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

중앙일보-상상력사전 조회 수 166 추천 수 0 2017.06.12 10:29:50

[중앙선데이, 2017. 06. 11]


바벨탑


. 왜 하필이면 이 글자가 눈에 덜컥 걸렸을까. 보니 이건 천하에 쓸모 없는 글자였다. 이 게 없어도 우리의 행주질, 붓질, 대패질에 아무 문제가 없다. 우리에게는 벅벅, 쓱쓱, 싹싹이라 쓰는 더 찰진 글자들이 있다. 이 글자는 도대체 어디에 쓰나. 이건 분명 몰래’, ‘슬쩍과 혈연간이고 밀어넣기’, ‘빼먹기와 한통속이다. 어딘가에 슥 붙어 살 따름이다. 음험했다. 그런데 그런 자들이 다 그렇듯 그 글자도 그리 뻔뻔하고 버젓하게 존재했다. 신기했다. .


가까이 오래 보면 애정이 생기는 법이란다. 과연 애틋한 마음이 생겼다. 발생한 나의 측은지심은 곳곳의 을 모으기 시작했다. 보이는 대로 주워 모으고, 보이지 않아도 찾아 모았다. 쓸모 없는 것이니 모으기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완벽에 이르는 길은 언제나 어렵다. 동해에서 동태씨, 서해에서 조기씨 마르듯 의 씨가 말랐다고 저녁뉴스가 소란해졌다. 금붙이가 비싼 건 용도가 아니고 희귀성 때문이다. ‘자를 챙겨두고 내놓지 않는 자들이 생겼다. 예전에는 널렸던 것을 양도하는데 돈을 요구했다. 시작한 일이니 그만 둘 수도 없었다. 주워 모으던 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이유를 묻지 마라. 애착과 집착이 논리로 설명되더냐.


보관도 문제였다. 나는 이 애장품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쌓았다. ‘위에 약간 각도를 돌려 다음 을 쌓는다. 그리고 그 위에 같은 각도로 또 을 돌려 쌓는다. 쌓인 들은 나선모양을 만들며 위로 올라간다. 그것은 생물책에 나오는 DNA의 모양이었다. 비싼 건물 로비에서 가끔 보는 멋진 나선계단 모양이기도 했다. ‘을 한 단씩 밟고 위로 올라갈 수도 있다. 끝없이 하늘로 이어지는 계단.


세상은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하루는 희귀품이라 들고 온 모양새가 과연 희귀했다. 적당한 값에 사서 들여다보니 이건 을 잘라낸 것이었다. 그래도 이제 이 되었으니 그냥 쌓아 놓았다. 그랬더니 을 깎고, ‘을 갈고, ‘을 오린 무리들이 줄을 이었다. 글자들이 사라지니 문제들이 등장했다. 길거리에 오*을 눈 부랑인을 *결에 넘겼는데 *방망이 처벌을 했다고 뉴스가 뒤**이 되었다. “내 가슴 속 숨긴 사연을 속닥속닥보냈는데 내가 긴 사연을 닥닥배달되어 청춘남녀들이 오해하고 이별했다. 중국정부는 사드배치가 아니고 특정 한자의 밀수입을 막아달라고 했지만 지금()은 정부가 뜻을 모아도() ()이 서지 않았다.


혼돈이었다. 세상이 바벨탑이 된 것이다. 어차피 막말 넘치는 자, 할 말 더듬는 자, 말귀 못 박힌 자들이 우글거리고, 말하는 자보다 짖는 자들이 대접받던 세상이다. 내가 새삼스레 괘념할 일은 아니었다. 나의 탑은 오로지 조화롭고 평온했다. 나는 탑에 올라 구름 아래 소요스런 사바를 내려보며 평상심을 다스렸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세상이 끓든 가라앉든 내 마음은 물처럼 잔잔했다. 다 이루었다.


가을바람이 막 소슬해진 참이었다. 일기예보가 초대형 태풍을 경고했다. 어두운 예감이 머리를 슥 스쳤다. 나는 을 차곡차곡 쌓기만 했다. 바람과 지진에 대한 대비는 하나도 없었다. 올 것이 왔다. 기상청 건립 이후 최대규모라는 태풍이 왔다, 아니 몰아쳤다.


쌓아두었던 이 하늘 가득 날렸다. ‘으로 날리지 않았다. , , 이 제각기 허공에 비산했다. 한국전 때 날리던 삐라처럼 하늘을 메웠다. 갑자기 마당에, 옥상에, 베란다에 지천으로 떨어진 것들을 사람들이 집어들고 아무 데나 껴 넣었다. 써서 없애는 것 밖에 치울 길도 없었다. 주머니에, 지갑에 넣고 다니다 기분 좋고 내킬 때면 하나씩 입에서 뱉었다.


이 늘어나니 사람들이 쏘주를 마셨고 취해 뱉는 욕들이 으로 가득 찬 쑥대밭이 되었다. 남는 에 덮어 을 만들었다. 아무리 자장면이라 계도해도 백성들은 짜장면을 비볐다. 봄철이면 주꾸미가 쭈꾸미로 변태했다. 로 돌려쓰니 냄비가 눌어붙고 애기들이 앵앵거렸다. 도 지천이었다. 대학생들은 꽈사무실에 들러 꽈비를 내고 꽈티와 꽈잠을 주문했다. 다 공짜로 얻은 글자들 덕에 생긴 일이다. 아니지, 꽁짜로 얻은 글자들.  


http://news.joins.com/article/21654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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