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신문, 2015. 03. 30]  교수칼럼 - 대학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이것도 질병의 종류는 아닐까. 아니면 덕후로 표현되어야 하거나. 고등학교 생기부의 희망 진로 여섯 칸이 일관된 경우다. 건축가! 물론 의사, 법관, 소설가, 경영자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정부는 이런 학생들을 앞다투어 뽑으라고 한다. 전공적합성이라는 명목이다.


건축의 열정을 불태우는 이 학생들은 수시 면접불만을 인터넷에 올려놓는다. 건축과 입시인데 건축에 관한 질문을 하나도 하지 않더라고. 간혹 입학통지를 받으면 또 묻는다. 입학 전에 무슨 책을 읽고 무슨 컴퓨터 프로그램을 공부해야 하냐고. 그리고 입학하면 바로 과내 동아리와 학회에 가입한다. 그리고 불굴의 전투의지로 건축설계스튜디오에서 꼬박꼬박 밤을 새며 건축폐인의 길을 걷는다. 건축에 의한, 건축을 위한, 건축의 대학생활이 시작된다.


조언은 간단하다. 그럴 필요 없다. 건축은 평생 할 공부다. 결연하게 대학시절 전부를 소진할 필요가 없다. 고등학교 때 건축을 공부할 필요는 더욱 없다. 네가 아는 위대한 건축가들 중 태반은 대학건축교육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그들은 대학 때 열심히 딴 짓 하던 사람들이다. 바로 그러기에 제대로 된 건축가가 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건축과가 아니고 대학교에 입학했다는 사실이다. 대학 재학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대학 재학의 흔적은 평생 유지된다. 그러기에 그 전공이 대학생활에 군림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학은 고등학교 시절에 겪어보지도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인간들을 모아 놓는다. 대학은 그 사이를 마음대로 헤치고 다닐 온전한 자유를 제공한다. 선택한 전공이 무엇이든 세상이 얼마나 신기한 사고의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곳이다. 그리하여 결국 더욱 큰 사고의 폭과 자유를 얻게 하는 곳이다. 지적 자유를 얻게 하는 곳.


대한민국은 일본 메이지시대의 도구적 교육관을 이어받았다. 그들은 입학하는 학생을 문과 이과로 나누고 졸업하는 학생들의 가치를 취업률로 재단한다. 그들에게 대학생은 산업체의 요구를 받들어 취업 직후 바로 전선에서 사용되다 소모될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그 취업생이 이십 년 뒤에 얼마나 무참히 정리해고 되었는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이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에 성공해서 위대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바 없다. 교육부장관이 그래서 훌륭했다는 찬미도 들리지 않는다.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의 대학전공은 전자공학이고 교육부장관의 전공은 법학이다.


대학은 평생 갖고 살아갈 무기를 갖추는 곳이다. 그것은 현장에 바로 적용 가능한 전공지식이 아니다. 자유로운 사고다. 그리고 좋은 친구들이다. 서로 다른 전공으로 만나서 서로 다른 주제로 이야기하다 얻은 인연을 만드는 곳이다. 훗날 전공이 무엇이었는지의 기억은 아스라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 함께 배운 가치는 여전히 가슴에 담고 있을 것이다. 자유로움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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