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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 중앙일보 / 중앙시평 / 20210. 04. 08도를 묻는 제자들에게 그는 말없이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보였다. 아무리 석가모니지만 요즘 이런 방식의 수업이면 곤란하다. 학기말 강의평가가 좋지 않을 것이다. 학생공감 능력이 부족하더라, 문장구성 능력이 없는 것 같더라, 묵묵부답을 염화시중으로 포장하고 있더라. 비루한 건축 전공 선생에게 이번 제자는 도가 아니고 도시를 물었다. 어떤 도시가 아름답습니까. 속세의 선생은 연꽃무늬 막걸리잔을 들어 답했다. 공정한 사회가 만드는 도시가 가장 아름다우니라. 그런데 혹시 이건 동문서답은 아닌지. 대중 건축강의에서도 역시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어떤 도시가 아름다운 도시인가요. 그 배경에는 우리 도시가 아름답지 않다는 경험적 전제가 깔려있다. 그리고 선망 대상에는 외국의 어떤 도시들이 있겠다. 그 도시들의 공통점을 모으면 선진국 도시들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쩌다 선진국이 되었을까. 지금부터 건축의 영역을 넘으나 답을 추리자면 이들이 공정한 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비슷한 환경에서 시작된 사회를 비교해보자. 아메리카 대륙 남북에 유럽 각지에서 침략자, 이주자들이 각각 정착해나갔다. 북아메리카에 도착한 이들은 대개 신교도하고도 지독한 골수 칼뱅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종교자유 갈구와 절대가난 도피가 이주의 추동력이었다. 선행하면 천국 가느냐는 질문도 이들은 신과의 무엄한 거래시도로 간주했다. 구원에 관한 신의 뜻을 한낱 너희가 알 길이 없으니 남은 것은 극단적으로 성실·청빈하라는 강령이다. 모두의 성실·청빈한 이승 생활을 위해 이들은 권력 균분의 제도를 고안해냈다. 민주주의 신념으로 무장한 국가를 세운 것이다. 남아메리카에 도착한 이들의 목적은 물질적 기회 획득이었다. 돈만 있으면 면죄부를 사서 천국도 얻을 수 있는 구교 국가 출신이었고 신 외에 신분도 불가침의 영역이라고 믿었다. 이들이 새 대륙에서 만든 사회는 인종·종교·신분의 기득권이 충실하게 엮인 유기적 조직체에서 출발했고 공식 이면에 비공식이 깔려있었다. 그게 결국 지금 빈부격차 극심한 중남미의 도시 풍경을 만들었다. 아름다워서가 아니고 신기해서 가본다는 곳. 제자들이 다시 묻는다. 아름다운 도시를 위해 무얼 어찌하오리까. 건축 선생이 다시 답하니 시장을 잘 뽑아야 한다. 석가모니와 비슷한 시대 그리스의 선생은 가장 지혜로운 자(philosophos)가 통치하는 사회를 꿈꿨다. 선거는 입후보자 중 누가 가장 지혜로운지 판단하는 다수의 결정이다. 그러나 선거는 왜곡의 위험이 있으니 다수 이익의 대변자 선택과정으로 몰락하는 것이다. 위대한 현자가 중우정치라고 걱정한 그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선거는 이를 훨씬 지나쳐 입후보자 중 누가 진정 부패·부정·부도덕의 화신인지 결판내자는 결투장이 되어버렸다. 선거의 승자는 지혜의 실현자가 아니고 승전 권력의 행사자가 되었으며 다수의 뜻이라고 소수의견을 묵살하곤 했다. 그래서 공평해졌다고. 다수결 원칙으로만 운영되는 사회의 도시에는 숫자만 남는다. 지금 한국의 사회 화두는 주거이되 그 관심사는 오로지 숫자다. 도시 사안은 참으로 복잡하여 규정방법이 다양무쌍하되 규정방법에 따라 누구든지 소수에 속할 수 있다. 누구든 환호와 절규의 주체가 된다. 대안은 사업단위를 작게 만드는 것이다. 사업이 클수록 소수의 절규가 커진다. 한국의 각종 사회지표는 북아메리카에서 수입한 민주주의를 운전하여 남아메리카의 사회구조에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다고 알려주고 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민주주의 발명국에서도 패거리 정치가 횡행하며 정치인 신뢰도는 자동차딜러 바로 위에 있다는 것 정도겠다. 참고로 미국에서 자동차딜러의 신뢰도가 각종 직업군 중 꼴찌다. 좌절이라면 한국에서는 그 순서마저 뒤집혀 있겠다는 것이고. 대한민국은 스스로 공정하다고 확신한 적도, 도시가 아름답다고 자신한 적도 없다. 그래서 피해의식의 지자체장들이 기이한 거대건축사업을 벌이고는 했다. 그러나 도시의 가치를 사진 속에서 찾으면 곤란하다. 도시는 인공의 유기체다. 도시는 일상의 현실이되 모두에게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그래서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휠체어, 유모차가 차별 없이 돌아다닐 수 있으면 그 도시는 아름답다. 속세의 비루한 건축 선생이 단언하건대 나는 사회적 소수가 차별받거나 무시되면서도 아름다운 도시를 본 적이 없다.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선전하는 평양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은 거기서 장애인 배려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 선거가 끝났다. 지자체장 선거인데 엉뚱하게 정권수호·정권심판이라는 구호의 청룡언월도가 난무했다. 당선의 근거가 덜 부패해서인지, 더 지혜로워서인지 지금 알 길은 없다. 지혜로운 분 석가모니는 기꺼이 전륜성왕의 길을 버린 분이었다. 그는 옥좌가 아니고 돌바닥에 앉은 분이셨고 심판이 아니라 자비의 선생이었다. 우리가 그 지혜에 이를 길은 없겠으나 그를 흠모할 수는 있겠다. 이 아침에 보도되는 당선자가 임기 말에 지혜로운 시장으로 기억되기 바랄 뿐이다. https://news.joins.com/article/24030337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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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 중앙일보 / 중앙시평 / 2021. 03. 12교과서에 오자가 있다니. 그걸 내가 발견했다. 국사교과서를 펼쳐든 중학생의 사연이었다. 그가 발견한 것은 ‘줄문’이거나 ‘줄무늬’로 표기되어야 했을 단어인 ‘즐문’이었다. ‘빗살무늬’로 풀어 표기되는 그것. 물론 그 위대한 발견은 곧 자존심 붕괴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중학생에게 곧 국사는 기이한 단어들만 울창한 단순저급암기과목으로 임의분류되었다. 그러나 그가 훗날 고등창조작업라며 직업으로 선택한 건축인들 국사의 테두리 밖에 있는 건 아니었다. 이 땅에 지어진 선사시대의 집 모습은 집이 아니고 토기로 남아있다. 집모양토기를 알현하려면 국립중앙박물관 선사고대관에 가야 한다. 지금 전시장 한복판을 도도히 점거하고 있는 것이 다시 그것이다. 빗살무늬토기. 선사건축의 탐험자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은 이번에는 표기법이 아니고 형태다. 기이하게 생긴 저것은 과연 무엇이냐. 발레리나도 아닌 그릇 주제에 바닥은 뾰족하여 혼자 서 있을 수도 없다. 길죽 날씬한 비례는 보기 우아해도 뭔가를 담고 꺼내기 불편했겠다. 바깥면에는 바로 그 ‘줄무늬’가 줄 맞춰 새겨져 있다. 게다가 심술 난 중학생이 연필로 분풀이한 듯 아랫단에 구멍도 숭숭 뚫려있다. 곡식을 담으면 술술 새기 십상이니 그릇으로는 치명적 결함이다. 그렇다면 너는 도대체 누구냐. 물건이지만 나이가 수천 살이므로 정중히 여쭈자면, 댁은 누구십니까. 선사시대 유물의 정체규명 방법은 문자탐구가 아니고 논리적 추측이다. 그래서 훗날 건축학과 교수가 된 수모의 주인공은 고등하고 창조적인 건축 논리를 이 토기에 들이대기로 했다. 출토지가 모조리 강가라는 공통점에서 출발한다. 강은 백화점이나 마트 식품코너가 아니다. 물고기가 아무 때나 잡혀주지 않는다. 운수 좋은 날은 그날 다 먹기 어려운 양의 물고기가 잡힐 수도 있다. 잉여 발생의 순간이다. 물고기를 보관하는 최선의 방법은 산 채로 남겨두는 것이다. 그건 물고기를 강물에 담가 두는 걸 말한다. 이 토기들은 모두 낮은 강물 속에 세워져 있었을 것이다. 강바닥은 대개 퇴적연질지반이니 꽂아서 세우려면 바닥이 뾰족해야 한다. 그러면 수심 따라 높이 조절도 가능하다. 수압에 쓰러지지 않으려면 날씬해지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고기를 살려놓으려면 강물이 유통되어야 하는데 아래쪽에 통수구멍이 필요하다. 토기는 수면 위로 상단이 살짝 노출될만한 높이가 되어야 한다. 물에 몸통이 거의 잠긴 토기들을 구분하려면 수면 위의 노출부에 서로 다른 문양들을 새겨넣어야 한다. 토기가 어떤 방향으로 꽂힐지 모르므로 테두리 전체에 새겨야 한다. 그래서 빗살무늬토기의 무늬는 수면 높이 따라 모두 수평방향이다. 그 무늬는 사적 소유의 증거일 것이다. 추측이 맞는다면 빗살무늬토기는 국사 외에 미술 교과서에도 실릴 기능주의 미학의 모범 디자인 사례다. 그런데 빗살무늬토기는 멸종했고 밋밋한 토기가 등장했다. 돌의 소진으로 석기시대가 끝난 게 아닌 것처럼 물고기 멸종으로 빗살무늬토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인간은 강으로부터 먼 곳에도 살기 시작했다. 농경이 시작되고 토기가 곡물을 담았다. 토기 모양과 출토지가 달라졌다. 놓일 바닥이 달라지자 토기 밑면이 평평해졌다. 물을 담으면서 마구리 모양도 바뀌었고 옆면의 손잡이는 토기의 운송을 설명한다. 거주지가 수원지로부터 멀어진다는 이야기다. 장기보관을 위해 토기 뚜껑도 덮였다. 가야토기 하단의 구멍은 아랫면에 지피던 숯불의 흔적을 유추하게 한다. 합리적 저장과 유연한 유통 요구가 토기의 변화를 요구했다. 그래서 기술적 진보가 필요했는데 그건 토기, 도기, 자기의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잉여를 담는 데서 발생한 토기가 건축으로 번역되면 창고가 된다. 창고에 빗장이 채워지고 거기 토기가 보관되면서 소유자 구분의 무늬가 불필요해졌다. 창고의 잉여를 교환하면서 인간의 거처는 서식지에서 도시로 발전했다. 죽은 자들의 알 수 없는 장도를 위해 챙겨줘야 할 것은 충분한 곡식이었다. 그래서 박물관에서 만나는 조그만 집모양토기들은 다 곡식창고 모양 부장품이었을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바꾸는 도시 미래에 관한 질문이 건축계의 유행병인 것 같기도 하다. 바이러스가 도시의 변화방향을 특별히 달리 규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강요된 실험은 더 높은 도시 변화 속도를 요구할 것이다. 미래가 재촉될 뿐이라는 것이다. 잡은 물고기 때문에 강가에 묶여 있던 인간은 물고기를 수조차에 넣어 도시로 운반하는데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 인간은 물고기를 입에 넣으러 횟집에 가는 단계다. 지금은 물고기가 인간의 입으로 좀더 가까이 오기를 요구하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더 자유로운 저장과 유통의 가능성은 여전히 미래 기술의 가치판단기준이 될 것이다. 예컨데 20세기의 도시를 바꾼 것이 자동차인데 그 자동차의 미래연료가 수소일지 전기일지 빗살무늬토기에게 정중히 묻는다면 조용히 답을 내줄 것 같다. 미래는 과거와 맞닿아 있으니 그 접점을 역사라 부르더라. 그것은 저급암기대상이 아니고 창조의 출발점이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4010198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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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점 / 중앙일보 / 중앙시평 / 2021. 01. 15“마로니에 잎이 나부끼는/네거리에 버린 담배는/내 맘 같이 그대 맘 같이 꺼지지 않더라.” 담배꽁초 무단투기는 과태료 5만 원이라고 지적하면 곤란하다. 1950년의 그는 실연의 우수를 털어내기 위해 도시를 방황 중이다. 이 노래 <서울야곡>의 시작은 이렇다.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때/쇼윈도 그라스에 눈물이 흘렀다.” 가사 속의 그는 한숨 어린 편지를 찢어버리고 보신각 골목길을 돌아 나온 참이었다. 지척이던 걸음으로 좀더 가면 안국동 네거리다. 그리고 율곡로에 접어들 것이다. 나부끼던 마로니에 잎은 낙엽 되어 떨어지겠다. 그런 계절이 몇 번, 혹은 수십 번 지나가겠다. 그렇게 어떤 공원에 이르러 그는 잠시 어리둥절할 것이다. 그가 충무로를 떠났을 때 이곳은 대학캠퍼스였다. 그 대학이 관악산으로 옮기고 남은 터는 주택가로 변했다. 그 일부를 비워 만든 것이 마로니에 공원. 그 구석에 새로 지은 벽돌 건물 두 채의 이름은 <문예회관>. 공원 주변에 맥주집 한두 곳 박혀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곳의 청춘 해방구 돌변 기폭제는 대학로라는 명명에 따른 주말 자동차 통행금지였다. 대학로는 지금 전국 최고의 소극장 밀집 지역이다. 그 공연이라는 방향 설정은 대학로 명명이 아니고 <문예회관>의 존재 덕분이다. 지금 이름은 <아르코예술극장>이다. 이렇게 주변 도시를 바꾸는 핵심건물을 거점시설이라고 부른다. 건물이 잉태하고 잉태하여 도시를 바꾼다. 문화시설이 주변을 문화도시로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문 닫힌 신전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면 문화적 허영심 발산·해소처거나. 문화거점시설 성공의 우선 조건은 입지설정이다. 사람들이 어슬렁거릴 주변 환경이 있는 곳에 자리 잡아야 한다. 성공사례 뒷면에 실패사례가 있다. 초대형문화시설인 <예술의전당> 전면은 왕복 10차선의 남부순환도로고 후면은 우면산이다. 이곳은 변화시킬 주변이 없다. <예술의전당>은 그 내재적 문화폭발력에도 불구하고 밀봉된 문화철옹성, 도시의 폐쇄회로가 되었다. <예술의전당>이 길 건너에 배치되었다면 지금 서초동은 전체가 예술도시로 변모해 있을 것이다. 아직 개탄이 이르다. 우리에게는 전 세계가 경이롭게 보아 마땅한 희귀사례가 있으니 <국립현대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의 전면은 과천저수시, 후면은 청계산이다. 템플스테이해야 할 법한 오지에 미술관이 자리 잡았다. 그런데 미술관에서 굽어보면 오른쪽은 놀이공원, 왼쪽은 동물원이다. 앞뒤로 엄숙하고 좌우로 명랑한 희극적 배치다. 이런 곳에 미술관을 점지한 것은 문화는 고고·우아·고상해야 한다는 신념의 소산일 것이다. 그래서 문화시설은 근엄·장엄·엄숙해야 하는 신전에 가까운지라 도시에서 멀어졌다. 그 덕에 여름철 애인 동반의 보행방문객들 등에 땀방울이 흘렀다. 그들의 실연 후 쇼윈도 그라스에 눈물이 흐르듯. 실연의 방랑자가 더 걷는 동안 세상이 좀 바뀌었다. 문화시설이 접근성 좋은 도심에 있어야 한다고 깨달았다. 결국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생겼다. 최고의 입지다. 그런데 문화시설이 곧 거점시설이 되지는 않는다. 문화시설의 도시 내 역할은 집객이다. 연주, 관람 전후에 방문객이 먹고 마시고 쉬고 구경해야 하는데 이건 주변의 도시에서 해결할 일이다. 그러면 상권이 살아나고 고고·우아·고상하게 도시가 바뀌기 시작한다. 이때 문화시설은 거점시설이 된다. 거점시설로서 문화시설이 갖춰야 할 요소는, 아니 배제해야 할 요소는 자체 내 소매점이다. 한국에서 정부 투자의 문화시설 건립 이후 요구하는 것이 독자생존이다. 이건 전 세계적으로 성공가능성이 희박한 조건이다. 입장수입 빈궁한 문화시설이 독자생존 압박하에서 선택하는 것은 내부 소매시설 확보다. 그 순간 문화시설은 주변도시와 상권 경쟁관계의 요식업 임대시설이 된다. 고립시설로서 교통체증 유발의 민폐만 주변에 끼친다. 문화시설에서 독자생존 요구보다 중요한 가치는 도시의 변화 가능성이다. 문화시설 지원금 투자보다 훨씬 더 큰 도시활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범국민적 가택연금으로 이번 신년·송년음악회 거의 다 취소되었다. 그러나 마로니에잎이 피고 지고 나면 실연(失戀)의 아픔은 잊히고 실연(實演)의 음악당은 다시 활짝 열릴 것이다. 원래 송년음악회에서는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이 필수, 신년음악회에서는 요한슈트라우스의 왈츠가 양념이다. 신년음악회에서 <라데츠키행진곡>에 맞춰 발 구르고 박수 친다고 도시가 바뀌지는 않는다. 매상증가 기대로 주변 상가들도 음악회가 기다려지는 게 중요하다. <합창교향곡>의 감동에 겨운 청중들이 늦은 밤이라도 귀가하지 않고 근처 맥주집으로 향할 수 있어야 하겠다. 맥주집 주인이 그들을 <합창교향곡> 가사처럼 “오 친구여(O Freunde)!”라고 반겨주면 그게 문화도시겠다. 뒤늦게 합석한 바이올린 주자가 맥주집 주인 애창곡 <서울야곡>을 탱고 선율로 들려줄 수도 있겠다. 그때 내 맘같이 그대 맘같이 불 꺼지지 않는 멋진 도시에서 모두 발 구르며 외칠 것이다. 앵콜! https://news.joins.com/article/23970938?cloc=joongang-home-opinioncolumn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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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 조선일보 / 당신의 리스트 / 2020. 01. 05긴 터널을 벗어나자 눈나라, 아차, 아니고 한강이다. 열차의 밑바닥이 물로 가득해지는 순간이다. 7호선 청담역을 떠난 열차는 뚝섬유원지역을 향해 질주하는 중이다. 완만하고 지루한 오르막길 터널을 지나던 열차가 갑자기 빛 속으로 솟아오른다. 뻥 터지듯, 툭 내쳐지듯, 확 달려들 듯. 그때 펼쳐지는 것이 한강이다. 아니 허공이다, 아니 초현실의 공간이동이다. 암굴벽해(暗窟碧海). 전 세계의 지하철 노선 중 이런 극적 공간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한강이 아무 데나 있더냐. 열차의 오른쪽 창에 서 있어야 한다. 그래야 건너편 철로를 거치지 않고 더 생생한 한강을 대면할 수 있다. 한강 너머 펼쳐지는 도시 풍경 또한 초현실적이다. 옹기종기 아파트 군락 위로 123층 건물이 생경하게 우뚝하다. 당장 열차에서 뛰어내려 절대반지를 구하러 달려가야 할 듯하다. 지하철 가득 비루한 호빗족들의 일상을 변태 껍데기로 남겨두고. 1250원 찍히는 교통카드로 체험할 수 있는 초현실적 공간변화. 그게 서울의 지하철이다. 지하철은 도시 전경사진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진정한 도시의 광장이고 얼굴이다. 그리고 도시 일상의 테마파크다. 세상 구경 중에서 참구경이 사람 구경이라고 했다. 과연 지하철에는 생로병사, 길흉화복의 인생만사를 얼굴에 붙인 군상들이 빼곡하다. 나도 나의 하루 운세를 얼굴에 붙이고 그 무리에 밀려 들어간다. 테마파크의 필수 구비 요소는 궤도가 꼬이는 열차다. 옛날에는 청룡열차라고 통칭했다. 이게 없으면 테마파크라 부르기도 어렵다. 놀랍게 우리의 지하철에도 테마파크답게 마땅히 구비되어 있다. 도시의 기능적 구조물이 이런 장치를 장착했다면 그 연유가 기구할 것이다. 이곳은 단절된 현대사의 매듭이 공간으로 체현되어 묶인 곳이다. 뭐가 그리 기구하기에. 남쪽으로 사당역까지만 연결되었을 때 4호선은 평범한 지하철이었다. 그런데 더 남쪽으로 연장하면서 좀 당황스러운 상황에 직면했다. 연결해야 할 노선은 코레일 구간이었는데 그 코레일은 이전 철도청이었고 이를 더 더듬어 오르면 일제 강점기를 만난다. 그래서 그들은 좌측통행. 그런데 독립국가 대한민국의 지하철 4호선은 우측통행.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결국 대한민국 여기저기 뿌리 내린 일제강점기의 질곡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통행방향이 다른 두 노선 연결로 가장 손쉬운 방법은 환승이었겠다. 역에서 내려서 갈아타면 된다. 그런데 우리의 위대한 엔지니어들은 상상하기 좀 어려운 방식으로 이를 돌파해버렸다. 어찌 보면 무모하다 할 방안이었다. 남태령과 선바위역 사이의 동굴 속에서 선로의 좌우를 뒤집었다. 전류공급방식 변경으로 객실 안 일부 전등이 소등되겠다며 안내방송은 담담하다. 하지만 조금 전 왼쪽을 달리던 반대 방향 노선이 문득 오른쪽으로 옮겨와 있는 것은 초현실 체험이다. 전 세계의 희귀 사례일 것이다. 이런 역사를 장착한 도시가 희귀하므로. 분식점 표현으로는 꽈배기, 기하학 표현으로 뫼비우스의 띠가 현실의 공간으로 구현된 것이다. 이건 철마교호(鐵馬交互). 그러나 지하철 탑승은 모험이나 여행 아닌 운송에 가깝다. 우리는 승차하고 하차하면 될 뿐이다. 말하자면 발 달린 짐짝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승객에게 각각 구비된 눈과 귀는 별 존재 의미가 없다. 열차의 창문 역시 그냥 진화에 뒤처진 흔적기관에 지나지 않을 듯하다. 그런데 가끔 우리의 승차가 기꺼이 여행이 되는 구간이 있다. 승객의 눈이 열리고 짐짝에서 생물체로 순간 변화하는 구간이다. 그 생물체의 서식지는 도시다. 열차가 지상으로 달리는 곳이니 2호선에서는 두 곳이 있다. 북동쪽의 성수구간과 남서쪽의 대림구간이다. 성수구간은 자연지반 위, 대림구간은 도림천 위의 구간이다. 이 차이가 크다. 성수구간은 천문학적 예산이 문제지 마땅히 지하화되어야 할 구간이다. 서울이 이리 바뀔 줄 당시의 누가 내다봤으랴. 그런 애물이니 구간 내내 방음벽이 서 있다. 그러나 대림구간은 방음벽이 없이 도시가 훤히 다 내다보인다. 천변 완충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치로 치면 당연히 대림구간이다. 여행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 구간의 참된 가치는 고가 위를 달린다는 점에 있다. 열차가 허공을 주유한다. 이 높이에서 이 속도로 도시구간을 질주하는 경험은 이전 세상의 어느 권력자도 누려보지 못한 호사다. 그래서 이때 시선을 막는 방음벽의 존재여부가 중요하다. 여기서 내가 좋아하는 창방향은 북쪽이다. 남쪽은 멀리 관악산 전망이 좋지만 햇빛을 마주 봐야 해서 경치가 뿌옇다. 물론 이 구간 풍광이 양쪽 다 두서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게 우리 사회의 모습이고 그런 점에서 항상 더 흥미롭다, 새로운 공사현장과 새로운 건물과 새로운 간판으로 심심할 틈이 없고 그래서 두서없는 도시. 그 도시유람을 제공하는 고상주유(高床周遊). 지하철 여행자에게 좀더 박진감 있는 풍경을 제공하는 지점은 1호선 한강철교 구간이다. 이 구간은 여의도와 노들섬이라는 두 섬 사이를 지난다. 여의도는 한국에서 가장 비싼 건물들이 빼곡한 인공구조물의 도시다. 이곳은 고층건물 즐비한 도시의 매력을 철교 구조물 너머 가장 박력 있게 보여주는 곳이다. 최근 정비된 노들섬은 한가한 전원 풍경이니 이 또한 초현실적이다. 이 다리는 한강대교와 원효대교의 사이에 놓여있다. 내 평가로 한강에서 가장 잘생긴 두 다리니 어느 쪽을 보아도 좋다. 간혹 옆 철로로 늘씬한 고속전철이 지나가는 모습 또한 절경이다. 나는 저 고속기계가 기계괴음을 내며 철교라는 허공 위를 질주하는 모습을 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모두 강철이 만들어낸 도시 풍광이다. 이곳이 특히 더 멋진 시간대가 있으니 여의도 건물군 너머 해가 지는 석양의 순간이다. 최고의 공간과 시간과 속도가 다 맞물리는 지점. 우리 시대에 서울팔경을 뽑는다면 이 경치가 빠질 수 없겠다. 지금 겸재가 살았다면 그는 분명 노들섬에 앉아 한강철교와 여의도의 강철낙조(鋼鐵落照)를 그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하철은 어둠을 달리는 숙명을 지닌 물체다. 그래서 이름이 지하철이다. 그런데 그 어둠 속의 질주를 만끽할 수 있는 노선이 있으니 그건 빨간색 신분당선이다. 이 노선이 특별한 것은 기관사의 부재다. 열차 전면이 개방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최고의 자리다. 그래서 신분당선을 타면 굳이 열차의 맨 앞자리로 갈 일이다. 거기에는 당연히 좌석 없다. 그러나 이런 질주에 그런 편의 필요 없다. 터널 속의 열차는 소실점을 향해 내달린다. 초현실적 비례의 초현실적 공간을 초현실적 기계음과 함께 질주, 계속 질주. 벽면의 등간격 조명이 알려주는 노선은 좌우로 휘어 돌며 위아래로 오르내린다. 이건 컴퓨터 모니터의 비디오게임으로는 체험할 수 없는 몰입형 공간감이다. 시속 90 킬로미터의 실제상황이며 실물공간이다. 여전히 질주. 질주무정(疾走無情)의 열차가 속도를 줄여나간다. 터널 너머 빛이 보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달리기만 하는 열차가 어디 있더냐. 캄캄하기만 한 인생은 또 어디 있으랴. 그래도 방심하면 곤란하다. 장미꽃만 만발한 인생은 없다더라. 열차는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선다. 그러나 잊지 말지니 아무리 긴 암굴이어도, 얼마나 긴 어둠을 달려도 결국 우리가 내릴 곳은 저 밝은 빛 어디쯤이다. https://www.chosun.com/culture-life/2021/01/05/NRM32EDJ6ZGAXCZBBNXCCZJBPU/?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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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 중앙일보 / 중앙시평 / 2020. 12. 18“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 구성지고 낭랑한 노래다. 서울 가는 열차창 너머에서 경상도 아가씨가 슬피 우는 중이란다. 그런데 이 노래의 탄생배경은 뭘까. 모범답안은 한국전쟁과 피난살이겠다. 그러나 입장이 다른 답도 있을 것이다. 서태지 이후 세대라면 노래 자체를 모를 수도 있다. 맥락 없는 토목엔지니어라면 무미건조하게 대답할 것이다. 경부선 준공. 조선 시대의 지도에서 부산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19세기가 다 끝날 때까지 부산은 동래성 옆의 작은 글자에 지나지 않았다. 이 바닷가 한촌이 대한민국 두 번째 규모의 도시가 되는 기폭제는 철도부설이었다. 그 철도가 지금 나그네를 싣고 떠나는 경부선이었고. 철도 시대 이전에 서양인들이 도착하는 곳은 부산이 아니고 제물포였다. 그들은 우마차에 실려 이어지는 구절양장 진창길에 넌더리를 냈다. 그리고 만난 종착점 도시의 조용한 기괴함에 놀라워했다. 그게 한양이었다. 새 아침이 밝았으니 새벽종을 울리고 새마을을 만들자고 하기 전까지 이 나라는 아침에도 고요했다. 그래서 조용한 아침의 나라. 도성의 고요를 처음 흔들어 깨운 건 남대문 밖 기차역의 기적소리였다. 첫 철도를 놓기로 했을 때 그 노선이 경인선이 되는 건 자연스러웠다. 도대체 어떤 능란한 교섭능력의 소유자였는지 알 수 없으나 미국인 모스가 경인철도 부설권을 따낸 것이 1896년이다. 그런데 이보다 앞선 1892년부터 인천이 아닌 부산을 한양과 연결하는 철도 계획이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그 철도의 존재가 절박했던 것은 당연히 일본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다시 대륙 진출과 교두보 확보를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요동치던 대한제국의 역사 따라 철도부설의 주체들도 엎치락뒤치락했다. 신의주를 한양과 연결하는 철도를 처음 구상한 것은 대한제국이었다. 철도는 대한제국에게도 대륙으로 향하는 신작로였겠다. 그러나 1905년 <한일의정서>가 체결되자 일본군부는 대한제국으로부터 즉시 경의철도 부설권을 확보했다. 그들의 야망은 한반도 너머에 있었다. 그래서 결론은 하나로 수렴한다. 경인·경부·경의선 모두 일본에 의해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공통점은 교행 시 좌측통행. “떠나가는 새벽 열차, 대전발 영 시 오십 분.” 부산만큼 존재도 희미했던 대전이 핵심도시로 등장하게 된 것도 철도 덕이다. 정확히 말하면 역의 설치다. 그런데 부산역과 대전역은 다 역이지만 건축적으로 보면 영어 단어가 다르다. 부산역은 터미널(terminal)이고 대전역은 스테이션(station)이다. 굳이 구분한다면 종착역과 정거장이다. 정거장은 종착역에 이르기 위해 잠시 서는 곳이다. 그래서 서울·대전·평양역이 다 정거장이다. 대륙으로 가기 위해 잠시 서는 곳. 서울역이 정체성 혼란에 빠진 것은 남북분단 때문이다. 신의주 가는 철도가 막히면서 서울역은 정거장이 아니고 종착역이 되었다. 경의선의 종착역은 문산역으로 바뀌었으니 경문선이라 불렸어야 마땅했다. 그 사이 고속철도가 개통하면서 서울역은 아예 대놓고 종착역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서울을 호령하던 건물로서의 서울역은 엉뚱하게 전시관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서울역은 민자역사라는 제도 덕에 수모스럽게 백화점 부속시설로 몰락했다. 대한민국 수도 중앙역의 체면이 도대체 말이 아니다. 지금 서울역은 종착역과 정거장의 단점을 골고루 골라 담고 있다. 철도의 문제는 도시를 극단적으로 양분한다는 것이다. 철도역사의 전면은 문명의 중심지로 급부상하되 후면은 도시의 그늘로 남는다. 그건 서울·대전·평양역이 모두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서울역 고가도로가 <서울로 7017>로 바뀌었을 때 서울역 후면에서 벌어진 도시변화는 그 단절의 폭을 역설적으로 증언한다. 철도가 국토를 바꿨다. 그런데 지난 세기 국토변화의 관점에서 철도부설보다 큰 사건은 분단이었다. 결국 서울역의 미래 모습은 우리가 분단 국토의 미래를 어떻게 보느냐는데 달려있다. 그것은 경문선이 아닌 경의선의 가치와 가능성을 묻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대한민국의 국토 그림이 통일 이후를 염두에 둔다면 경부선은 대륙과 대양을 잇는 동맥이겠다. 그 고리가 부산역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부선과 경의선이 바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 고리는 서울역이다. 백 년 전에 깔린 경의선은 당시의 기술 한계에 의해 지형을 따라 구절양장 휘어있다. 우리가 연결해야 할 것은 거의 열 배의 속도로 내달리는 철도다. 경의선의 기존 구간을 버리고 지하로 연결한다면 경부선과 경의선은 이어질 수 있다. 서울역도 지하화한다면 종착역과 정거장의 장점을 골라담은 역이 되겠다. 서울역 주변이 다 바뀔 것이다. 부산역도 육지 끝의 종착역이 아니고 바다를 향한 길의 출발역이 될 수 있다. 대륙과 대양을 잇는 다른 의미의 정거장이 되겠다. 그건 국토 내 어떤 도시도 갖지 못한 가능성이다. 구성지고 낭랑한 노래는 부산역이 종착역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기적도 목이 메어 소리 높여 우는구나, 이별의 부산정거장.” https://news.joins.com/article/23948648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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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 중앙일보 / 중앙시평 / 2020. 11. 20덮어놓고 낳다가는 거지꼴을 못 면한다. 1963년에 등장했다는 계몽표어다. 화끈하다. 지금의 최저출산율국가 타이틀은 저런 과격한 산아제한의 위대한 성취가 아닐지. 도대체 얼마나 애를 낳았기에 저리 절박한 모습으로 등장했을까. 2백만 명이던 서울인구는 1963년이 되자 갑자기 3백만 명으로 바뀐다. 서울시민들이 합심·작심하여 같은 날 덮어놓고 애들을 백만 명 낳은 건 아니겠다. 서울시 행정구역이 확장되었다. 경기도 광주 일부도 지금의 말 많은 서울 강남이 되는 순간이었다. 서울 인구는 1988년에는 1천만 명에 이른다. 25년 동안 7백만 명이 증가했다. 이번에는 행정구역 변화도 아니다. 굳이 따지면 은평구 북쪽 일부가 살짝 더해졌을 따름이다. 계몽의 저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민들은 덮어놓고 저리 아이들을 낳았을까. 서울시의 모든 결혼 세대가 아이 일곱을 골고루 낳았으면 저 숫자가 성취된다. 그렇다면 지금 서울의 소위 586세대들은 거의 십 인 가족의 자녀여야 한다. 서울은 거지천국이 되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건 대한민국의 압축성장기로 불리는 시대다. 거지꼴이 된 게 아니고 오히려 졸부에 가까운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서울의 인구증가가 생물체로서의 자연증가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이것은 사회적 증가였다. 그걸 우리는 ‘무작정상경’이라는 단어로 불렀다, 그들이 7백만 명 증가의 대다수를 구성했다는 이야기다. 이 막대한 상경인구가 서울에서 재집결하여 만든 결사체가 재경향우회다. 다른 국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신기한 조직체다. 이들은 떠나온 고향과 도착한 서울에 각각 독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암약하는 정치집단이 되었다. 선거철이면 출마자의 정치적 배경과 공약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고 자신이 속한 향우회와의 친소관계로 투표성향이 결정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끝에 물어야 했던 문장이, 우리가 남이가? 막강했던 향우회의 결집력과 영향력 쇠퇴가 하루가 다르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 이미 향우회 총회 개최가 무산되는 사례도 등장했다. 그 자리를 재경동문회가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1천만 명 이후 서울 인구집중의 양상변화를 보여준다. 즉 무작정상경이 아니고 대입상경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그 동력을 보여주는 단어가 대학 입시철이면 등장하는 ‘인서울’이다. 스카이 서성한 중경외시... 인터넷 검색으로 줄줄이 엮여나오는 이 암호는 공고하게 자리잡은 대학의 서열이다. 이야기의 요점은 여기 지방대학이 모조리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인서울’이 낳은 것은 결국 지방인구 감소다. 상경하여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이들은 절대 지방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들은 서울에서 취업하고 결혼하여 어렵게 생존해나간다. 그리고 거지꼴이 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출산을 포기한다. 인구가 감소하니 지방대학은 더 어려워진다. 국가균형발전의 당위성은 충분하고 정부의 의지도 여전히 강력하다. 그래서 온갖 물리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서울인구를 지방으로 뿌리겠다고 한다. 그런데 직장 따라 뿌려져야 할 그 인구가 가족해체의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뿌려지지 않는다. 가장을 제외한 가족이 서울에 남는 이유도 결국 대학이다. 그 자녀가 대입에서 ‘인서울’하려면 결국 서울에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다. 이 순환구도가 극복되지 않으면 국토균형발전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핵심은 대학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국가균형발전’을 입력하면 죄 토건사업이 나온다. 내년 사회간접자본 예산책정의 배경에 깔린 단어도 국가균형발전이다. 예비타당성 검토도 건너뛰고 덮어놓고 토건사업에 예산을 몰아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치료의 전제는 진단이다. 수도권 인구집중은 증상이되 원인은 교육과 취업이다. 교육이 앞에 있다. 치료법은 지역안배 토건사업이 아니라 지방거점 국립대학 경쟁력강화와 육성이다. 보고서 받고 검증·선정한 후 무늬만 갖춘 사립대학들 눈치도 보면서 공평하게 몇 푼 주겠다고 하지 말고 지방거점 국립대학을 덮어놓고 지원할 일이다. 지방거점 국립대학은 명확한 공공재다. 이들이 균형발전의 거점이고 촉매가 되어야 한다. 대학은 학생·교수·시설의 복합체다. 장학금·연봉·시설비 모두 예산을 요구한다. 여전히 효과여부로 논쟁이 분분한 사대강사업의 예산이면 전국 지방거점 국립대학 대학생 전원에게 25년간 전액장학금을 줄 수 있었다. 젊은 교수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인서울’해야 한다며 연봉만으로는 지방행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은 은퇴한 교수도 청년들이다. 이들을 석좌교수로 초빙할 수 있고 이들은 여전히 좋은 교육을 시행할 수 있다. 대학이 지역문제를 모두 해결하지 않지만 대학 빼고 한국의 지역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대한민국 압축성장의 동인으로 짚어야 할 것은 전 국민적 교육열기였다. 그 열기가 서울로만 모여 ‘인서울’이 되었다. 오래된 표어가 다시 환생해야 하겠다. 지역이 거지꼴을 면하게 하려면 지방거점대학에 덮어놓고 투자해야 한다. 그 투자는 건설이 아니고 교육이라고 부른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925476?cloc=joongang-home-opinioncolumn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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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 2021. 04. 02미술대학 졸업생인데 구조 디자이너를 꿈꾸는 현재 건축전공 김우진양 방문. 참으로 보기 어려운 배경을 갖춘 씩씩한 선수.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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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 / 2021. 01. 26영산대학교의 이성찬, 김용희 교수 방문. 작은 학교인데 두 교수 모두 건축과의 음향전공이라는 특이점. 김용희교수는 학생시절에 비해 20킬로그램의 무게를 더한 분위기.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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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 / 2020. 11. 30한국예술종합학교 우동선교수께서 박사학위 논문심사차 방문. 후배이면서 연구년 시절 버클리의 동네 주민이었기에 훨씬 더 흉허물 없는 존재.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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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 / 2020. 11. 24서울대 건축학과에 거액을 장학금으로 지원하는 한샘드뷰연구재단의 핵심 멤버인 서정일부장, 김희경이사, 김동건상무께서 방문. 장학금이 뒷 세대에 훨씬 큰 가치로 돌아와야 할텐데.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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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 / 2020. 11. 21수업시간 중 옛 서울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서울성곽 인왕산구간 답사. 촬영은 자하문 앞.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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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 2020. 11. 20서로 남의 연구실 돌아다니면서 남의 전공 이야기 듣는 교수들께서 방문. 조인호(동양화), 임동균(사회학), 박정호(고고미술사), 김도형(수학). 다양한 전공인데 배경의 공통점은 입사 동기들.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