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합지졸

중앙일보-상상력사전 조회 수 130 추천 수 0 2018.01.22 15:20:52

[중앙선데이, 2018. 0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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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합지졸


전운이 감돌았다. 대개의 사건처럼 발단은 사소했다. 이 경우에는 특별히 더 그러했다. 오징어나라 고등학생 하나가 모의고사를 망친 것이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그는 주입식 암기 교육의 폐해와 사지선다형 객관식 시험의 시대착오적 폭력성을 멋있게 이야기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문장조합이 어려운지라 졸라졸라 투덜거리며 말 대신 침을 이빨 사이로 찍 내뱉었다. 여기까지는 동네 버스정류장에서 흔히 발견되는 풍경이었다.


그런데 하필 먹물침이 옆에 있던 꽃게나라 여학생 등에 튀었다. 학교에서 유명한 얼짱이었다. 얼굴 얼짱이라고 마음 얼짱은 아닌지라 여학생은 집게발을 건들건들하면서 역시 졸라 기분이 나쁜 티를 냈다. 알고 보니 일진 여학생이었다. 오징어는 자신이 잘못한 건 있지만 그래도 그 정도 갖고 사과할 생각은 없었다. 누가 하필이면 거기 서 있으라고 했냐. 결국 입씨름이 벌어졌다.


고등어 고등학생이 이를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촬영해 인터넷에 올렸다. 순식간에 댓글들이 수천 개를 넘어섰다. 꽃게나라는 침을 뱉고 사과도 않는 학생의 인성상태를 방치하는 오징어나라 교육체계를, 오징어나라는 공부는 않고 겉멋만 들어 꽃단장에 바쁜 꽃게나라 교육실상을 비난했다. 교육의 자존심 문제가 불거지자 교육부 장관들이 좌시할 수 없었다. 오징어나라는 슬기로운 조상이 남긴 묵향 가득한 교육을, 꽃게나라는 유구한 역사에 빛나는 뼈대 있는 교육을 각각 근엄하게 강조했다. 그러나 어차피 외워서 시험친다는 점에서는 서로 다를 것도 없었다.


이번에는 국민소통을 자랑하던 꽃게나라 대통령이 여지없이 트위터를 날렸다. 두서없이 물속을 쏘다니며 먹물을 쏘는 나라 때문에 바닷물이 혼탁해지고 태양광이 차단되어 해저생태계가 교란된다. 오징어나라 수상도 가만 있을 수 없었다. 해저면에서 마구 배설물을 쏟아내며 기어다니는 백성들이 바로 생태계 교란의 주범이다. 꼴뚜기, 가재들이 나서서 말리기 시작했다. 누가 말린다 치면 싸움이 커지는 법인지라 문장들이 과연 더 험악해졌다. 수시로 미사일을 실험하는 오징어나라가 해저평화 위협과 긴장 고조의 주범이다. 미사일 발사는 자위권 행사일 뿐이고 주변국 아무에게나 집게발을 들이대는 꽃게나라야말로 악의 축이다.


임계점을 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오징어나라 정보요원들이 간장게장 가게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졌다. 그리고 밥 비벼 먹고 남은 게딱지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 꽃게나라 요원들은 오징어덕장에 잠입해서 줄줄이 걸린 오징어 건조 현장사진을 올렸다. 서로 치욕적 뇌관을 건드렸으니 사태가 전쟁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오징어나라는 에꼴드옥토퍼스에서, 꽃게나라는 랍스터포인트에서 유학한 장군을 각각 군 최고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세계 최고 사관학교의 빛나는 유학 졸업장 덕에 승진가도를 달린 장군들이었다. 그러나 창의력 과목들에서 줄줄이 낙제하는 바람에 턱걸이로 졸업한 과거는 비밀로 묻어두고 있었다. 문제의 답은 맞추지만 문제가 뭔지는 찾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일촉즉발. 모두 어두운 물 속에서 팽팽하게 대기했다. 오징어나라에서 신호탄이 올랐다. 오징어들은 이게 선제타격인가 하면서 즉시 순항미사일로 튕겨져 나와 신호탄을 향해 날아갔다. 오징어 사령관은 뭔가 문제인지 어리둥절했다. 자신은 공격명령을 내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신호탄이 아니라 오징어잡이 배에서 켠 조업등이었다. 오징어들은 주낙에 줄줄이 엮여 올라갔다.


매복진지에서 게눈을 빼고 상황을 주시하던 꽃게 사령관은 개탄했다. ‘오합지졸이 사전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오징어들 합해 놔야 지 앞길도 모르는 졸개들이군. 드디어 꽃게 사령관이 단호하게 앞발을 쳐들었다. 돌격 앞으로! 그런데 아무도 앞으로 돌격하지 않았다. 꽃게들은 죄 옆으로만 우왕좌왕 움직였다. 역시 뭐가 문제인지 몰라 사령관이 돌격하라고 다그칠수록 게들은 더 옆으로 게걸음을 쳤다. 마침 그 곳은 금어기가 풀려 어부들이 꽃게잡이 통발을 늘어놓은 곳이었다. 꽃게들은 줄줄이 통발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그렇게 바다에서 헤어진 꽃게와 오징어들이 다시 만난 곳은 수산시장이었다. 모두 네모난 수조에 담겨 도대체 여기가 세상의 어디인가 의아해 했다. 주입식교육이 문제라는 조간신문 기사를 스마트폰으로 읽던 시장상인이 벌떡 일어섰다. 어서 옵쇼! 싱싱한 꽃게, 오징어 싸게 드립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22303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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