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아이디어공모의 심사가 끝났다. 당선작 발표도 났다. 나는 아홉 명 심사위원 중의 하나였다.
내게 주어진 일은 제출된 계획안 중 '가장 좋은' 것을 뽑는데 1/9의 역할을 하라는 것이었다. 심사위원 위촉 섭외를 받고 잠시 고민을 했다. 나는 심판이 아닌 선수로 뛸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위촉 승락을 한 이유는 뛰어봐야 안될 것이니 공연히 헛수고 하지 말라는 지당한 충고도 역할을 했지만, 심판의 입장에서 선수들의 수준을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공정한 경쟁이 가장 좋은 결과를 낳는 데 유일하게 검증된 방식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이 역사적 프로젝트에서 내게 주어진 역할이 '가장 좋은' 안을 뽑는 것이라면 나는 공정한 심판이 되어야 했다. 내가 '가장 좋은' 안을 뽑는데 1/9의 역할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공정하기 위해 나는 역할을 다 했다고 스스로 믿는다.
내가 알게 된 이 동네의 선수들 수준은 생각보다 낮았다. 많이 낮았다. 좋은 건축도면을 그리는데 수준이 낮은 것이 아니고 공정한 게임을 하겠다는 의지의 결핍에서 수준이 낮았다. 내게 자신들의 계획안을 사전에 보여주고 설명하겠다고 하던 이들이 그들이다. 악명높은 턴키에 뛰어들어 로비로 단련된 대형 설계사무소가 전화를 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기대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고, 한국을 대표한다고 하고, 외국에서 전시회도 하는 건축가들도 내게 전화를 해왔다. 교수들도 전화를 했다. 나를 가장 화나게 한 것은 아직 세상에 제대로 나오지도 않은, 젊거나 어린 건축가들 중에도 내게 전화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항상 그렇듯이 외국의 저명한 건축가들 중 한 사람에게 넘기는 것도 검토가 되었다고 한다. 그랬더라면 이들은 입을 이만큼 내밀고 국내 건축가들에게도 '공정한' 기회를 주라고 한마디씩 했을 것이다. 이들에게는 자신들이 배제되면 불공정하고, 자신들이 불정공해지면 세상살이는 원래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간 중요한 몇몇 현상공모결과에 대해서 내가 품었던 의구심의 한 부분을 이번에 확인했다. 나는 그 위선을 기억할 것이다. 보이는 곳에서 드러내던 그 우아함 뒤에 '가장 좋은 계획안'을 뽑지 말고 '자신의 안'을 뽑아달라고 음흉하게 접근하던 그들의 존재를 기억할 것이다. 그들은 낙선자가 당선자를 축하하고, 그리하여 당연히 건축계의 축제가 되어야 할 이 기회를 지저분한 패거리 거래로 바꿔서 자신의 이기적 이익을 챙기려고 했던 개인과 무리들이다. 챙긴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경쟁율이 높았으니 못 챙긴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들은 다른 선수들도 다 자신들처럼 지저분했을 것으로 믿을 것이고 따라서 심사위원들을 의심할 것이다. 그들에게 이 사건은 축제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정글을 만들었다.
나는 다른 이들도 기억할 것이다. 깨끗하게 계획안을 제출하고 심사결과가 나온 후에야 내게 전화를 해서 심사평을 부탁하던 '공정한 선수들'이다. 나는 지금까지보다 좀 더 자주 심사 위촉에 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심판은 가장 좋은 선수를 뽑으라는 책임과 함께 반칙하는 선수들을 응징하라는 권한도 부여받는다. 나는 그 권한을 기꺼이 행사할 생각이다. 게다가 심사비도 준다니.

저희 회사도 출품했는데 떨어졌습니다. 공정한 선수였는지 아닌지는 확인할바 없습니다. ^^; 당선작 5편은 공개안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