자가 0을 찍었다. 티라노사우르스, 아니 공룡 전체가 멸종된 것이다. 내가 할 일이 없어졌다.


회사도 어려워졌다. 국영기업은 매각되었고 철밥통도 옛말이 되었다. 고향집에 부모님이 계시고 막내가 막 대학입학 했을 때였다. 고민한다고 티라노사우르스가 살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아야 했다. 직업재생훈련 받고 자격증 따면서 버텼다. 생명은 놀라웠다. 새로운 생물들이 지구 표면에 등장했다. 내 생존교훈은 이렇다. 이럴 때일수록 어려운 작업에 뛰어들어야 한다. 나는 기피부서에 지원했다. 그게 사람이었다. 호모사피엔스.


처음 했던 일은 업무분장과 정리였다. 사람인지 아닌지 애매한 종류들이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아 모두 불러 모았다. 풍광 좋던 휴양지 이디오피아에 크로마뇽, 네안데르탈,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등 유사종이 모두 모였다. 그 중에는 체력이 떨어지거나 주의가 좀 산만한 친구들이 있었다. 회의 마친 후 멀리 못가고 그 근처에서 죽기도 했다. 그 유골이 요즘 가끔 발견되고는 한다.


회사가 좀더 바뀌었다. 민영화로도 모자라 경쟁회사도 세워졌다. 회사가 소비자 중심의 경영원칙을 표방하기 시작했다. 사람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가 우리가 아니고 사람으로 바뀌었다. 소비자 중심은 알겠는데 사람을 모를 일이었다. 이들이 스스로를 보는 시각은 신기했다. 여자는 사람이 아닌 때가 있었다. 멀쩡한 사람을 잡아다 놓고는 사람이 아니라 노예라고 분류했다. 얼굴색이 달라도 사람이 아니었다.


잊기 어려운 사건도 있었다. 로마시대 식민지에서 청년 한 명이 처형되었다. 나는 심드렁하게 1을 줄였다. 그런데 이 청년이 다시 살아났다는 민원이 접수되었다. 창사 이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이 청년이 사람이 아니라 빅보스의 숨겨놓은 아들이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나는 이 사안은 조용히 덮었다. 사건이 다시 불거져도 그게 내가 은퇴한 이후기만 바랄 뿐이다.


죽은 사람의 숫자까지 세 달라는 민원도 있었다. 몸은 죽어도 영혼은 살아서 빅보스 근처로 날아간다는 주장이었다. 혹시 보거나 체험한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건 아니지만 틀림없이 그렇다고 주장했다. 생각하라. 죽은 후의 세상이 있으면 태어나기 전의 세상도 있을 것이다. 너는 태어나기 전의 세상을 기억하느냐.


나도 이제 은퇴를 가늠하고 있다. 힘들어서가 아니고 암울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요즘 폭죽놀이를 시작했다. 보도 듣도 못한 규모다. 서로 앙심을 품고 있던 이들 사이에서 실제 폭죽이 내던져진 적이 있다.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는 것은 내 일이 아니다. 딱 두 발이 터졌다. 모든 생명체 숫자가 일순간에 푹 내려갔다. 30억 년 넘는 직장생활에서 처음 겪는 사건이었다.


지금 이들은 수 천 개의 폭탄을 내던질 준비가 되어있다고 서로 인상을 쓰고 있다. 필요한 건 더 뜨거운 적개심과 단추 몇 개 누를 사소한 용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때 내 앞의 숫자는분명 다시 0이 될 것이다. 내 주변 책상의 숫자도 0으로 바뀔 것이다. 묻노니 도대체 누가 너희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느냐.


창밖을 보라. 풀밭을 걸어보라. 그리고 발밑을 보라. 거기 꼬물거리는 생명을 보라. 우리는 그 수를 모두 센다. 다시 묻는다. 누가 너희에게 그 권한을 주었느냐.



http://news.joins.com/article/2150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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