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

중앙일보-상상력사전 조회 수 220 추천 수 0 2017.05.29 09:39:49

[중앙선데이, 2017. 05. 28] 백설공주


이것도 얄궂은 운명인 거지. 내가 백씨 집안에 시집 온 거 말야. 남편에게는 재가였어. 설희 입장에서는 내가 계모지. 백설희 하니까 옛날 가수 이름이지? 실제로 목소리도 끝내줘. 얘가 노래를 하면 정말 연분홍치마가 나풀나풀 하는 거 같아.


애 아빠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니 공주대접을 했지. 그래서 백설공주인 거야. 걔가 공주면 남편은 임금이고 나는 덩달아서 왕비지. 돈 드는 거 아닌데 나쁠 거 있나? 딱 거기까지야. 즈이 애비를 닮아 얼굴이 박색이야. 조물주가 공평한 거지. 남자야 뭐 박력있게 생겼다면 그만인데 딸이잖아. 백설공주는 고등학교 졸업하고부터 오피스텔 얻어서 나가 살았어. 내가 내보낸 게 아니고 지가 나간 거라니까.


혹시 마술거울 있냐고? 다들 맨날 그걸 물어봐.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겠어. 거울에는 비춰봐야 그냥 지 얼굴인 거야. 나이 먹으면 사진도 찍기 싫어지고 거울도 보기 싫어져. 자기 얼굴이 맘에 안 드는 거지. 그러면 젊은 것들 시샘도 하게 되는 거야.


나는 혼자 밥 먹고 드라마 보는 게 낙이야. 드라마공화국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어찌 살았을지 몰라. 아침드라마가 한 순배 돌면 컴퓨터를 켜. 내게는 모니터가 마술거울이지. 세상에 없는 게 없고 모르는 게 없어. 그걸로 맨날 검색하는 게 있기는 있어. 검색창에 예쁜 여자를 넣어. 바쁘면 그냥 얼짱’, 이래도 돼. 그러면 이영애, 고소영, 김태희 하고 줄줄이 나와. 살짝 기분 나쁘지. 왜 내가 아니고.


내가 이것들을 그냥 둘 수 없지. 방법이 뭐냐 하면, 시집 보내는 거야. 그러면 싹 사라져. 물론 내가 보낸 건지, 지들이 알아서 간 건지 알게 뭐야. 하여간 시집가고 나면 사라져. 그런데 여기가 무슨 잡초밭인 모양이야. 계속 뭔가 새로 나와. 아이유, 수지, 서현 하면서. 근데 얘네는 노래들도 잘해. 조물주가 가끔 공평하지 않더라니까. 모르지, 성질들이 더러울지도. 어쨌든 나는 계속 시집 보낼 셈이야. 내 이름 여기 뜰 때까지.


백설공주 이야기 다시 해야지. 신기하게 얘가 그 얼굴로 남자 꼬시는 재주가 끝내줘. 한번은 핸드폰 훔쳐서 세보니까 만나는 남자가 일곱이야. 문제는 얘네들이 모조리 키는 오종종 얼굴은 꼬지지야. 짚신 짝이 결국 짚신 아니겠냐구.


내가 계모지만 그래도 엄마잖아. 수시로 챙기고 관리할 의무가 내게 있지. 그런데 이게 언제부터인지 전화하면 전원 꺼져있고 문자 보내면 씹어. 나 성질 급한 거 알지. 열불이 나서 오피스텔에 달려갔더니 핸드폰이 맛이 간 거야. 액정 깨지고 배터리 다섯 시간이면 방전.


새 핸드폰 사주겠다니까 꼴에 저는 사과표 핸드폰만 쓴대. 할 수 없이 할인 하나 없는 사과표 핸드폰 사줬지. 새로 나온 새빨간 색으로다가. 이 핸드폰이 사진 잘나온다고 광고 엄청 하잖아. 백설공주 셀카사진을 하나 받았더니 뭔가 해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다시 열심히 검색을 했지. 그리고 압구정동 데리고 가서 눈 따로, 코 따로, 턱 따로 고쳤어. 각각 전문분야들이 따로 있더라고. 그래서 얼짱이라고는 못하겠지만 박색은 면했지.


그런데 이게 효과가 있었어. 일곱 난장이 정리하고 왕자님을 물어온 거야. 키 크고 잘 생기고 성격 서글서글한 총각을 데리고 왔는데 눈물이 날 지경이었어. 연애도 경험이라고 다 해봐야 하는 모양이야. 결국 지금 결혼해서 잘 살아. 걱정은 애가 어떻게 나오느냐였지. 그런데 이것도 유전적 재주인가 봐. 아들, 딸 하나씩 낳았는데 둘 다 아빠를 꼭 빼 닮더라고. 어휴, 내가 가슴을 다 쓸어내렸지.


만화영화로 보면 계모가 벌 받고 죽어야 이야기가 끝나잖아. 내 이야기는 이거야. 세상에 못되기만 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 문제가 생기면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 해. 한번은 백설공주가 성형수술하고 붓기도 빠지지 않은 때였어. 얘가 퉁퉁 부은 얼굴을 페이스북에 올렸어. 이게 나 때문이라면서. 내가 전 세계에서 가장 악독한 계모에 등극한 거지. 요즘 말로 역대급 계모. 댓글들로만 보면 내게 폭력전과 안 붙은 게 다행일 판이었어.


이것도 다 지난 일이야. 아 다르고 어 다른 거야. 앞으로 사람 판단할 때는 양쪽 이야기를 다 들었으면 좋겠어. 나이 먹었으면 그 정도는 깨달아야 하는 거 아니겠어?


http://news.joins.com/article/2161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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