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회지, 2010. 01] 서평
사생활의 역사 1~5
필립 아리에스. 조르주 뒤비 책임편집 / 주명철. 전수연 외 옮김 / 새물결
얼마나 황당한 제목인가. 지구상에는 수십억 개인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서로 다른 사생활을 영위한다. 지구상에 살다간 개인들은 이보다 더 많다. 역사라고 하면 과거의 그 개인들을 모두 포함해야 할 것이다. 사생활의 역사라고 한다면 이 개인들의 모습을 모두 쓸어 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가당한 일인가.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미국 코넥티컷의 어느 헌책방에서였다. 다섯 권의 두툼한 하드커버에 쓰인 <History of Private Life>라는 제목은 이미 충분히 도발적이고 매력적이었다. 문제는 호되게 값이 비싸게 매겨져 있다는 점. 헌책은 두께가 아니라 희소성에 의해 가치가 규정된다는 원칙을 책방 주인은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지적 허영심과 경제적 궁핍함의 갈래에서 고민하던 내게 눈의 휘둥그레질 사건이 몇 달 후 발생했다. 이 책의 소프트커버본이 드디어 동네 새책방에 등장한 것이다. 눈이 휘둥그레져야 했던 이유는 값이 헌책의 절반이었기 때문이다. 그 절반도 녹록치 않은 가격이기는 했다. 그러나 이미 기대수준을 한껏 높여놓은 헌책방 덕분에 나는 일고의 주저도 없이 크레딧카드를 긋고 묵직한 다섯 권의 책을 차에 실었다.
이 책에 관해 내가 눈을 더 의심해야 했던 사건은 2002년 한국에서 발생했다. 이 부담스런 책의 제 1권이 번역되어 나온 것이다. 나는 과연 나를 고민케 했던 저 책을 읽을 독자가 얼마나 더 될까를 의심했다. 과연 후속작업이 진행될지도 궁금했다. 그러나 이 책은 각권에 서로 다른 번역자의 이름을 싣고 2006년에 한글로 번역 완간되었다. 그 제목이 <사생활의 역사>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사생활을 역사로 서술할 수 있는 것인가. 대답은 책 스스로 내리고 있다. 근대기를 다루고 있는 5권 I부의 서론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생활은 태초부터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마다 각기 다른 방법으로 만들어내는 역사적 현실이다.”
생로병사가 자연적 인간을 서술한다면 관혼상제는 사회적 인간을 기술한다. 이 책은 바로 그 관혼상제가 어떤 모습으로 시간과 공간의 다양성에 따라 달리 모습을 이루어왔는가를 드러내 준다.
역사적 서술의 대상이 되기 위해 사생활이라는 단어의 ‘사’가 규명되어야 한다. 그 대상은 모래처럼 연관 없이 흩어져있는 개인의 단순합이 아니다. 일정한 생활양식을 공유하는 주체들의 집합이다. 그러기에 사생활은 개인의 생활이 아니고 사회적 최소집단의 생활이다. 그것은 바로 가족이다. 그 가족을 개인이 이룰 수도 있고 부부 및 자녀가 이룰 수도 있다.
가족은 단어는 간단하지만 놀랍게도 다양한 사회적 맥락을 갖고 있다. 사회적 가족체계의 첫 단추는 결혼이다. 결혼은 극단적인 예외를 제외하면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진행한다. 그것은 생물학적 결합이 아니고 사회적 결합이며 그에 따라 줄줄이 다른 사회적 연관관계를 양산한다. 한국에서도 자녀의 성, 혼인빙자간음죄, 소득세 공제, 주민등록표 등 수많은 사건이 문서로 증명되어야 할 결혼의 모습을 요구한다. 이것들은 오히려 일반적인 모습들이고 여기 다양한 경우의 수에 따라 허다하게 많은 사회적 상황이 발생한다. 이 책은 그런 내용들을 서술하고 있다.
원전은 <HIstorie de la vie privée>라는 제목으로 1985년부터 2년에 걸쳐 프랑스에서 완간되었다. 그런 만큼 이야기는 유럽, 특히 근대에 올수록 프랑스의 이야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책의 내용이 남의 이야기가 아님은 이미 우리에게도 같고 다른 사생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보자. 애완견, 거울, 수세식화장실, 바캉스, 미니스커트, 낙태, 체중계 등. 이런 키워드들 중 현대 한국사회와 연관이 없는 것이 있는가.
책의 후반부에는 미국, 이태리, 독일, 스페인의 경우가 설명되어 있다. 이 다른 사회에서 갖는 가족의 다양한 의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의 생활이 과연 고정적인 것인지를 새삼스럽게 묻게 만든다. 개인의 납세현황이 전화번호부처럼 연감으로 발간되는 스웨덴의 절대투명성은 곧 결혼은 남녀가 만나서 해야 하는 것이냐는 질문으로 모습을 바꾼다.
이 책이 건축인들에게 의미있는 이유는 가족이 집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집이 가족의 모습을 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적지 않은 건물로서의 집이 사료로, 방증자료로 등장한다. 집은 결국 사생활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사생활의 역사>는 주거사의 사회학적 원전이다.
이 책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알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21세기 초반의 한국은 그 구성원들의 사생활을 담을 공간으로 아파트를 선택했다. 완벽하게 시장에 편재되어 있는 아파트는 아주 서서히 움직이는 주거형식이다. 문제는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고 그 변화가 시장, 추세, 경향, 유행으로 해설된다는 것이다. 대개의 건축인들은 여기 주변인이거나 기껏해야 소극적 참여자일 뿐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아파트에 대한 질문을 요구하고 있다. 좀 더 정확이 말하면 주거에 대한 질문이다. 거기 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아파트는 방의 집합이다. 그 방들은 벽으로 구획되어 있다. 가족 내 개인이 사용하는 그 방이 완벽히 독립되어 구획된 근거는 프라이버시다. 그러나 이 책은 프라이버시라는 것이 갖는 허무맹랑함을 말끔하게 드러내준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믿고 있던 우리 자신의 모습에 대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신랄한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그럴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