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6.01.06] 칼럼-로고스


지구의 궤도에는 눈금이 없다. 지구는 그냥 육중한 몸을 굴리면서 어디론가 가고 있을 뿐이다. 그 끝에 조물주가 설계한 불의 심판이 있을지, 수소가 들끓는 불구덩이가 있을지 지구도 모를 것이다. 눈금은 그 표면에 기식하는 어떤 생명체들이 자신들이 만든 달력에 새겨 놓았다.


인간들은 폭죽을 터뜨렸다. 눈금이 한 바퀴 돌았다고 했다. 이상한 일이다. 지구가 동시에 그 눈금에 얹힌 것도 아니었다. 어딘가는 날이 저물고 있는데 어디에서는 새해가 밝았다고 환호성이었다. 시작은 어디고 끝은 무엇인가.


첫 역사서는 그리스어로 쓰였다. 눈금이 없는 상황을 카오스(chaos)라고 칭했다. 어떤 틈에 끼어 분류되지 못하는 상태를 지칭했고 혼돈이라고 번역했다. 분류하는 능력은 로고스(logos)라고 했다. 눈금의 좌우에 만물이 편안히 놓인 상황은 심메트리아(simmetria)였다. 번역하면 조화였다. 구분의 결과가 조화롭지 못하면 그 도구는 로고스가 아니다. 로고스가 없는 눈금과 구분을 강요할 때 그것은 폭력이다.


한반도를 나눈 것은 폭력이었다. 현재 지구표면에서 가장 이상하게 나뉜 곳이다. 그 구분의 실상인 기이한 희극은 우리가 주인공인 순간 비극으로 바뀐다. 연초면 양쪽에서 모두 연속극 재방송처럼 통일의 대사를 외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옳고 너희는 여전히 그르다는 전제가 덮이면 대사는 독백이다. 앞에 놓인 것은 상대가 아니고 허공이나 봉창이다.


눈금이 넘어갈 즈음 남쪽에서 자행되는 분류폭력의 현장이 대학입시다. 학생들은 인문계, 이공계, 예체능계라는 구분선 안으로 도박패를 던져야한다. 건축은 이공계로 분류된다. 하지만 적지 않은 대학에서 건축학과의 연간성취는 인문계로, 교수들의 연간업적은 예체능계로 나눠 평가한다. 그렇다면 이 분류의 배경에 있는 것이 과연 로고스인가.


학생들을 이 이상한 테두리로 나눠 가두고 그 안에서만 선택을 하라는 건 야만적 폭력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 위반이다. 나눈 자들은 편안하겠으되 나뉜 자들은 고통스럽다. 나뉜 자들은 미래의 지구가 아니고 바로 지금 이곳이 불타는 지옥이라고 경멸하기 시작했다. 참혹하다. 굳이 나눠놓고 융복합에 미래가 달려있다는 국가의 미래는 카오스다. 그 국가의 현재는 희극이다.


지구와 한반도의 미래도 걱정스러우나 내 앞길도 평안해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어찌 구분이 될까. 나는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니 건축과 교수다. 건물을 설계하므로 건축가고 책도 몇 권 썼으므로 저술가로 불리기도 한다. 당황스럽게 건축학자나 건축비평가라고 소개되는 경우도 있다. 출입국카드작성과 연말정산의 순간에 정부의 분류기준으로 근로자, 교육자, 예술가, 저술가 중 나는 내가 누구인지 고민했다.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자의 뻔한 모습일 것이다.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인문계인가, 자연계인가, 예체능계인가. 대학 교수도 모르는 것을 고등학생들에게 알아오라는 이 사회의 로고스는 어디에 있는가.


이제 나는 분류를 거부하는 자유를 얻었다. 나는 떳떳하고 뻔뻔하게 전부에 속하기로 했다. 나는 몇 개의 특허를 갖고 있다. 그 대상은 비닐하우스거나 접고 펴는 구조물들이다. 대상이 건물인지를 구분할 필요도, 건축과 교수가 해야 하는 일인지도 물을 필요가 없다. 나는 눈이 오면 무너지는 비닐하우스에 좌절했으며 재난으로 몇 달 기식할 공간이 없는 이재민들의 처지에 애통해했을 따름이다. 고백하거니와 분류되지 않는 나는 분류하기 어려운 이런 걸 디자인하는 순간 행복했다. 나는 새해에 기꺼이 발명가의 갈래를 하나 더 얻을 생각이다.


천문학자들이 눈금을 어찌 넣든 지구는 굴러갈 것이고 조류학자들이 뭐라 나누든 새는 알아서 날아갈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혼돈의 갈래를 나눌 것이고 분류되어야 하는 아이들의 행복은 여전히 유보될 것이다. 나누는 자들은 칼을 든 자들이다. 누군가 조자룡 헌칼 쓰듯 휘두른 칼날에 우리 모두가 베인 상처를 갖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또 술 취한 망나니처럼 그 칼을 되 집어 다음 세대에게 휘두르고 있다. 우리에게는 자랑스럽다고 강요할 영광보다 보듬고 다독여야 할 상처가 훨씬 많다.


로고스는 말이라고 번역하기도 하며 그 실체는 의사소통이다. 이 땅에서 칼은 칼이었고 말도 칼이었다. 설득하지 않고 찌르고 내리치려고만 했다. 그 칼, 새해에는 내려놓자.


http://news.donga.com/3/all/20160106/757476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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